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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9월 20일 오후 지진 피해를 입은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9월 12일 진도 5.8의 중급규모 지진이 발생한 후, 23일까지 일주일간 423회의 여진이 이어졌다. 경주 여진 발생횟수는 2009년부터 작년까지 7년 동안 일어난 지진(396회)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19일에는 진도4.5, 21일에는 진도 3.5의 여진이 연이어 발생, 서울·경기지역까지 진동이 감지되면서 발원지인 경주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경주에 위치한 원전단지의 안정성문제와 추가 여진에 대한 공포, 내진설계 미비로 인한 불안 등 ‘지진 트라우마’가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진 예보는 물론 피해전달 및 조치에 미흡한 대처를 반복한 정부의 대응체계를 비판하며, 내진설계 의무화 및 체계적인 경보시스템 마련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보시스템·대처능력 취약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신고는 4400여건에 이르며 피해규모는 58억3000여 만원으로 잠정집계됐다. 이 중 공공시설 피해액은 55억8000만원, 사유 재산 피해는 13건 2억5000만원으로 파악된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추가 여진이 계속되면서 지진 공포와 피해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진피해복구지역을 방문한 것도 본진 피해 후 8일째인 20일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진 활동이 중·저 수준으로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진도 5.8의 경주 지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인구 고밀도, 도시화, 난개발, 내진설계 미비 등으로 지진재해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지진발생 후 일주일간 보여준 정부의 미흡한 대처다.
지진·풍수해 같은 천재지변부터 보행 안전 등 모든 안전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2014년 11월 신설된 국민안전처는 재난문자도 제때 발송하지 못하고, 지진 대피 요령이 적힌 안전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때마다 먹통이 됐다. 기상청은 지진 발생 후 50초 이내에 경보 발령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긴급재난문자를 국민들이 받기까지 본진 8분과 여진 15분이 각각 소요됐다.
이는 비효율적 경보시스템 운영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지진이 나면, 기상청이 진앙과 규모를 파악해 안전처에 통보하는데 3~5분, 안전처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을 선정해 문자를 발송하는데 또 3~5분이 소요된다. 더욱이 올 예산이 3조2114억 원이나 되는 국민안전처가 비용문제로 100원도 안 되는 장문문자(MMS) 대신 60자 이내의 단문문자로만 재난문자를 발송해 충분한 정보를 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경찰과 소방 당국이 ‘카카오톡’ 등 SNS로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경찰과 소방 당국이 재난 상황에서 쓰는 주파수공용통신(TRS)은 음성 통신만 가능하다. 지난 12일 경주 첫 지진 발생 때 통화·문자량 폭주로 전화와 카카오톡 등이 장시간 중단됐다. 유관 기관끼리 정보 공유를 할 수 없어 재난 방재에 필수적인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큰 규모의 본진이 발생한 후 본진과 유사한 규모의 여진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면 이로 인한 피해는 본진보다 크게 증가할 수 있다”며 “지진재해 대비 시스템 확대 등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日·美 10초내 지진 조기경보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과학기술로 지진에 대한 단기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진피해 최소화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신속·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초동대처다.
일본의 경우 규모 4.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10초 이내에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가동해 신속 대응하고 있다. 지진이 빈발하는 대만, 이탈리아, 미국 서부 등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이 지진 재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진 조기경보 및 지진신속대응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진도 6.5이상의 대형 지진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오는 2020년까지 지진 발생 후 10초 이내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지진 대처 능력이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에서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운영 중인 지진정보 제공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부터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지진정보 알리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경주 지진 발생 당시 접속자가 폭주해 핵심기능인 알림 기능이 제대로 작동조차 못 했다. 안전처가 만든 ‘안전디딤돌’(지진 대피소 위치정보 제공)에 기록된 대피소 위치 정보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수년 전에 없어진 은행건물이 아직도 기재돼 있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지진 대피 후 주민통제 체계도 갖춰야 한다. 현재 안전처는 지진이 나면 각 기관이나 지자체가 상황에 따라 ‘재량껏’ 대응토록 하고 있다. 12일, 19일 본진과 여진에 놀라 인근 운동장으로 대피했던 경주 인근 주민들은 저마다 SNS에 “언제 대피하고,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통제하는 사람이나 안내방송조차 없어 새벽까지 불안함에 잠을 못 이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내진설계 건축물 6.7%불과
9.12 경주지진 이후 국민들의 관심은 ‘과연 우리 집은 지진에 안전한가’로 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물 전국 698만 동 가운데 20%만이 내진 설계가 의무화돼있고, 실제로 내진 설계된 건축물은 전체의 6.7%에 불과하다. 이는 민간 건축물 10개 중 9개가 지진에 취약하다는 의미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칫 큰 규모의 인명피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국내 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처음으로 의무화된 시기는 1988년이다. 신설된 규정도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물에만 해당하는 규정이었다. 평수로 따지면 약 3만평 이상 건축물에만 내진 설계를 의무화한 것이다. 이후 2005년에는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00m²(약 300평)’ 이상, 2015년에는 ‘연면적 500m²(약 150평)’ 이상으로 내진 설계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하지만 일반 소형주택의 경우, 내진설계에 대한 감독 절차가 의무화돼있지 않아 강제성 있는 법규 제정 또한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2층 건물을 지을 때도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내진설계가 안 된 건물에 내진보강 공사를 할 경우 용적률 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9월 20일 이런 내용의 건축법령 개정안을 22일자로 입법 예고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 ‘3층 또는 연면적 500m² 이상 건축물’에서 ‘2층 또는 연면적 500m² 이상 건축물’로 확대된다. 우리나라 지반 특성상 저층의 건축물이 지진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반영하여 이번에 2층 이상 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와 함께 기존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기존건축물을 내진 보강하는 경우에는 건폐율, 용적률, 대지 안의 공지, 높이기준 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해 내진보강 소요 비용 대비 경제적 부담 등으로 내진 보강에 소극적인 민간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이 외에도 건축물의 내진설계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건축물대장에 해당 건축물의 내진설계 여부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건축법을 위반해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 경우 건축 관계자 등에 대한 업무정지 및 과태료 기준을 마련해 불법행위를 방지하도록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988년 내진설계가 도입됐지만 현재 전체 건축물의 6.8%에만 내진설계가 적용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지진 등에 대해 건축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유사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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