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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1년09월22일 20시19분 ]
대출 혹한기… 연말까지 은행 대출 月7000억 줄인다
가계부채 총량 규제 후폭풍…5대 은행 대출 올해 11조 남아 실수요자들 피해 가능성 커져

5년 전 결혼하면서 서울 영등포구에 방 2개짜리 집을 마련한 30대 G씨는 올해 둘째가 태어나 집을 늘려 이사하려고 대출을 알아보았다. 집값이 많이 올라 같은 동네 큰 평수로 옮기려 해도 4억원은 더 있어야 했다. G씨는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을 받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은행에서 ‘연말 대출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한다”면서 “이사를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겠다는 금융 당국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연말 대출이 얼어붙는 ‘혹한기’가 닥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2020년 코로나 위기로 중단했던 가계 부채 총량 규제를 올해 재개하며 은행별로 대출 증가율을 2020년 대비 6% 이내로 묶으라고 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주요 은행의 대출 상황을 조사한 결과 ‘6% 룰’을 맞추려면 2021년 말까지 추가로 대출해 줄 수 있는 금액이 11조5000억원 정도만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9월부터 연말까지 매달 약 2조9000억원 남짓만 대출이 가능하다. 8월까지 월 평균 대출 증가액이 3조6000억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7000억원 정도가 모자라게 된다. 이들 은행이 소속된 5대 금융지주의 대출액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농협은행은 대출을 매달 5000억원씩 줄여야 총량 규제를 맞출 수 있다. 지난 7월 대출 증가율이 7.1%로 정부가 정한 6%를 넘었고, 8월에는 7.6%로 더 높아졌다. 그동안 매월 대출을 평균 7200억원가량 늘렸던 하나은행은 전년 대비 가계 대출 증가율이 4.6%로, 한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까지 지금까지의 절반 수준인 매달 4000억원 정도만 대출이 가능한 형편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계 대출 증가세를 통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라 대출축소 압박은 점점 강해질 전망이다.

연말 부동산 거래 감소 등으로 대출 수요가 다소 줄더라도 일률적인 총량 규제로 인한 ‘대출 절벽’으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량만 엄격히 관리하면 정말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돈을 빌려갈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소득과 신용도가 적합한 실수요자라면 대출을 받을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대출절벽 우려로 주택담보대출 등을 포기해야 하는지 등을 문의하는 글이 매일 수백 개씩 올라오고 있다. 임대차 3법 등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급등세를 일률적인 총량 규제로 잡으려 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저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전세가격 상승 등으로 대출 증가세가 쉽게 잡히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출 틀어막는 정책보다는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이 먼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9월 들어 대출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 연말로 갈수록 대출 조이기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KB국민은행의 작년 말 대비 대출 증가율은 7월까지만 해도 2.6%로 여유가 있었는데 지난달 말 3.6%로 급등했고 지난 14일 4%까지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이달 말에 4.6%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6% 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는 연말까지 약 3조8000억원 정도의 대출 여력이 있었는데 한 달 새 1조9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나는 셈이다.

대출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자 국민은행은 9월15일 대출 원리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기존 100~120%에서 70%로 대폭 줄였고 주택·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긴급 처방’에 나섰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주택 대출을 축소하자 일부 수요가 흘러들었고 혹시 대출이 막힐지 몰라 미리 받아두려는 이들까지 동시에 몰렸다”며 “지난달 이후 대출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져 어쩔 수 없이 대출 조건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은행권 전체 가계 대출 증가율은 지난 7월 기준 이미 4.7%를 기록하며(한국은행 통계 기준) 금융 당국의 목표치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은행권은 연말까지 ‘6% 룰’에 맞추기 위해 전방위적인 대출 축소에 돌입했다. 5대 은행은 최근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일제히 5000만원으로 내렸다. 연봉의 최대 2배까지 받을 수 있던 신용 대출 한도도 ‘연봉만큼’으로 줄였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도 개인 신용 대출 한도는 5000만원으로, 마이너스 대출 한도는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췄다

