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해외건설 새 금맥 ‘신도시’
해외건설 새 金脈 ‘신도시’…23조원 잭팟터진다
대우·한화, 사우디아라비아에 ‘분당 2배’ 도시 건설
신도시 수출나선 건설업계, 파이낸싱 한계 극복해야 승산
한동안 저(低)유가로 휘청거리던 해외건설 사업에 신도시 수출이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석유화학 플랜트가 대부분이던 중동에서 한국 대형 건설사가 경기도 분당 2배 크기의 신도시 건설에 뛰어들면서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섰다. 총사업비만 최대 200억달러(약 23조원)에 달해 연말께 본계약을 체결하면 국내 건설사가 해외에서 따낸 공사 중 최대 규모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대우건설·한화건설 컨소시엄과 사우디아라비아 주택부는 3월24일 서울 반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사우디 다흐야 알푸르산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10년간 주택 10만가구를 짓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우선 신도시에 들어설 주택 10만가구를 대우건설과 한화건설, 현지 건설사 사팍(SAPAC)이 만든 컨소시엄이 시공한다는 내용이지만 일단 주택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면 향후 인프라스트럭처 공사를 비롯한 신도시 조성 사업 전체를 도맡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도시 조성 프로젝트 전체 사업비는 약 180억~200억달러(약 21조~23조원)로, 설계가 끝나면 국내 건설업계 사상 해외건설 수주 규모로는 최대가 될 전망이다. MOU에 이어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은 본격적인 설계에 나서 오는 10월께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속되는 저유가 탓에 국내 건설사의 해외 주력 사업인 플랜트 공사 발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신도시 건설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간 해외 수주 물량 가운데 최고 80%를 차지할 만큼 석유화학 플랜트에만 편중된 사업 영역이 최근 급격한 도시화로 수요가 늘고 있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도시개발사업에 뛰어드는 전략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판교·세종 신도시 노하우가 무기…`신도시 韓流` 퍼뜨린다
대우·한화, 사우디에 사상 최대 신도시 수주… 주택 부족 신흥국 공략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이 국내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 프로젝트, 그것도 신도시 개발사업 수주를 눈앞에 두면서 업계가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한류(韓流)' 문화를 등에 업고 '한국식 신도시' 수출이 건설업계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를 전망이어서다. 이번 수주는 그동안 국내 건설업체들이 주력으로 여기던 석유화학 플랜트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저유가 파고를 극복할 새 먹거리로 '도시'를 주목한 판단력과 잇단 수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현지 시장 문을 두드린 불굴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화건설이 시공 중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에서 작업자들이 롤러로 도로를 닦고 있다.
사우디는 잇단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 발주로 과거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따낸 연간 공사금액 가운데 무려 절반을 차지할 만큼 한국 건설회사들의 '수주 텃밭' 역할을 해왔다. 대우건설 역시 1992년 현지합작법인을 만들면서 이 나라에 진출한 이후 1억2200만달러짜리 라스타누라 복합석유화학단지 공사를 수주하는 등 주로 플랜트 프로젝트에만 주력해왔다.
그러던 대우건설이 신도시를 만드는 주택개발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2011년부터다. 사우디는 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무려 600만명 이상이 수도 리야드에 몰려 있지만 주택 보유율이 60%에 불과하다. 자연히 주택난이 심각한 상태다. 결국 사우디 정부는 주택부를 신설하고 국왕까지 나서 주거시설 확대를 국가 핵심사업으로 내세우며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섰다.
대우건설은 그 와중에 사우디 제2도시인 제다에 주택 2만5000가구를 짓는 3억3000만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따냈다. 하지만 현지 금융기관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실패하고 발주처가 잇달아 계약조건을 바꾸는 통에 사업 위험이 커져 눈물을 머금고 시공권을 포기했다. 그래도 주저앉지 않았다. 대우건설은 사우디 정부가 내놓는 주택건설 프로젝트마다 도전장을 던졌다. 또 사우디 정부에 갖가지 도시개발사업을 제안하는 자문역을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강호인 국토부 장관, 마제드 알호가일 사우디 주택부 장관, 최광호 한화건설 사장(왼쪽부터)이 3월24일 서울 반포 JW메리어트호텔에서 다흐야 알푸르산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국토교통부
그 결실이 이번에 나온 셈이다. 2015년말 사우디 정부가 "10만가구가 사는 신도시 조성계획을 제안해달라"며 대우건설 측에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주처를 노크한 끝에 도시개발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인정받은 것이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은 "단순히 아파트만 가득한 베드타운이 아닌 기업, 상업·주거시설이 어우러진 자족형 신도시로 만들어야 주택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게 주효했다"며 "이번 프로젝트로 향후 사우디에서 나올 다른 신도시 공사 수주뿐 아니라 가까운 중동국가와 북아프리카 도시개발 사업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가 2016년 1월 7년간 약 4000억달러(약 464조원)를 투자해 주택 150만가구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만큼 대우건설은 앞으로 발주될 대형 주택공사와 인프라 건설공사를 따는 데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한화건설이 컨소시엄에 합류한 것은 2012년 수주한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가 핵심 역할을 했다. 여의도 6배 크기 용지에 공사비 101억달러를 투입해 주택 총 10만가구와 도로, 학교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설계부터 시공까지 단독으로 맡은 한화건설의 도시개발 역량을 눈여겨본 사우디 정부가 '사업 참여' 러브콜을 보냈다.
