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守岩칼럼>8·2부동산대책, 다주택자 '정조준'…투기잡기 극약처방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소득세 중과세… 투기과열지구 6년 만에 부활
守岩 문윤홍<한국부동산신문 大記者/칼럼니스트>
“정부는 집을 거주공간이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문재인정부가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대책을 쏟아내며 ‘부동산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부 과열지역에 맞춤형으로 마련한 ‘핀셋 규제’였던 지난 6·19대책을 발표한 뒤 한 달여 만에 다시 주택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으로 치닫자, 이번에는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 세제(稅制) 개편과 주택청약제도 개선, 대출 규제 등의 전방위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정권 초기에 ‘메가톤급’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확실히 잡지 못하면 5년 내내 집값에 끌려 다닌 참여정부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조치로 보이지만, 시장 냉각과 이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침체 등 부작용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8월2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방안(8·2대책)은 다주택자와 투기과열지구 규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8월3일부터 당장 서울 전역과 경기도 과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3억원 이상 주택을 거래할 경우,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 신고를 의무화했다. 투기과열지구는 2012년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를 마지막으로 전부 해제됐다가 6년 만에 부활했다. 서울 11개 구(區)와 세종시는 투기과열지구보다 강력한 규제를 받는 투기지역으로 분류됐다.
아울러 2016년 11·3대책과 지난 6·19대책에서 지정된 서울과 부산 해운대 등 전국 40곳의 청약 조정지역에서는 양도세 면제 요건이 강화돼 1주택자라도 2년 이상 거주해야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다주택자는 2018년부터 양도세 중과(重課) 면제혜택 등이 모두 사라진다.
청약제도 개편안과 부동산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도 대책에 포함됐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집값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성장률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며 “8·2대책은 집값 안정과 주거복지에 우선하는 정책은 없다는 현 정부의 선언”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주택시장 교란을 잠재우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 ‘극약처방’으로 평가했다. 2003년 참여정부가 내놓은 5·23대책 이후 14년 만의 가장 강력한 종합규제라는 설명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8·2대책은 세금·대출·재건축·재개발·청약 등을 망라한 초강도 종합대책”이라며 “전방위 대책의 영향으로 과열지역 중심으로 시장이 안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민간투자 위축, 거래 냉각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반기부터 2019년 1분기까지 매 분기 10만호를 넘어서는 대규모 아파트 입주러시가 개시되는 데다 금리인상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전방위적인 수요억제책이 자칫 주택시장 전반을 냉각시켜 거래관망을 넘어서 거래동결 현상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3주택자, 2018년 4월부터 1억 차익 ‘1100만원→3800만원’ 양도세 급등
문재인정부가 8·2부동산대책에서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 관리’를 주택정책의 핵심기조로 선포했다. 박근혜정부가 장기간의 저금리 상황에 편승해 ‘빚내서 집 사라’는 식으로 주택시장을 경기부양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면, 문재인정부는 정반대로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사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박근혜정부 전후로 지난 수년 동안 이어진 과도한 부동산 규제완화가 대내외 경제여건 개선 등과 맞물려 투기수요 급증과 심각한 시장 교란을 불렀다는 판단에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더 이상 주택시장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세 폭탄’
이날 발표된 대책의 핵심은 집값 과열지역에 유입된 다주택자를 통해 유입된 투기 수요를 세제 규제 등으로 억제하는 내용이다. 전국 40곳의 조정대상지역과 그 안에 포함된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의 1가구 2주택(조합원 입주권 포함)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등의 조치가 그것이다. 다주택자가 사실상 ‘잠재적 투기세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현재는 2, 3주택자라도 양도차익에 따라 기본세율(6∼40%)을 적용하지만, 앞으로는 2주택자는 집을 매도할 때 기본세율+10%포인트, 3주택자는 기본세율+20%포인트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3주택자가 3년 이상 된 주택을 양도차익 1억원에 처분한다고 하면, 현재는 기본세율 35%에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이 적용돼 양도세가 1100만원이다. 하지만 2018년 4월부터는 세율이 55%로 높아지고,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사라져 3800만원으로 뛴다. 따라서 다주택자가 세금폭탄을 피하려면 다시 소득세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주택을 양도하지 않거나 아니면 4월 이전에 1채만 남기고 다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요건도 까다로워진다. 8월3일 이후에는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 조정대상지역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려면 2년 이상 실제로 그 집에 거주해야 양도세가 비과세된다. 양도세 비과세 기준에 거주요건이 되살아난 것은 6년여 만이다. 그밖에 조정대상지역 분양권을 전매할 때도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2018년 1월1일부터 양도소득세율 50%가 적용된다. 현재 적용되는 세율(1년 이내 전매 50%, 1년 이상∼2년 미만 40%, 2년 이상 6∼40%)보다 최대 44%포인트 높은 것이다. 분양권 단기 전매차익을 노린 투기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이다.
