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안팔리고 공급은 늘고… 경기 살릴 지렛대도 꺾일 판
정부 "아직 걱정할 수준 아니다" 전문가 "연착륙 방안 논의해야"
A씨는 지난 설 연휴 직후 서울 동작구의 소형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놓았다. 전학이나 신혼부부 이사 수요 등에 따른 본격적인 봄 주택 거래 철을 겨냥한 매물이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4월18일 현재까지 팔리지 않고 있다.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집을 보러 온 방문객도 고작 1명뿐이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실제 이 아파트 해당 평형은 지난 1분기를 통틀어 싸게 나온 저층 매물 1건만 매매 계약이 성사됐다. 2015년 4분기 매달 최소 1건에서 최대 4건씩 거래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2016년 주택 거래 시장이 성수기까지 실종될 정도로 꽁꽁 얼어붙었다. 봄 이사철 1분기의 주택 거래량이 2015년 가을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때와 비교하면 15% 수준까지 거래가 급감한 지역도 있다.
이 정도면 2016년 주택시장이 ‘경착륙’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 유난히 활성화됐던 시장 분위기에 따른 기저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올해 들어 적용된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의 여파인지 면밀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칫 부동산 거래 절벽사태가 경제회복 노력의 뒷목을 잡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구는 ‘거래절벽…서울·부산·인천은 급감’
국토부의 전국 주택 실거래가 세부자료(계약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의 주택 거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5년 10월과 비교해 3월 기준으로 가장 거래량이 많이 줄어든 광역자치단체는 대구다. 아파트 거래 현황을 보면 대구는 2015년 10월 2247건이 거래됐던 것이 3월엔 645건만 계약됐다. 10월 대비 거래량 29% 수준이다. 연립·다세대와 단독·다가구 주택 거래량도 같은 기간 30∼34%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1년 이후 유독 주택 경기가 과열됐던 대구가 그동안 집값이 많이 뛰어 피로감이 쌓인 상태에서 올해 들어 주택담보대출 규제, 공급 과잉 논란 등이 겹치면서 ‘거래 절벽’ 상황을 맞은 것이다. 대구는 아파트값 하락률도 독보적이다. KB국민은행의 시세에 따르면 대구는 4월11일 기준으로 전 주보다 0.08% 아파트값이 하락했다. 15주 연속 하락세다.
주택 가운데 아파트 거래 현황만 따로 2015년 같은 때와 비교하면 올해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올해 3월 전국의 아파트 매매 계약 건수는 9만3521건으로 지난해 3월 20만1920건의 46% 수준에 그친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26%)과 인천(26%), 광주(28%), 경기(29%) 등이 2015년 3월 거래량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대구는 지난해 3월의 15% 수준인 645건의 아파트만 거래 계약돼 역시 전국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대출규제 어쩌나
지난 2월 수도권에 적용된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도 주택 거래에 미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주택시장이 대출 규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규제 적용 직전인 1월 거래량을 보면 안다. 전국의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10월 이후 매월 지속적으로 거래량이 줄어든 반면 서울과 인천 경기는 각각 1월에 전달에 비해 103%, 100%, 103%까지 거래량이 반짝 늘었다.
대구도 113%나 증가했다. 규제가 오래전부터 예고된 터라 주택을 가진 사람이나 사려는 사람이나 대출이 까다로워지기 직전에 최대한 거래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다. 5월부터 지방에서도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시작된다는 새로운 ‘악재’가 예고돼 있다. 은행에서 주택대출을 받기 까다로워져 매수 심리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은 서울·수도권보다 대출을 이용한 투자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 규제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의 ‘돈맥경화’ 현상이 더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부동산 시장 거래가 끊기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 아파트는 넘쳐나는데… 대구·광주 등 거래 실종
올해 입주물량은 80%나 늘어… 공급과잉 따른 충격 불가피
"5~6년 전 대구가 '미분양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네요. 작년 가을만 해도 한 달에 2~3건씩 거래가 됐는데, 올해 초부터 뚝 끊겼습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서 13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K(54)씨는 4월14일 "매매가 안 되니 전·월세 거래도 주춤하다"면서 "'짐을 싸겠다'는 중개업소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K씨가 주로 거래하는 노변동 W아파트(753가구)는 요즘 거래가 거의 없다.