늘어난 가계대출이 절반이 전세대출…안줄이면 가계대출 못잡고, 줄이면 서민 직격탄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K씨는 경기도 구리시의 아파트에 2억6000만원짜리 전세를 살고 있다. 은행에서 2억원 전세대출을 받았다. K씨는 “금리가 연 2%대인 전세대출이 없으면 월세를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가계대출 줄이려고 전세대출도 묶는다는 소문이 돌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축소를 위한 정부의 ‘대출 조이기’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전세대출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가계대출 현황을 집계한 결과, 2021년 들어 늘어난 대출의 절반이 전세대출이었다. 전세대출 증가세를 그대로 두고는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세대출은 대부분 무주택 실수요자가 받아가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쉽게 손대기 어렵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액이 지난 8월 8조원을 넘었는데, 9월 이후 5조~6조원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전세대출도 손을 대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밀어올린 가계대출 급증

2020년말 이후 지난 8월까지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을 살펴보면, 전체 증가액(28조6610억원)의 51%(14조7543억원)를 전세대출이 차지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액 가운데 전세대출의 비율이 84%에 달한다. 신한은행도 75%나 됐다. KB국민은행은 60% 정도로 집계됐다.

금융 당국의 대출 조이기 압박으로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의 문턱을 높였지만, 가계대출 확산세를 주도하는 전세대출을 줄이지 않으면 대출 증가세를 낮추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 가격이 급등한 데다 가을 이사철까지 다가오고 있어 전세대출 수요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집값이 치솟으며 전셋값까지 끌어올린 영향이 크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작년 말보다 11.6%나 올랐다. 그뿐 아니라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서울보증보험 등이 거의 100% 보증을 하고 있어 손실 리스크가 적다보니 은행에서도 전세대출은 상대적으로 쉽게 내주는 경향이 있다.

전세대출은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일정 기준 이내로 정하는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어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규제가 약하다.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 규제를 검토하는 이유는 신용대출보다 훨씬 싼 2%대 저금리로 빌릴 수 있다보니 여윳돈이 있어도 최대한 전세대출을 끌어 쓰는 대출자들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수요라는 것이다. 전세대출을 많이 받아 전세 보증금을 내고 남는 돈으로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요즘은 은행 전세대출 안 받고 자기 돈으로 전세살이 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했다.

 ●가계부채 안 잡히면 전세대출도 규제 시작될 듯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급증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하지만 전세대출 가운데 실수요를 정밀하게 구분하기가 어렵고 자칫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대책 마련을 망설이고 있다. 한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전세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만, 전세대출을 줄이면 여론의 반발이 클 수 있어 고민이 깊다”고 했다.

전세대출은 일부 1주택자도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 무주택자 대상의 대표적인 서민 금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0~64세 중 60%가 무주택자다. 전세대출 수요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당국 내부에서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대로 이어진다면 전세대출도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전세대출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방안도 하나의 카드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잡음이 일더라도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6일 “전세대출, 집단대출, 정책모기지 등 실수요와 관련된 대출이 많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속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끌어올리고 있는 전세대출 증가 추세를 꺾을 방안으로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시키는 것 등을 대책으로 거론한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가계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나마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을 DSR에 넣으면서 만기를 길게 하거나 점진적으로 포함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이라면 대출 축소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카드대출도 규제… “증가율 7% 밑으로 맞춰라”
     정부, 총량규제 엄격 적용키로…대출통제 제2금융권으로 확대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은행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대출 통제가 2금융권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9월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신용카드 대출에 대해서는 그동안 느슨하게 적용했던 총량 규제를 올해 연말까지 엄격하게 적용키로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몇몇 회사의 카드론 증가율이 지나치게 높아 신용카드사 대출 증가율을 연말까지 7% 아래로 맞추도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중 8개 전업카드사의 대출액은 56조1000억원으로 1년 사이 5.8% 늘었다.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1.8% 줄었고, 카드론(loan·카드 대출)은 13.8% 증가했다. 카드론은 은행 대출보다는 금리가 높지만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어 단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쓴다.
                    
금융위원회는 9월15일 신용카드사 여신 담당자들을 소집해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보고받고 대출 축소를 요청했다. 현대카드·롯데카드의 대출 증가율이 특히 높아 이를 줄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두 회사의 전년 말 대비 대출 증가율은 10%대 초반대로 알려졌다. 카드 업계에선 대출 통제를 위해 금융 당국 지시로 몇몇 회사가 카드론 중단까지 단행했던 2019년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회원만 받을 수 있는 카드론이나 현금 서비스는 회원 수 변동 등에 따라 대출 규모가 크게 좌우된다. 일률적으로 줄이기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결국은 당국의 방침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론 중단은 민원 유발과 회원 이탈 등을 촉발할 수 있어 고민스럽다. 일단 한도 축소 등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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