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 이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집’이 아닌 ‘행복한 가정’
지금 60~70대는 국가·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쳐왔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경험했고, 급변하는 경제 발전을 함께 해왔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때는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셋방살이로 시작해 주인집 눈치를 보며 집 없는 설움을 겪다가 마침내 내 집을 갖게 되었을 때, 그때의 감격을 중장년 세대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렇듯 ‘내 집 마련’, ‘내 소유의 집’이란 단순한 재산증식의 의미가 아니다.
‘집’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생활공간이자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보금자리다. 집을 넓히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해온 삶의 터전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었고, 그 자체로도 성공의 상징이었다. 현재 주택연금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탤런트 최불암씨는 최근 한 일간지 기고에서 “얼마 전 주택연금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갑용(70)씨는 은퇴 후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내다 주택연금에 가입하신 분이다.
기존에 받던 국민연금에 주택연금을 더하여 매월 적지 않은 금액을 받게 되면서 오히려 자녀 보험까지 들어줬다고 한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아내도 지금은 손주들 용돈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여유롭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주택을 상속하겠다는 인식만 바꾸면 자녀의 부양부담을 덜어주고 안정적인 노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실제 주택연금을 받으며 만족해하는 다수 가입자들을 만나본 후 주택연금이 우리 세대에 정말 필요한 제도라는 사실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주택연금이 노후 복지와 주거 보장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당국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 우대형 주택연금 등으로 구성된 '내집연금 3종 세트'를 4월25일부터 시행한다. 이번 3종 세트는 소득별 계층별로 적용 대상을 세분화한 진일보한 정책안으로, 가계부채와 소비 부진이라는 한국 경제의 두 가지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데 주택연금의 역할은 크다.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고 고령자들이 주택만 보유한 채 노후를 맞는 우리나라에서 주택연금은 특히 중요하다. 이에 관련 정책은 2007년 제도 도입 이후 발 빠르게 진화해왔다. 이제는 기존 정책을 효과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주택연금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주택연금을 알리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일반론적인 주택연금 홍보에서 벗어나 수요자별로 차별되게 접근해야 한다.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는 다양한 수요가 있으므로 이를 잘 발굴해 잠재된 수요를 현실화해야 한다.
둘째, 고령자에게만 주택연금을 알리지 말고 자녀들에게도 주택연금의 효용가치를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 고령자들이 주택연금을 가입하는 난관 중 하나가 자녀의 반대라고 한다. 문제를 푸는 열쇠는 자녀에게 있는데 계속 고령자에게 가입하라고 권유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녀가 부모에게 주택연금을 권유하는 게 훨씬 부드럽다.
셋째, 주택을 보유한 고령자들은 주택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주택연금을 통해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여차하면 주택을 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주택가격이 일본처럼 급락하게 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노후에는 가격이 변동하는 주택 자산보다는 이자를 꾸준히 주는 국공채 자산이 낫다. 주택연금은 주택금융공사가 연금 지급을 보장하는 만큼 국공채나 마찬가지다. 주택연금은 자신의 집에 살면서 국공채를 보유하는 셈이 된다.
넷째, 주택연금을 집값을 전망해서 가입하려고 하지 말고 생애설계의 한 축으로 생각해야 한다. 집값이 더 오르면 그때 가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산가격을 올바로 전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입 후 집값이 많이 오를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쓴 부채와 주택자산을 비교해서 주택자산이 더 많으면 차액이 자녀에게 상속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은 젊은 시절 특별히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노령층과 앞으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집은 이제 자식에게 남겨줄 ‘유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쓰고 갈 마지막 ‘자산’이 되었다. 집을 물려주는 것보다 집을 활용해 여유있는 노후를 보내는 것이 자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달라지는 세태 속에서 이제 우리의 상속 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집’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한 노후’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같은 주택연금의 효능이 더 많이 알려지고, 이를 통해 세대 간 벽을 깨는 노후 대비책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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