◆실수요자 주택보급률 늘려
실수요자의 주택보급률을 높이려는 다양한 대책도 마련된다. 규제만으로는 실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전세난 심화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수도권 교통요지에 신규 공공주택지구를 개발하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연간 공공임대주택 13만가구, 공공지원 주택 4만가구 등 17만가구의 공적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도 마련한다.
연간 공급되는 공적임대주택 17만가구의 60%인 10만가구는 수도권의 실수요자와 청년·신혼부부 등에게 저렴하게 공급된다. 신혼부부를 위한 분양형 공공주택인 ‘신혼희망타운’도 연 1만가구씩 5년 동안 5만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는 기존에 신혼부부에게 공급하기로 한 연간 4만가구씩 총20만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예정 물량과 별도로 추가된 것이다. 신혼희망타운은 공공분양과 10년 분양전환 임대 등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되며, 신혼부부가 부담할 수 있는 전용면적 40~60㎡ 규모로 공급된다.
국토부는 앞으로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주택공급 확충과 관련한 세부내용을 발표한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경기도의 경우 2017년과 2018년에 신규 입주물량이 거의 각각 20만가구 수준에 달한다. 공급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시장 불균형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 수요가 있는 부분과 공급과잉 부분을 정확히 가려내 입지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신규주택 집값 잡기 총력…재건축·청약시장 투기도 원천봉쇄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8·2 대책’에는 다주택자 외에 단기 투기수요가 급증한 재건축·청약시장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응책도 마련됐다. 주택시장 전반에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성 자금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겠다는 선언이다. 정부는 신규주택 시장을 금융, 재건축, 청약제도 등 겹규제로 차단해 ‘풍선효과’를 기대하는 세력까지 막는다는 계획이다.
우선 투기수요의 돈줄인 주택담보대출부터 조여진다. 정부는 청약조정지역 중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60%와 50%에서 40%로 일괄 하향조정한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세대원이 추가 대출을 일으킬 땐 30%로 더 낮추고, 무주택 서민은 50%로 여유를 두는 등 화력을 1가구 2주택 이상인 다주택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연봉 6000만원인 직장인이 투기·투기과열지구에 8억원짜리 주택을 구매할 경우 20년간 원리금분할상환, 연 3.5% 금리를 전제로 대출 가능액은 4억3000만원에서 3억4000만원으로 줄고, 다주택자는 2억6000만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난다. 이번 규제로 영향을 받을 신규 대출자는 전체의 80%, 실수요자를 제외하면 66% 수준이 될 전망이다.
투기과열지구 카드는 사실상 ‘정비사업 규제’로 읽힌다. 서울 25개구 전역, 경기도 과천, 세종시가 신규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조합설립인가 이후 전면 금지되는 등 단번에 19개 규제가 적용된다. ‘부동산 규제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는 재건축 시장을 닫게 할 만큼 강력한 제재이다. 이 지역 재개발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입주권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부터 소유권이전 등기 때까지 전매도 금지된다.
주택거래신고제(2015년 폐지)도 일부 도입됐다. 거래가액 3억원 이상 주택이나 분양권, 입주권을 사면 기존 신고내역 외에 자금조달계획과 입주계획을 추가로 제시해야 한다. 투기지역도 서울 강남 4구 등 11개구와 세종시에 적용되면서 5년여 만에 부활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양도세 가산세율이 적용돼 1가구가 주택, 분양권 등 3개 이상을 보유하면 세율이 10%포인트 가산된다.
