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백약이 무효”…잦은 부동산 대책, 왜 안 먹히는가
거래허가제에도 아파트 신고가 경신, 왜 그럴까…文 정부 '정책 뒤집기'로 신뢰 잃어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유학자로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어느 날 “국가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스승에게 물었다. 이에 공자는 경제(足食), 국방(足兵), 신뢰(民信)의 세 가지를 들었다. “이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이라고 묻자 국방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경제였다. 『논어(論語)』의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기 힘들다. 즉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 관한 것으로, 공자는 끝까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답했다.
'규제 끝판왕' 거래허가제에도 아파트 신고가 경신…왜 그럴까?
서울 아파트값 0.1% 상승…2·4 주택공급 대책 이전 복귀…집값 불안 가중
"매물 자체가 없어요."5월2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장주로 통하는 '래미안대치팰리스' 단지의 한 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매물이 워낙 없다 보니 거래가 안 되고, 집값도 떨어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사무소의 대표는 "강남은 주택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정부나 서울시의 규제 정책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매수 문의는 꾸준한데, 매물이 없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호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서울에 32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과 초강력 규제로 꼽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도,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폭을 확대하며 2·4대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등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서울 집값의 바로미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를 비롯해 목동과 여의도 등의 재건축 주요 단지들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규제 완화와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를 앞세워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 당선 전후로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 폭을 키우는 양상이다.사실상 모든 부동산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도 신고가를 경신하는 재건축 단지들이 속출하고, 아파트 매수심리마저 갈수록 강해지면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5월 셋째 주(17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값이 0.1% 올라 지난주(0.09%)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2·4대책 발표 직전인 2월 첫째 주(0.1%) 이후 15주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서초구(0.20%)는 반포·서초동 등 위주로, 송파구(0.16%)는 잠실동 중대형과 풍납동 재건축 위주로 거래되며 상승 폭을 키웠고, 강남구(0.13%)는 학군수요 높은 대치동과 압구정·도곡동 위주로, 강동구(0.06%)는 신축 위주로 상승했다. 노원구는 꾸준한 중저가 수요 영향 등으로 0.21% 올라 6주 연속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도봉구(0.13%)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방학·쌍문동 위주로, 마포구(0.10%)는 일부 단지 매물 부족과 접근성 양호한 단지 대기수요 영향 등으로 상승했다.정부의 잇단 부동산 규제로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상황에서 재건축 기대감까지 맞물리면서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21일 재건축 단지 위주로 집값이 급등하자, 압구정아파트(24개 단지)와 여의도 아파트 지구 및 인근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4곳(4.57㎢)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주택(18㎡ 초과)과 상가(20㎡ 초과) 등을 거래할 때 해당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년간 매매나 임대가 불가능하고, 실거주를 해야 한다. 허가 없이 토지거래계약을 체결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토지가격의 30% 상당 금액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하지만 신고가 경신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반포 자이(전용면적 84㎡)는 규제 발효 후인 지난 4월29일 29억원에, 래미안퍼스티지(전용면적59㎡)는 4월28일 26억2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서울 아파트 매수심리도 강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17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104.8로, 지난주(103.5)보다 1.3포인트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6주 연속 기준선(100)을 넘겨 상승했다. 이 지수가 기준치인 100이면 수요와 공급이 같은 수준이고, 200에 가까우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2·4대책 발표 직후인 지난 2월 둘째 주부터 내려가면서 4월 첫째 주 96.1로 올해 처음 기준선 아래를 기록했으나, 한 주 만에 반등해 6주 연속(100.3→101.1→102.7→103.7→103.5→104.8) 기준선을 넘기며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시장에선 이른바 '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토지거래허가제의 정책 효과가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2020년 대치·삼성·청담 등 집값이 급등한 지역의 투기를 차단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제를 시행했으나, 거래량이 줄면서 오히려 집값이 상승하고,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것은 시장이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
문재인 정부 들어 20회 이상의 잦은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것은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2·4 대책’을 기점으로 공급 늘리기로 정책의 전환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장이 불안한 것은 왜 그럴까. 시장이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이 신뢰를 잃게 만든 것은 ‘조변석개(朝變夕改)’ 정책이다. 2017년 ‘12·13 대책’에서 “혜택을 줄 테니 임대사업자를 하라”고 권한 것은 바로 정부였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못 잡자 정부는 1년도 안 돼 줬던 혜택을 빼앗고, 이듬해 아예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투기꾼으로 낙인찍힌 임대사업자들은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다. 부동산 세제(稅制)도 원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크게 보면 보유세는 강화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수 있게 보유세를 올리더라도 양도소득세는 내려줘야 한다는 게 정책 기조(基調)였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취득·보유 및 양도의 모든 단계에서 세 부담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결국 2021년 기록적인 공시가격 인상(서울 19.9%)으로 보유세는 급등하고 6월부터 양도세율(최고 75%)도 크게 오른다. 집을 그냥 갖고 있든지, 아니면 팔든지 어떻게든 ‘세금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퇴로가 없는 다주택자들이 선택한 것은 증여(贈與)였다. 증여는 주로 당장 집이 필요하지 않은 자식에게 한다. 이는 매물을 잠기게 함으로써 공급 부족을 심화시켰다.
