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권’ 지자체 이양 한달…수도권 그린벨트 ‘조각’ 난다
기획부동산 ‘쪼개팔기’ 기승…“해제땐 5배 이상 차익” 현혹…지방선 ‘무늬만 완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방자치 시대’를 맞자마자 보전과 개발의 황금비율을 찾지 못한 채 정책의 근간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말부터 30만㎡(약 9만 평) 이하의 그린벨트 해제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긴 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해제 분위기에 편승한 ‘쪼개팔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면 영·호남 등 남부지방의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실질적 해제권한이 없어 ‘무늬만 이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6월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기 하남시 감북·초이동, 과천시 과천·주암동,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서울 강동구 둔촌동 등의 일부 기획부동산 업체는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권한 이양 조치 이후 과장광고 공세 등을 통해 그린벨트 내 부지를 100∼500㎡ 규모로 쪼개 파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3.3㎡당 40만∼120만 원대의 가격에 그린벨트 내 유망 녹지를 살 수 있다며 일반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한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40여 일 만에 전체 필지의 80% 이상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며 “해제 시 최소 투자금액의 5배 이상을 벌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유혹했다.
문제는 이들 매물의 대부분이 실제 그린벨트 해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에 위치한데다 쓸모도 없는 땅이어서 자칫 투자자들이 재산상 손해를 입기 쉽다는 점이다. 결국 그린벨트 해제가 수도권에서는 정부의 당초 규제개혁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투기와 난개발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한편, 영남과 충청·호남 등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정부의 권한이양 취지는 공감하지만 환경보존 1·2등급지 해제를 금지한 점, 도심에 인접한 그린벨트 지역에 대한 해제만 허용한 점 등이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라서 실효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로 해제권한을 이양했다고 하지만 실제 해제 가능지역은 경기도 5∼6곳, 대전 1곳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비수도권 지역의 경기 활성화와 주민편의 향상을 도모하려면 규제문턱을 추가로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제한구역을 의미하는 그린벨트는 도시 주변의 녹지공간을 보존해 개발을 제한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자는 취지로 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린벨트구역 안에서는 건축물의 신·증축, 용도 변경, 토지의 형질 변경, 토지 분할 등의 행위를 제한하고 있으나,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한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국민 생활의 편익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로 허가권자의 승인이나 허가를 받을 경우 개발행위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밀도시의 방지, 상수원 보호, 국가안보 등을 위하여 1971년 7월 서울지역을 효시로 도입됐다.
임야 ‘쪼개기 분양’ 광고 성행…난개발·묻지마 투자 조장
정부가 지난 4월 말 30만㎡(약 9만 평) 이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긴 후 그린벨트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 조치가 규제 개혁 차원에서 그린벨트 해제 절차를 간소화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자칫 해제와 난개발을 부추기고 ‘묻지마 투자’를 유발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화일보는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권한 지자체 이관의 파급 효과, 그린벨트의 훼손과 난개발에 따른 후유증, 그린벨트의 바람직한 보존 및 활용 방안 등을 2회에 걸쳐 점검해 보았다.
30만㎡ 이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정부에서 시·도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토교통부의 개정 ‘공공주택 업무처리 지침’이 지난 4월 29일부터 실행되고 난 후 수도권 일부 지역의 그린벨트가 들썩이고 있다. 아직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식 해제 절차를 밟고 있는 그린벨트 땅은 많지 않지만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으로 올 들어 경기 하남시 감북·초이동, 과천시 과천·주암동, 성남시 금토동, 의왕시 학의동 등과 서울 강동구 둔촌동 등 그린벨트가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특히 최근 들어 그린벨트 해제가 예상되는 지역의 땅을 작은 크기로 나누어 파는 이른바 ‘택지식 분양’이 판을 치고 있다. 일부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그린벨트 내 땅을 헐값에 사들여 쪼갠 후 자신들의 온·오프 라인을 이용한 과장 광고 등을 보고 몰려 온 투자자들에게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넘기고 있다. 