미국의 금권정치
전통적으로 연방은행(FRB) 의장은 월가가 지지하는 인물이 지명되곤 했습니다. 지난 번에도 월가는 현재 의장인 엘런을 지지했었습니다. 양적완화 종료를 주장하던 서머스는 후보 경쟁에서 월가의 압력을 받아 사퇴해 버렸습니다. 임명권자인 미국의 대통령도 정치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내는 월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월가는 국가를 위한 정책보다는 금융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언젠가부터 월가의 탐욕이 미국 경제정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금융계뿐만 아니라 군수산업과 석유산업과 같은 과점적인 산업계에서도 로비활동을 통해 정부와 국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자본주의 국가이며 정치 로비스트의 굴레에 묶여 있는 금권정치 국가입니다.
중국의 당권정치
인민은행 총재 저우샤오촨(周小川)은 지난 4월11일 보아오 포럼에서 중국 경제 성장이 대량의 지폐발행에 의지해 유지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중국이 지난 30년 넘게 고속 성장한 배경은 화폐남발임이 틀림없습니다. 매년 10% 넘는 성장을 추구하였고 2008년 올림픽 개최와 미국 금융위기를 기회로 대규모 경기부양을 추진했습니다. 화폐남발로 성장해온 중국경제는 만성적인 부채 때문에 매년 더 많은 돈을 풀지 않으면 돈맥경화가 발생하는 비만경제로 볼 수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통화남발이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신용거품을 키웠습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아베정부는 강한 국가를 표방하여 국민의 지지를 모으고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을 다시 키우기 위해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로 엔화약세를 유발하여 내수의 위축을 감수하더라도 수출을 진흥시키고 있습니다. 2012년도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일본 전자산업의 총 순이익보다 많았습니다. 똑똑한 대기업 하나가 납부한 세금이 한 산업전체가 납부하는 세금을 능가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예전엔 일본 소니의 순이익이 한국 전자산업 총 순이익보다 많았던 적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입니다. 일본도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똑똑한 대기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양적완화는 전례 없이 과감하게 돈을 찍어내는 통화팽창 정책입니다. 전례가 없다 보니 그 이후 경제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양책입니다.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미리 방어한다는 이유로 개척자인양 각 국가 중앙은행이 앞다투어 돈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6년동안 계속해서 막대한 돈을 찍어내는 데도 경기회복은 더디기만 하고 물가도 조금밖에 상승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선례로 보면 통상 돈을 오랫동안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환경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돈이 모든 소비주체로 고르게 흐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돈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편중되게 흐르면 소수만 소비를 늘리고 다수가 소비를 늘리지 못하므로 수요가 조금밖에 늘지 않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경제환경의 구조가 바뀐 근본 원인은 경제활동인구 감소와 고용 없는 성장 때문입니다. 투자를 늘려도 기술혁신에 따른 무한경쟁 때문에 일자리가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부양책으로 투자를 늘리면 고용이 늘어 경기가 회복되곤 했습니다. 지금은 투자를 늘려도 경기회복이 더디고 고용은 늘지 않으며 돈이 넘쳐도 소비가 늘지 않습니다. 따라서 통화팽창 정책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성장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당연히 경기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통화정책도 필요합니다. 급격한 경기하락으로 발생한 자금경색을 줄이고자 할 때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불 쏘시개처럼 통화팽창 정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통화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그리고 새로운 성장산업 발굴과 육성 노력이 약해지고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역경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풍요 속에선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통화정책 뒤에 숨지 말고 경제문제를 하나하나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손쉬운 통화정책의 힘을 빌리려다 기회를 놓치고 결국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지도자들이 통화정책 뒤에 숨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지도자들은 누구를 위하여 돈을 찍고 있나요? 국민을 위해선가요? 자신을 위해선가요?
한용주
투데이미디어그룹 경제 전문가기자
시사조선 경제전문위원
삼성생명 종합금융컨설턴트 jamesha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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