정부 고위층의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도 한몫
정부 고위층의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도 영향이 크다. “강남 집값은 거품”이라고 열변을 토하던 고위공직자들은 업무가 끝나면 유유히 한강을 건너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퇴근했다. 그렇게 고평가됐는데 왜 빨리 팔지 않을까. 다주택을 정리한 공직자 중에서 강남 집 판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양주 왕숙부터 서울역까지 15분이면 온다는 GTX를 앞세운 3기 신도시가 못 미더운 것은 2기 신도시의 참담한 현실 때문이다. 출근 시간에 김포 장기역에서 ‘지옥철’로 불리는 경전철(골드라인)을 한 번 타보자. GTX-D가 김포에서 부천까지만 가는 ‘김부선’이 된 것에 왜 분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뒤늦게 선심 쓰듯이 용산이나 여의도까지 연장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하니 복장이 터진다. 위례신도시, 양주 옥정신도시 등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정부는 “2기 신도시는 안타깝지만 3기는 제대로 할 테니 믿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2기 신도시 교통망부터 챙기는 게 순리 아닌가. 3기 신도시가 과연 2기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그때는 “4기 신도시는 정말 다를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1주택 장기보유’에 오히려 세(稅) 부담 늘려
더불어민주당 내 부동산특별위원회(부동산특위)가 세금 등 부동산 규제완화책을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과세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거나 대상 주택을 ‘공시가 상위 1~2%’로 한정하는 방안을 냈지만, 이미 당내에선 상당한 반발이 제기돼 내홍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렇게 되자 논의의 초점은 주택 실수요자인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세(稅)부담 경감책에 모아진다. 재산세 감면(0.05%포인트 인하) 대상을 공시가 6억원에서 9억원 이하로 확대해 공시가 급등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는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양도세다.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경감 또는 강화’란 상반된 처방을 내놓은 점이 우려를 더한다.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시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는 대신, 이를 초과하는 고가주택에 대해선 현행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80%)를 양도차익 규모에 따라 40%선까지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2011년 서울 강남 아파트 전용 84㎡를 12억원에 구입해 10년간 거주한 1주택자가 이 집을 28억원에 팔 경우, 지금은 양도차익(16억원)의 80%를 공제받아 과표가 3억2000만원이 된다. 만약 60%로 공제 폭이 줄면 과표가 6억4000만원이 되고, 누진구조에 따라 세금부담액은 2배 이상 높아지게 된다. 부동산특위는 장기보유특별공제가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부추긴다고 문제 삼았지만, 국세 기본체계가 시장동향이나 선호도에 좌우될 일인지 의문이다. 집은 국민 생활의 기본 중 기본이다. 고가·저가를 막론하고 1주택자에게는 양도세를 물리지 않는 게 사회정책적으로나 투기 방지와 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한 집에 오랫동안 사는 장기보유를 장려는 못 할망정 고가주택만 떼어내 편 가르듯 불이익을 줘선 안 될 일이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에 대한 반성과 면밀한 재검토를 하면서 『논어(論語)』의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한국부동산신문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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