한 기획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6000만∼7000만 원만 있어도 서울에 인접한 그린벨트 땅에 투자할 수 있다”며 “그린벨트가 (조만간) 풀리면 해당 부지에 4층 미만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들 그린벨트는 대부분 개발 가능성이 낮은 데다 해제 여부조차 정해지지 않았거나 해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땅이 태반인 것으로 지자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또 지자체 대부분이 사실상 그린벨트 분할 판매를 불허하고 있어 섣불리 투자에 나섰다가 나중에 재산상 큰 피해를 보거나 처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국토교통부가 2015년 5월 ‘공공주택 업무 처리 지침’ 개정을 예고한 후 수도권의 그린벨트 내 땅을 대거 매입했으며 올 들어서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이 높아지자 본격 판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영 건국대 행정대학원 겸임 교수는 이와 관련해 “하남 지역 등에는 해제를 추진하는 지역이 없다”며 “해제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간을 줄이기 위한 국토교통부의 해제 권한 이양 조치가 일부 업체들의 배를 불리고 해제와 난개발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같은 그린벨트의 해제와 주변 지역 땅값 상승에는 선거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예비후보들은 그린벨트 해제와 개발을 앞다퉈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허성곤(더불어민주당) 김해시장은 당시 재·보궐 선거에 출마, 첨단산업단지와 주택단지 개발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공약을 내세웠으며 당선 후 그린벨트 해제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윤한흥(경남 창원 마산회원) 의원도 당시 선거 운동 공약으로 산업단지 일대 그린벨트 해제를 내세웠다. 일부 단체장도 그린벨트 해제를 선심성 공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해제 신청이 지자체마다 쇄도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개발 붐 타고 불법훼손 매년 기승…경기, 1160(2013년)→1308건(2015년)
그린벨트 해제 기대 심리 속에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불법행위와 그린벨트를 쪼개서 파는 편법분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한 일부 단체장들은 도시개발 및 복합단지 조성을 위해 앞다퉈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면서도 그린벨트 내 시설 인허가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잇따라 사법 처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 고양·남양주·구리·하남 등 도내 21개 시·군 그린벨트 지역에서 주택과 축사, 창고, 근린생활시설 등의 건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불구, 음식점과 숙박업소 등 업체들이 그린벨트를 훼손해 적발된 건수가 지난 2013년 1160건, 2014년 1260건, 지난해 1308건, 올 들어 지난 3월까지 274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강과 팔당호를 끼고 있는 남양주시는 그린벨트 불법 훼손행위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건수가 2014년 200건, 지난해 230건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구시도 그린벨트 훼손 적발 건수가 지난 2013년 58건, 2014년 82건, 2015년 97건으로 계속 증가추세다. 구리시 갈매동에서 T갈비식당을 운영하는 H(50) 씨는 최근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남의 소유인 인근 갈매동 일대 970㎡ 배밭을 파내고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 10여t을 매립하는 등 그린벨트를 훼손해 경찰에 고발됐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복합단지 등 역점사업을 위해 앞다퉈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고 있으나 단체장이 인허가 비리에 연루돼 잇따라 구속되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하남 교육연구단지와 고양 자동차서비스 산업단지, 의왕 오매기지구 도시개발, 안양 석수 체육공원, 부천 종합운동장, 김포 신곡 의료단지, 김해 첨단산업단지, 창원 내서 산업단지 등이 단적인 예다. 이교범 하남시장은 최근 그린벨트 내 가스충전소 건립 인허가 대가로 업체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5년간 여의도 면적 12.7베 ‘숲’이 사라졌다…부산, 전체의 41% 1위 지난 5년간 전국적으로 사라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면적이 3670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만㎡)의 12.7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만큼 도시에 맑은 공기를 공급했던 ‘도시의 허파’가 사라진 셈이다. 대다수 사업이 산업단지, 국책사업, 보금자리 임대주택, 체육시설 등 지역 현안사업 명목으로 진행됐지만, 환경훼손, 우량농지 감소, 부동산 투기, 땅값 상승 등 해제 후유증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6월7일 국토교통부와 전국 시·도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해제된 그린벨트 면적은 총 3670만㎡로 집계됐다. 2012년 1594만㎡가 풀려 가장 많았고, 2013년 798만㎡, 2011년 587만㎡, 2014년 559만㎡, 2015년 131만㎡ 등의 순이었다. 최근 수년간 해제면적이 감소추세이지만 30만㎡ 이하 해제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이관되면서 해제 러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부산이 지난 5년간 1530만㎡의 그린벨트가 풀려 같은 기간 전국 해제 면적의 41%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수도권 개발수요가 높은 경기도가 748만㎡로 2위를 차지했다.
국책 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사업이 이뤄진 대전이 384만㎡가 해제돼 3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서울 193만㎡, 울산 181만㎡, 대구 150만㎡, 경남 143만㎡ 등의 순으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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