청약제도도 개편된다. 투기과열지구와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는 청약 1순위 자격을 위한 가입기간이 현행 6개월(지방)과 1년(수도권)에서 2년으로 강화한다. 국민주택은 통장 납입도 24회 이상이어야 한다. 가점제로 주택청약에 당첨된 가구원은 2년간 가점제 적용을 배제하는 재당첨 제한제도도 전국에 도입된다. 지금은 투기과열지구나 청약조정지역이 아니면 재당첨 제한이 없어 일부 가점이 높은 무주택자가 지방의 인기 민영주택을 6개월마다 청약하고 분양권을 전매하는 ‘분양권 쇼핑’ 사례가 있었다.
그동안 부동산 대책에서 연거푸 빠졌던 오피스텔 분양제도도 추가했다. 아파트에 대한 겹규제로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현재 수도권에 적용하고 있는 전매 제한, 거주자 우선 분양 20% 설정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부동산 투기수요를 단속하는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할 방침이다. 수사권을 갖고 상시적으로 시장을 점검하면 단속의 실효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다. 불법전매 처벌도 벌금 3000만원 이하에서 1억원 이하로 상향하기로 했다.
조정지역·수도권 다주택자, 추가대출 때 대출한도 10%씩 축소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의 후속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 등 각 금융기관에 변경된 LTV·DTI 규제 세부시행방안을 내려 보냈다. 시중은행들은 대출 요건을 강화하며 정부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과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추가로 대출을 받을 때 LTV·DTI 규제가 10%포인트씩 낮아진다. 그밖에 전국 모든 지역에서도 추가대출 시 LTV 규제가 10%포인트 낮아진다. 이는 8·2 부동산대책과 ‘은행업 감독규정’ 등 5개 감독규정 일괄개정 규정변경 예고에 따른 후속 조치이다.
조정대상지역은 서울 25개구와 경기 과천 등 7개시(市), 부산 해운대 등 7개구, 세종이다. 이 가운데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은 투기과열지구에 포함돼 있고, 서울 강남 등 11개구와 세종은 투기지역으로도 지정돼 있어 각각 더욱 강화된 LTV·DTI 규제를 받는다. 다만 DTI는 차주(借主)가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전액 상환을 조건으로 신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와, 기존의 대출잔액이 LTV 상한 이내일 때 같은 담보로 LTV 상한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대출(후순위담보)을 받는 경우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차주가 상속 또는 채권보전을 위한 경매 참가 등을 통해 불가피하게 대출채무를 인수하게 되는 경우에도 종전 비율을 적용받는다. 변경된 행정지도는 은행업 감독규정 일괄개정안이 시행되는 8월 중순 이후 추가담보대출을 승인받는 차주부터 적용된다.
집단대출은 8월3일 이후 입주자모집 공고가 나오는 사업장부터 적용됐다. 이미 공고된 사업장의 분양권 등도 감독규정 시행일 이후 전매된 경우 강화된 규제가 적용된다. 조정대상지역이 새로 지정되는 경우는 지정 효력 발생일 이후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는 차주부터 강화된 규제비율을 적용한다.
국세청은 8월7일부터 서울 강남과 세종 등에 다주택을 보유한 투기 의심자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하며 8·2대책을 측면 지원한다.
세금 탈루 혐의가 있거나 세금은 적게 내면서 고가주택 등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이들이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다주택자를 전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 다주택자의 세금 신고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국세청은 2005년 참여정부 당시에도 ‘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뒤 부동산 투기 혐의자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은행권은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고객이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주택을 사기 위해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기존 주택을 2년 이내 처분하는 조건으로 승인하라고 각 지점에 지침을 내렸다. 고객이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 대출이 낀 주택을 사들이면서 주택담보대출 2건이 되는 경우에도 2년 이내에 주택 한 채를 매각하는 조건이 있어야 대출승인을 해주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투기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추가로 신청하는 경우 2년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도록 했다. 또 투기지역 아파트 담보대출이 2건 이상인 고객이 대출 만기 연장을 요구하면 1년 이내에 대출한 건을 상환한다는 조건을 수용해야 연장을 승인할 방침이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도 투기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보유자를 대상으로 대출이나 만기 연장을 제한하거나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내거는 등의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나 시중은행이 전방위로 규제에 나서자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민·실수요자 기준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의 구매자가 5억원 이하(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에서는 6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할 때만 적용된다. 연봉이 6000만원을 넘어서거나 6억원 이상의 집을 원하는 30·4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무주택자에게는 실수요자 기준을 완화해서 집 장만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이번 대책 시행으로 실수요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과조치 적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실수요자간 엇갈린 희비…서울 30대 맞벌이 부부에 멀어진 내집마련의 꿈
◆기대 =자녀 둘을 가진 맞벌이 직장인 K(43)씨는 자신을 ‘전세 난민’이라고 했다. 그는 2005년 결혼한 뒤 서울 신림동→경기도 과천→평촌으로 이사를 하며 10년 넘게 전세를 살았다. 차곡차곡 청약 가점을 쌓아 2015년부터 서울에 아파트 청약을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는 이번 ‘8·2 부동산 대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영주택에 대해 청약가점제 적용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서다. 그는 “나 같은 무주택자도 ‘로또’로 불리는 청약에 당첨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망 = 서울 화곡동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맞벌이 직장인 Y(32)씨. Y씨와 아내는 각각 서울 상암동과 여의도동에서 일한다. 9월경 공덕동에 6억원 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려다 8·2 대책 발표 이후 계획을 미뤘다. 당초 3억6000만원을 대출받을 계획이었는데 대출한도가 2억4000만원으로 줄면서다.
