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들 푼돈 주고 내몰고 LH 직원들은 도둑질…피가 끓어"
3기신도시 들끓는 지역 민심 “법대로 보상한다더니 뒷돈 챙겨…신도시 정책도 폐지해야”
“한마디로 도둑놈들이지. 자기들끼리 다 해먹고 우리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은 거잖아요. 생각만 해도 피가 끓어!” 3월18일 경기 하남시 교산동에서 만난 70대 A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얘기를 꺼내자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가 몇십 년째 살아온 조용한 동네는 2주 전부터 ‘폭격’을 맞은 듯 시끄럽다. A씨는 “우리는 졸지에 쫓겨날 판인데 누구는 돈을 챙긴 것 아니겠느냐”며 “LH 생각만 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3월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처음 제기한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가장 분노감과 상실감이 큰 이들이 바로 3기 신도시 예정 지역 주민이다.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누군가의 ‘삶의 공간’으로 내어줘야 할 판이다. 누군가의 ‘로또’가 될 것이라는 뉴스에 동네 분위기는 뒤숭숭해졌고 가슴은 타들어갔다. 오순도순 지내온 이웃들과도 몇 년 뒤면 뿔뿔이 헤어질 상황이다. 이에 따라 LH와 정부를 향한 그들의 목소리는 유난스러울 수밖에 없다.
3기신도시 건설예정지로 지정된 경기도 하남시 하남교산공공주택지구 모습.
남양주 왕숙지구에 사는 Y(66)씨는 “주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주민들도 (보상금으로) 대박 났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사실상 토박이들은 쪽박 차는 꼴”이라며 “평생 농사짓던 땅에서 나가야 하는데 근처에는 살 만한 땅도 없다. 푼돈 받고 멀리 가서 살려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힘든 동안 LH는 자기 잇속 차리느라 바빴다니 배신감이 든다”고도 했다.다른 주민도 “LH 직원들은 그동안 주민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면 자기들은 청렴한 것처럼 했는데 뒤에서 주민을 우롱했다“며 “도둑질하면서 우리를 사지로 내몰았다. 괘씸한 정도가 아니다.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대문도 토지보상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이 불을 질렀는데 우리도 그 정도로 화가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는 들쑤셔졌다. 고양 창릉의 한 주민은 주민끼리 투기 의심이 가는 땅을 찾아 신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LH 때문에 다 꼬이게 생겼다. 묘목 심는 걸 다른 외지인들도 따라할 것 같다”며 “전체 보상금은 정해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돈을 더 받아가면 진짜 농사짓던 사람들은 덜 받는 것 아니냐. 동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LH 사건이 터진 이후로 수천만 원 손해 보고 계약을 해지한 이도 있다. 공무원이라고 들었다”며 “동네는 시끄럽고 손님은 끊겼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낯선 것만도 아니라서 이들은 더욱 분노한다. 부천 대장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신도시 발표 때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는데 미리 대처를 안 한 정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신도시를 둘러싼 갈등이 깊은 후유증을 남길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남양주 진건읍의 한 주민은 “신도시가 취소되면 죽어 나갈 사람들 많다. 나갈 준비하고 미리 대출받아 다른 땅을 매입한 주민은 어떻게 살라는 소리냐”고 했다.
이미 동네 곳곳에는 신도시 취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하남시 춘궁동 주민은 “투기한 사람이 문제인데 피해는 서민들이 본다”며 “애초에 투기를 못 하게끔 법을 잘 만들어 놨어야지. 다 구멍 뚫리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러니까 우리만 피해 보잖아”고 했다.
“3기 신도시 투기 16건 등 198명 내사·수사”메일 글씨 크기 선택
특수본, 금명간 피의자 소환 속도…국수본 “전국으로 퍼진 투기 수사”
전국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현재 3기 신도시 관련해 총16건을 내사 및 수사 중이다. 특수본이 진행 중인 전체 내·수사 37건 중 40% 이상이 3기 신도시와 관련된 것이다. 당초 대규모 수사를 촉발한 ‘LH 직원 투기 의혹’ 또한 최근 3기 신도시로 추가 지정된 경기 광명·시흥을 무대로 벌어졌다.18일 경찰에 따르면 특수본이 내·수사 중인 사건은 전날 기준 경찰 첩보수집 24건, 고발 9건, 수사의뢰 4건이다. 관련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 직원, 공무원, 민간인 등 198명이다.최승렬 경찰청 수사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LH 직원과 관련해 “금명간에는 피의자 소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연루된 LH 직원 15명을 현재 수사 중이다. 경찰은 최근 이들의 자택, 사무실 등에 이어 전날 국토교통부를 압수수색했다.최 국장은 “LH 직원이 불법 투기한 걸 증명하기 위한 자료 확보 목적의 압색”이라며 “LH와 국토부가 함께 3기 신도시 조성 작업을 했기에 양쪽 자료가 필요했다. 현시점에서 (LH 직원 관련 혐의점을) 국토부와 연관 짓는 건 이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최 국장은 “다음주부터 압수물 분석과 추가 압색, 피의자 소환 등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북경찰청은 친·인척 관련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고령군의원 A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이날 압수수색했다. 도로 확장, 철도 신설 등과 관련된 땅을 팔아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에 휩싸인 영천시의원 B씨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특수본이 관련 제보를 받기 위해 운영 중인 경찰신고센터는 전날 오후 9시 기준 총 243건을 접수했다. 이 중 50여건에 대해 신빙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한편 특수본을 이끄는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정치권의 LH특검 추진과 관련, “현재 전국적인 수사가 벌어지고 있어 특검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경찰 주도 수사’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남 본부장은 “LH 건처럼 전국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전국 단위 수사지휘 체계를 갖춘 국수본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특검이 출범하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협조를 해나가겠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신문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