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守岩칼럼>재개발 갈등과 역사·문화적 보존가치
개발과 역사· 문화적 가치 모두 살릴 묘안 찾아내야
이른바 ‘옥바라지 골목`으로 이름 붙여진 옛 서대문형무소 앞 동네. `무악2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1만1058㎡(3350평) 땅에 포함된 낡은 골목이다. 행정구역으론 서울 종로구 무악동 47번지 일대. 철거가 90% 이상 끝나 아직 헐리지 않은 주택은 `구본장 여관`을 비롯해 단 2채뿐이다.
5월17일 오전 이 여관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재개발 조합 측 용역반과 반대하는 일부 주민이 충돌했다. 몸싸움 중에 주민 한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가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장을 찾아 `공사 중단령`을 내렸다.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곳은 그날 이후 도시 재개발의 민낯을 보여주며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공사가 멈춰선 뒤 벌써 보름이 흘렀다. 그사이 조합 측은 "박 시장이 법적 근거도 없이 월권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업비 550억원을 대출로 끌어다 써 한 달 이자비용만 2억원에 달해 피해가 크다는 주장이다. 반대편에 선 일부 주민은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며 맞선다. 양측 간 대화는 실종됐다. 갈등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울시는 지난 5월30일 오후 7시부터 `12시간 끝장토론`을 벌여 해법을 찾자고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조합과 반대 주민 모두가 참여를 거부해서다. 서울시로서는 난감하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엔 사업계획을 위반한 때에만 행정당국이 재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는데 이곳은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구역 지정을 해줬고 종로구청이 관리처분까지 내준 터다. 법원도 개발 반대 측이 제기한 관리처분계획 무효소송에서 조합 손을 들어줬다. 법·행정절차상 딱히 이 사업을 막을 방도가 없는 셈이다. 일이 이 지경으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건 참 답답하다. 서울시의 철거유예 요청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사를 강행한 것은 조합이다. 철거 중단 뜻을 이룬 뒤엔 토론을 해보자는 서울시 제안을 거부한 개발 반대자들. 양측 모두 꼬인 실타래를 풀겠다는 마음이 없는 듯하다.
개발과 보존 주장만 평행선을 달린다. 불은 당국이 지폈다. 2011년 11월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기거 100년 여관골목`으로 지정하고도 전혀 숙고(熟考) 없이 공사를 허가한 종로구청. 예고도 없이 공사를 전격 중단시킨 서울시. 옥바라지 관련 사적을 조사하는 데엔 뒷짐을 진 채 행정절차를 밟아 갈등을 부추긴 꼴이다. 서울시가 철거유예 공문을 종로구청에 수차례 보내 협조를 구했다고 하지만 불명확한 기간과 사유로 무한정 공사를 막을 순 없었다. 당장 손실이 나는데 보상 없이 철거를 그만둘 조합도 아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돈이다.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끝내야 이익을 더 챙기는 조합이나 골목 한복판에 자리 잡아 `알박기` 의혹을 받는 구본장 여관 주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구본장 주인은 사업시행인가가 난 뒤인 2014년 5억4000만원을 들여 여관을 사들였고 이미 5억8000만원 보상금을 챙긴 마당에 배 이상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린다는 게 조합 측 얘기다. 재개발사업의 분쟁은 개발지역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행사(조합)와 세입자 사이에 생긴다. 분쟁은 실제 재개발이 시작되는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들 단계에서 주거이전비와 임대아파트 입주권 등 구체적인 보상 계획이 나오고 여기에 세입자나 철거민들이 불복하면서 갈등이 커진다. 여기에다 시공사의 ‘밀어붙이기’식 철거 등 사업 진행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곳 재개발은 다른 형태로 이뤄질 수도 있었다. 2006년 3월 개발구역 지정이 된 뒤 7년이 지난 2013년에야 사업시행인가가 떨어졌고 종로구청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게 2015년 6월이었으니 문화유산 가치가 있는지를 조사·검토해볼 시간은 충분했다. 뒤늦게 제기된 보존 주장이 수상쩍지만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면 개발과 함께 역사가치를 살릴 묘안이 없지도 않을 게다. 종로 공평1·2·4구역 개발의 경우 조선시대 집터와 도기 등 매장문화재가 발견되자 유적을 보존하는 대신 사업자에게 용적률·건폐율 인센티브를 줘 손실을 보상했다. 이미 대부분 주민이 이주한 무악2구역에 계획을 다시 세우라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
지금의 골목이 아닌 독립문 쪽에 진짜 옥바라지 골목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골목 일부를 주변에 복원하거나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면 조합에 일방적으로 손실을 떠넘겨선 안 된다.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는 건 행정당국의 몫이다. 이번 옥바라지 골목 갈등 처리과정이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도심 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는 선례가 된다면 당국으로선 늙어가는 도시를 재정비하는 데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 moon4758@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