이번 대책엔 투기과열지구 내 LTV을 최대 60%에서 40%로 낮추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는 “직장 생활하기 편한 곳에 내집 마련의 꿈을 키워왔는데 잠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서울 전역 등에 대한 투기수요 억제다. 정부는 ‘서민 실수요자’는 보호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고강도 규제로 혜택을 보는 실수요자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의 꿈에서 멀어지는 실수요자도 생겼다. 페이스북과 인터넷 카페 등에선 ‘30대 맞벌이 부부’가 최대 피해자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청약가점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의 가점제 적용비율을 기존 75%(나머지 25%는 추첨)에서 100%로 높이는 식이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수(최고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등을 더해 가점이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제도이다.
민영주택 미계약분에 대해서도 종전에는 예비입주자를 추첨으로 선정하던 데서 가점제를 우선 적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제도 취지대로 무주택 기간이 길고 자녀가 많은 실수요자의 청약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김영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무주택자가 비교적 저렴한 값에 새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자녀 셋을 둔 직장인 L(36)씨는 “청약가점제 문이 넓어져 2018년부턴 당첨을 기대할만 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혼인기간이 5년 이내이고, 임신 중이거나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에게 분양하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제도 운영하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받으려면 맞벌이 가구의 경우 전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20%(세전 592만원·3인가구 기준) 이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특별공급은 정책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해 일반 청약자들과 경쟁하지 않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국토부는 8월8일 특별공급 당첨분 중 미계약됐거나 자격미달로 취소된 물량을 일반공급으로 돌리지 않고 다시 특별공급 신청자 중에서 예비 입주자를 뽑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8·2 대책에 따르면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부양가족수에 따른 청약 가점이 큰데 해당사항이 없어 당첨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결혼해 서울 대림동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P(33)씨는 청약가점이 24점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 당첨 기준으로 알려진 60~70점에 턱없이 모자란다.
최근 GS건설이 분양한 ‘신길 센트럴 자이’ 아파트의 경우 전용 52~84㎡의 중소형 위주로 구성해 신혼부부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청약 결과 당첨 점수가 56~74점에 달했다. B씨는 “가점제는 포기하고 추첨제에서 당첨되기를 기대해 왔는데 추첨제가 없어져 당황스럽다. 8·2 대책대로라면 가점이 적은 30대 맞벌이 부부가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출도 까다로워졌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면서 각각 60%와 50%였던 LTV와 DTI 모두 40%로 낮아졌다. 대책에서 LTV를 40%로 낮춘 만큼 집값의 60%는 들고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2448만원까지 올랐다. 서울에서 평균값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적어도 3억6000만원은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출 규제는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자산 형성 기간이 긴 5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30~40대가 불리하다. 상대적으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무주택자가 유리하다.
