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8장14절)
사람 앞에서 나를 낮추면 사람들이 나를 높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면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높여짐의 진리입니다.
군 장병들에게 자주 특별휴가를 줘 입방아에 오른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경향신문의 ‘실록 하나회’ 41회에 등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실록을 간추린다. 전두환 사단장 시절 1사단에 근무했던 장병들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한가지. ‘경례만 잘하면 특별휴가를 보내주던 사람’이다. 그는 차렷자세와 경례하는 동작 하나로 그 군인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면서 지나가다 경례하는 모습이 맘에 들기만 하면 1주일간의 휴가에 표창장을 주었다. 표창장은 꼭 액자에 넣어 수여해 보관하도록 하고 격려금도 지급했다. 그래서 사단장의 하루일과는 오전 8시 표창장을 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추석을 눈 앞에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장병 56만명에 특별한 선물을 보내주기로 한 것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 부사관 이하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이라고 청와대 측이 발표했다.
지난번 북한의 지뢰도발사건 때 전역을 연기한 병사들의 얘기에 감동받아 군 통수권자가 특별간식으로 격려해주기로 했으니 박수받아야 마땅할 일 아닌가. 그런데도 왜 논란이 일고있을까. ‘하사(下賜)’라는 용어부터 도마에 올랐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하사(下賜)’란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왕조시대의 권위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물론 군사정권 시절에 대통령을 비롯 각종 기관장들이 행사를 치른 후 관례처럼 ‘금일봉’을 지급한 적도 있었다. 누가 어떤 모임에서 주는 돈 봉투의 두께는 어느 정도라는 얘기까지 파다했을 정도다. ‘누구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하사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러한 구태와 악습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선물을 받은 쪽에서 ‘하사품’이란 표현으로 주는 이의 격을 높이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주는 쪽에서 하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각하’ ‘영부인’ ‘영애’ 등 호칭도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권력 심장부에서 대통령의 하사 얘기를 꺼내들고 나왔다. “청와대는 전근대적 국민 하대 표현을 자제하라”는 반발을 살만하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격은 대통령이 스스로 낮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수록 더욱 높아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사실 박 대통령은 소통의 문제에서 그다지 자유로운 형편이 아니다. 특히 세월호 사고나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상한 마음을 제대로 만져주지 못했다. 그런만큼 이번 ‘하사’ 논란을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일부의 말꼬리 잡기로 폄하해선 결코 안된다.
민주 국가 최고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다. 하인을 뜻하는 ‘서번트’ 리더십’이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하인이 결국은 모두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다.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물질적 풍요는 이뤄냈지만 자살률 1위, 이혼률 1위, 노령인구 빈곤율 1위, 출산율 꼴찌 등 각종 사회적 성적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국민들이 저마다의 달란트를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실정이다. 자신을 낮춰 국민들로부터 높임을 받을 수 있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김경식 고문 kimksik5@world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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