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칼럼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문제만 일으키는 자녀를 보며 할 일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문제아는 없습니다. 문제부모만 있습니다.’ (김양재 ‘보석’)
오래전 일이지만 국사교육이 엄청 강화된 적이 있었다. 사법고시를 비롯 각종 국가고시에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포함됐는가 하면, 국립대학 입시에서 국어 영어 수학 다음으로 국사에 높은 점수가 배정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갑자기 윤리교육에 초점이 맞춰졌다. 1981년부터 행정 외무 기술고등고시 등 3급 공채와 사법시험에 국민윤리가 논문형 2차시험 과목으로 채택됐다. 수 많은 고시 준비생들이 마른 하늘에 벼락으로 받아들일만한 조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고,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하겠다는 심산이었을 터이다. 교육을 통해 올바른 역사관과 윤리관을 키우고 지켜나가겠다는데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 때 그 시절은 또 어땠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살만해지기가 무섭게 황금만능 풍조가 우리 사회를 덮쳐왔다.
문제는 최고 통치자가 바뀌면서 우리 교육의 목표나 가치관도 달라지고, 결국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민윤리 과목은 1996년부터 모든 공무원시험에서 폐지됐다. 국사교육이 유명무실해진 것 또한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올들어서는 인성교육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 7월부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일선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가 지워졌다. 이 법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수백명의 생명을 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배를 빠져나온 세월호 선장 이름을 따 흔히 ‘이준석 방지법’으로도 불린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 지식교육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 성공만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비용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의 아이가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할 정도다. 그나마 이제라도 정부가 인성교육의 틀을 잡고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법 제정의 발상부터 의아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에게 법으로 인성교육을 시키겠다는 발상은 어른들로부터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되돌아볼 때 인성교육 대상이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침몰하는 배 안에 있었던 학생들이 어떤 인성이 부족하여 그토록 끔직한 사고를 당했는가. 아니다. 어른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소중한 가치와 인성을 헌신짝처럼 내버렸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인성마저 법으로 교육시키겠다는 발상을 내놓을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이 뿐만 아니다.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인성함양이 이뤄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관련법을 만들고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에 몇시간씩 인성교육을 시킨다고 아이들이 금새 달라질리 만무하다. 그렇게 기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당초 연간 15시간 이상으로 규정돼 있던 초 중 고교 교사들의 인성교육 연수 시간이 4시간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교사들의 반발때문이었다. 교사들이 한달에 1시간도 받기 싫다는 인성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의무화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벌써부터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대행해 주는 학원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교사들이 인성교육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니 사교육에 밀려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인성교육의 주 대상자부터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청소년이 아니라 교사와 어른에게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인성문제에 관한 한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입식 지식교육을 강요한 장본인은 바로 부모와 교사와 학교다. 스펙쌓기를 우상삼고 있는 부모가 줄을 서 있으며, 아이들의 대학입학 실적에만 목매달고 있는 학교와 교사가 있는 한 인성교육은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 인성면접을 위한 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을 낳다가 윤리교육처럼 어느날 조용히 사라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김경식 편집인 kimksik5@worldeconom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