예외는 있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적용하지 않는 ‘서민’은 ▲부부 합산 연(年)소득이 6000만원 이하이면서 ▲6억원 이하 주택을 사는 ▲무주택 가구주다. ‘또는(or)’이 아니라 ‘그리고(and)’ 조건이라 세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서민 주택마련 대출인 ‘디딤돌 대출’ 기준에서 따왔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6억원을 넘긴 데다 통계청이 집계한 2017년 1분기 전국 맞벌이 가구 연평균 소득은 7145만원에 달한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은 “주택가격 기준을 현실화하고 서민 소득 기준도 최소 1000만원 이상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0~40대 맞벌이 부부는 보유자산은 적어도 소득이 다른 계층보다 높을 수 있어 대출상환 능력이 충분한 경우가 많다. 이번 대책에선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다 실수요자인 30~40대 맞벌이 부부까지 억누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다양한 유형의 실수요자가 있을 수 있지만 청약가점제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실수요자가 가장 주거복지 정의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 선의의 실수요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선 최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설익은 정책은 현장서 혼란 부추겨…규제일변도 대책으로는 실패해
“8월2일 이전에 계약을 맺었으면 집값의 60%까지 대출이 나오는 거 맞나요? 은행 창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요.”
대출한도가 집값의 40%냐, 60%냐. 당사자에겐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을 포기하느냐 마느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답을 해주려니 쉽지 않다. 무주택자인지, 1주택자인지, 다주택자인지, 분양권 보유자인지, 투기지역인지 아닌지,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두개가 아니어서다. 일반 주담대가 아닌 이주비·중도금대출이면 더 복잡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에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보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과 공인중개사, 집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누구도 모른다. 이번 8·2 부동산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책 수요자들은 각자의 사례에 맞는 답변을 구하려고 하지만 좀처럼 책임 있는 답을 듣기가 어렵다. 답답한 이들은 금융당국과 국토부에 전화를 하지만 거의 연결이 되지 않고, 결국 청와대 국민신문고까지 두드린다. 8월2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을 땐 이런 혼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강화된 대출 규제의 적용 시점이 “감독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는 2주 뒤부터”라고 금융위원회가 밝혔기 때문이다. 이미 집 매매 계약을 맺었어도 2주 안에 미리 대출을 받아놓으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8월3일 기획재정부가 투기지역을 지정하는 순간 해당 지역엔 대출규제가 살아났다. 유예기간이 아예 없었다. 실수요자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금융당국은 8월7일 이미 계약을 체결한 무주택자는 예외를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이 담긴 3쪽짜리 자료를 부랴부랴 내놨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계약자들의 항의가 여전하다. 금융당국 관계자조차 “궁금증을 해소해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질문이 빗발친다”며 추가 지침을 주겠다고 밝혔다. 보완책의 보완책이 또 필요한 셈이다. 은행에선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의 구조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며 “은행과 사전 협의나 교감 없이 정책을 발표하다보니 허점이 너무 많다”며 답답해한다.
애초에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까지 한달 정도 시간을 뒀으면 어땠을까. 2002년 투기과열지구, 2003년 투기지역 첫 지정 때는 한두달 전에 미리 예고가 나왔다. 이번처럼 군사작전 하듯이 하루 전에 발표한 적은 없었다. 시장에 준비할 시간을 좀더 줄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집값 상승의 주범인 다주택자를 일종의 적(敵)으로 취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속도를 낸 만큼 빈틈 많고 설익은 정책이 나왔다.
더 아쉬운 점은 대책 발표 이후 소통의 부족이다. 금융당국은 대책 발표 당일 오후에 시중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대출쏠림 리스크를 관리하라”고 당부했다. 보여주기식의 은행장 간담회 대신 은행 실무진과 모여 대책 시행 방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어야 했다. 아니면 구체적인 사례별 대출규제 적용 여부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그때부터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아무튼 8·2 대책으로 투기 수요는 일단 꺾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불러 집값이 다시 상승하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재건축 시장 위축으로 강남 아파트의 희소성만 높아질 것이다. 스프링처럼 누르면 누를수록 반발력만 커져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노무현정부는 규제 일변도 대책을 12차례나 쏟아내고서도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뛰게 했다. ‘노무현정부 시즌 2’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세심한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건축 인허가 실적 등을 근거로 공급 물량이 충분하다지만 선호도 낮은 지역의 물량이라면 큰 의미가 없다. 강남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는 대체 공급이라야 한다. 강북 등 비강남권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아파트 공급을 확대해 강남에 쏠린 아파트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 전역을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저금리 정책의 전환도 고민할 시점이 됐다. ‘뛰는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 정책과 금리 정책 등이 정교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moon4758@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