최광호 한화건설 사장은 "사우디 프로젝트는 이라크에 이어 두 번째 대규모 해외 신도시사업"이라며 "신도시 개발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져 동남아시아 등 잠재시장을 계속 개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신도시사업 수주는 석유화학 플랜트에 편중된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저유가 때문에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35%나 급감한 수주실적을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 461억달러 가운데 플랜트 등 산업설비 분야는 265억 달러 규모로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중동실장은 "신도시 개발 경험이 많은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 신도시 개발에서도 강점이 많다"며 "유가 하락으로 대형 플랜트 발주가 취소·연기되는 때인 만큼 신도시사업을 발굴한 것은 단비"라고 진단했다. 정부도 해외당국과 협력해 우리 기업들의 신도시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17일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제품과 플랜트를 넘어 이제는 도시 자체를 수출해야 한다”며 해외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주문할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3월24일 마제드 알호가일 사우디 주택부 장관과 '한-사우디 주택분야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전문인력 파견 등 해외 신도시 수출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활기띠는 한국형 신도시 수출
한화, 이라크에 분당급…공사비 101억달러
포스코건설은 베트남에 첫 자립형 신도시
2000년 28억명에 달했던 전세계 도시 인구는 2030년 50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 기간 중에 도시화율은 46%에서 6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 인구 집중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지만 필연적으로 도시 주택난을 초래한다.
중동, 아시아, 중남미 개발도상국가와 신흥국을 중심으로 신도시 수요가 급증하는 이유다. 신도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 신도시 수출도 성과로 하나둘씩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 사례는 한화건설이 분당 신도시급 규모로 이라크에 조성 중인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 떨어진 곳에 주택 10만가구와 도로, 상하수도, 학교, 공공기관 등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로 공사비는 101억달러(약 11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 공사는 한화건설이 2012년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에서 일괄 수주했다. 당시로서는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사상 최대 규모 단일 프로젝트였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주택 10만가구 외에도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대규모 신도시를 총괄 개발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3120가구는 이미 완공돼 발주처에서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스마야 현장에는 한화건설 300여 명, 협력사 40여 개사 300여 명, 외국인 7000여 명 등이 신도시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중장비 800여 대를 비롯해 총 1600여 개 한국산 건설장비가 투입되는 등 연관산업 동반 진출과 일자리 창출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국내 건설사들의 주택사업 진출이 활발한 베트남에서는 포스코건설이 신도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2006년부터 하노이 서부 신흥 주거 지역인 북안카인에 '스플랜도라' 신도시를 건설하는 중이다. 총사업비는 32억4000만달러로 264만㎡ 땅에 아파트·빌라·테라스하우스 등 주택 6130가구와 호텔·오피스빌딩·상업시설·종합병원 등을 건설하는 신도시 프로젝트다.
이같은 자립형 신도시는 베트남 최대 규모인 동시에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9월 1단계 공사가 완료됐고 현재 2단계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1단계 사업에서 아파트·빌라 등 1049가구 중 80% 이상이 분양됐다"며 "빌라와 테라스하우스는 3.3㎡당 700만원 후반대로 비교적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매물이 없고 가격도 2억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하노이 남쪽으로 12㎞ 떨어진 하동 신도시에 총 1000여 가구 규모 아파트 건설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동 힐스테이트'는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수행한 첫 번째 주택사업이다.
신도시 수출나선 건설업계, 자금조달 한계 극복해야 승산
사우디에 초대형 신도시 수출 기회를 잡으면서 침체된 해외건설 업계에 모처럼 생기가 감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본 계약 체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신도시 수출사업 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지도 아직까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자금조달(파이낸싱)을 꼽고 있다. 한만희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신도시 수출도 다른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처럼 파이낸싱이 가장 중요하다”며 “파이낸싱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도시수출 길이 더 크게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도시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나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국가 재정이 부족해 해외 사업자에게 자금조달까지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건설사가 10억 달러 이상 자금을 조달해 회수기간 긴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정창구 해외건설협회 금융지원처장은 “개발도상국가에서 나오는 신도시 프로젝트 대부분은 업체에 100% 파이낸싱을 요구한다”며 “인·허가 리스크와 분양 리스크가 큰 신도시 사업은 건설사도 꺼리는 마당인데 훨씬 보수적인 국내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지원해주겠냐”고 반문했다. 정 처장은 “신도시와 같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는 공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가서 수주도 하고 파이낸싱도 해야 길이 열린다”며 “개별 기업에게 맡겨두면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지는 대형 인프라 사업 수주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이 해외 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도시 수출처럼 장기 프로젝트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적·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담당자가 바뀐다고 정책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한 원장은 “도시 수출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민간업체 주도로 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지원을 강화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방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에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 각국 정상들이 방문하는 것도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조치다. 단순히 집만 지어주는 게 아니라 도로·가스·전기·상하수도 등 각종 인프라 수출을 동반하는 도시수출이 필요하다는 충고도 있다. 정운섭 해외도시개발지원센터 국장은 “주택만 짓는 도급공사는 더 이상 없다고 보면 된다”며 “신도시 기획단계부터 뛰어들어 전체 도시 인프라를 수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추진 중인 도시 수출이 지역적으로는 중동과 베트남에, 종류별로는 주택에 집중돼 있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부상하고 있는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 중·남미 국가들까지 시장을 넓히고 주택 외에 다양한 신도시 인프라 수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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