2015년 11월에 1건, 12월에 1건뿐이었다. 2016년 들어서는 한 건도 없다. 시세도 작년 11월보다 최대 6000만원 정도 하락했다. 2016년 들어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이 3개월 연속 급감했다. 대구·광주 등 그동안 주택 경기가 과열됐던 일부 지방에서는 거래량 감소 폭이 50~60%에 달해 '거래 절벽' 현상마저 보인다. 해석은 엇갈린다. 지난해 거래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만큼 '기저(基底) 효과'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규제, 공급 과잉 논란 등이 겹치면서 주택 시장이 경착륙(硬着陸)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광주 등 지방 매매 거래 위축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2015년 12월을 시작으로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4월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월 주택거래량은 7만7853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11만1869)보다 30.4% 급감했다. 주택 거래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건 2015년 말부터다. 지난해 12월(-3.7%)을 시작으로 올해 1월 -21%, 2월 -24%로 감소 폭이 커지더니 3월에는 -30%를 넘었다. 지방 대도시는 '거래 절벽'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1~3월 누적 기준으로 대구는 2015년 같은 기간보다 58.9%, 광주광역시는 46.1%가 각각 줄었다. 수도권(-26.1%)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방에서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1~2월에는 그나마 가격이 저렴한 빌라나 원룸 거래는 좀 있었는데 3월 이후부터는 이마저도 끊겼다"며 "지방 도시는 대기업이라고 할 게 거의 없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 지역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 주택 경기 위축, 경착륙 막아야"
전문가들은 2015년 주택 시장이 예외적으로 호황을 누렸던 만큼 2016년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연착륙(軟着陸)'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지난 4~5년간 조정기를 거치면서 신규 분양 물량이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아 공급 과잉 우려가 적은 편이다.
서울의 경우 강남 개포지구 '래미안 블레스티지' 등 재건축 아파트가 청약에 성공하면서 주택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지방이다. 부동산리서치업체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경우 2015년 입주 물량이 1만4800여 가구였지만, 올해는 2만6500여 가구로 80% 정도 늘어난다. 광주 역시 입주 물량이 작년 5700가구에서 올해 1만500가구로 82% 급증한다. 대전과 충남도 입주 물량이 각각 60%, 75% 증가한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지방 도시의 경우 지난 2~3년 사이 대규모로 공급된 아파트의 입주가 올해부터 시작되면서 공급 과잉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5월부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지방에서도 실시되는 등 악재(惡材)도 남아 있다. 정부는 주택 시장 위기론에 대해 "시장에 개입할 방법이 없다.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며 손을 놓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지방에선 공급 과잉 논란이 있음에도 아직도 신규 분양이 몰리는 지역이 있다"며 "정부가 시장에 미시적 차원에서 연착륙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경착륙 조짐… "대출규제 탄력 적용해야"
2016년 들어 주택시장이 경착륙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5년 미국 금리인상과 공급과잉 논란 등을 겪으며 부동산 경기가 하강할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의 냉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도권을 시작으로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가 주택시장 냉각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위기에 동감하면서도 이는 지난해 좋았던 분위기에 대한 기저효과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반기 회복론’이 나오고 있지만 현 상황을 방치하다보면 연착륙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얼어붙은 심리에 거래 실종·미분양 급증
현재 주택시장은 기존 아파트거래량이 급감하고 미분양도 속출하고 있다. 2월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주택매매거래량은 전달인 지난해 12월의 70%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주택거래량은 6만2365건으로 지난해 12월(8만7871건)보다 29.0%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달(7만9320건)에 비해서도 21.4% 줄어든 수치다. 거래절벽 현상은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두드러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5505건으로 지난해 12월(8198) 대비 2693건 줄어 33%가량 줄어든 모습이다. '부동산 불패'라던 서울 강남권에서는 가격 하락세까지 현실화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에 특히 민감한 강남권 일부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억대의 가격하락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강남구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지난해 12월 607건에서 올해 1월 341건으로 급격히 줄어든 뒤 2월16일까지 96건에 그쳤다.
거래가 자취를 감추면서 급매로 나오는 일부 물량이 거래되며 실거래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분양시장도 한겨울…건설사 물량조절 움직임
분양시장 역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6만1512가구로, 2개월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지난 1~2월 분양한 아파트 단지는 2곳 중 1곳이 청약 마감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수요가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서 있는 상태라 특별한 모멘텀 없이 시장 분위기가 반전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2월(수도권)부터 시행된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매매심리 위축을 불러온 측면이 크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금융포용 필요 "담보대출규제 유연한 적용"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와 달리 부동산 경기가 꺾인다는 인식이 퍼지며 관망세가 지배적이라 시장이 회복하는 것은 조정기를 거치는 상반기 이후나 정부의 긍정적 시그널이 나온 상태에서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현 상황을 경착륙으로 표현하기는 성급하다"며 "연착륙을 위해서는 과도한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16일 주택산업연구원도 '주택시장 긴급진단' 세미나를 열고 정부의 주택담보대출태도 강화 기조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현 주택시장이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도 내놨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급 누적물량, 분양물량 대비 미분양물량, 입주물량 등을 고려하면 공급과잉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함영진 센터장은 "금융정책 기조를 바꾼다는 것은 가계부채의 건전성 훼손은 물론 시장에 혼선을 주기 때문에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셋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나 미래소득이 있는 맞벌이가구 등에 금융포용책을 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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