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계산하는 1기 신도시 주민들
尹대통령 공약 기대감에 1기 신도시 매매가 급등…리모델링이 현실성 높아
윤석열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 재건축 등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로 주요 단지 매매가가 연일 상승세다. 집값 불안을 우려한 인수위가 규제 완화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머지않아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에 투자 수요가 몰리는 중이다.
●신도시 매매가 급등…분당 아파트 한 달 새 2억 올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대선 전인 2022년 1월1일부터 3월9일까지 0.07%의 미미한 상승폭을 보였다. 하지만 대선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3월10일부터 4월22일까지 0.26% 올라 상승률이 3배 이상 높아졌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0.25%에서 0.08%로 낮아진 것과 대비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기 신도시 대장주 격인 성남 분당신도시에서는 서현동 시범삼성 전용 171㎡가 최근 24억9000만원에 실거래됐다. 2020년 10월 거래 가격(17억원) 대비 8억원가량 뛰었다. 시범현대 전용 108㎡ 매매가도 3월 15억7000만원에서 4월 17억4700만원으로 한 달 만에 2억원 가까이 올랐다.잠잠하던 평촌, 일산신도시 매매 시장도 들썩이는 분위기다.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목련7단지 전용 133㎡는 지난 3월 17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올 1월 거래 가격(14억8000만원)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억2000만원 뛰었다.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문촌17단지신안 전용 172㎡도 13억55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3월 초 거래 가격(12억원)보다 1억5000만원가량 올랐다. 군포 산본신도시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산본동 주공11단지 전용 44㎡는 최근 5억500만원에 거래돼 직전 거래 가격(3억7000만원) 대비 1억원 넘게 상승했다.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가 뛰면서 거래도 연일 증가세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지난 3월 경기도 아파트 매매 건수는 5525건으로 2월(3855건)보다 40% 이상 늘었다. 경기도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7월 1만5028건에서 올 1월 3454건으로 급감했지만 대선을 앞둔 2월부터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특히 1기 신도시가 포함된 지역 거래 증가가 눈길을 끈다. 분당신도시가 위치한 성남시는 3월 매매 건수가 236건으로 2월(108건)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일산신도시가 위치한 고양시 거래도 같은 기간 275건에서 520건으로 늘었고, 평촌신도시가 있는 안양시는 87건에서 151건으로 급증했다. 분당 서현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매가 상승 기대감에 집주인들이 하나둘씩 매물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매물을 찾는 이들은 꽤 많지만 대부분 시세 대비 고가거나 전세 낀 매물만 남아 있는 실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尹대통령 공약 영향…용적률 확대, 안전진단 완화 기대
1기 신도시 집값이 들썩이고 거래가 늘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을 통해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촉진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덕분이다. 이 특별법에는 용도지역 종상향을 통한 용적률 최고 500% 확대, 안전진단·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정비사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5곳으로 구성된 1기 신도시는 1989년 개발계획이 나온 이후 총 432개 단지, 29만2000여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입주한 지 30년이 지난 단지가 수두룩하지만 대부분 용적률이 200% 안팎으로 높아 재건축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도시별 평균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수준이다. 재건축 사업을 할 때는 용적률이 낮아야 추가로 지어 분양할 수 있는 주택 수가 늘어난다. 용적률이 높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져 그만큼 조합원 분담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특별법이 제정돼 용적률이 높아지면 재건축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1기 신도시가 위치한 경기도 내 5개 지자체와 신도시 주민들도 이미 국회에 ‘노후 1기 신도시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상태다. 성남 분당을 지역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후 신도시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해 ‘노후 신도시 재생·도시공간구조개선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30년 이상 된 노후 신도시의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주거지역의 용적률, 건폐율을 상향해 500%까지 보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 덕분에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단지도 부쩍 늘었다. 군포시 산본동 한라 주공4단지 1차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군포시청에 예비안전진단 신청서를 제출했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단계로 정밀안전진단, 적정성 검토 등의 절차를 통과해야 재건축 사업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후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이주, 착공 등의 단계를 거친다. 한라주공4단지 1차는 1992년 4월 준공돼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넘겼다. 지하철 4호선 수리산역 인근 역세권 단지로 지상 최고 15층, 전용 41~59㎡ 1248가구 규모다.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1900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분당신도시 서현동 시범한양, 우성, 삼성한신, 현대 등 4개 단지도 지난해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있다.
●신도시 재건축 순조롭게 진행될까…용적률 500% 상향 쉽지 않을 듯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은 기대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특별법만 믿고 신도시 아파트에 ‘묻지마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별법이 제정된다 해도 1기 신도시 내 모든 단지 용적률을 500%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신도시에서 주거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면 ‘닭장 아파트’가 쏟아지는 데다 교통난, 일조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크다. 분당, 일산은 재건축 사업 첫 단계인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인수위 부동산TF에서는 1기 신도시 재건축 단지 용적률을 일단 300%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비록 대통령 공약이지만 특정 지역을 위한 특별법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1기 신도시 외에도 정비사업이 시급한 수도권 단지가 많은데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다른 지역 주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에 대한 특별법 도입은 형평성, 특혜 논란 소지가 있다.
1기 신도시 지구단위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추진한다고 해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버티는 국회를 순조롭게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1기 신도시에만 특례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용적률 상향 조건을 만들어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역에 적용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2022년 들어 1기 신도시 집값이 불안해진 만큼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는 부동산TF가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 규제 완화는 계획대로 추진하지만 성급하게 밀어붙여 집값이 과열되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로 보인다.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단지별로 재건축 연한이 속속 도래하는 1기 신도시는 체계적인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대규모 이주로 인한 전셋값 폭등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무작정 규제를 풀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서울, 인천, 경기도가 광역협의체를 꾸려 10년 이상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한 후 단계별로 실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부동산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1기 신도시 역세권 대단지 위주로 용적률을 상향시켜줄 것으로 내다본다. 그마저도 투기 수요를 의식해 늘어난 가구 수의 일정 비율을 기부채납받는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용적률을 상향하더라도 재건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초과이익환수제로 거액의 분담금을 내야 하는 만큼 1기 신도시 재건축 단지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태욱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는 “용적률이 낮으면서 서울과 가까운 지하철,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역세권 대단지 투자를 노려볼 만하다”면서도 “새 정부가 용적률을 상향해도 재건축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기간이 필요한 만큼 무리한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이 현실성 높아…사업 기간·비용 재건축보다 유리
다른 한편에선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아파트 구조를 유지하면서 주거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주거 불편 원인인 설비, 마감재를 개보수하고 지하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넓힐 수 있다. 준공 30년 연한을 넘어야 추진 가능한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준공 15년에 B등급 이상이면 수직증축, C등급 이상이면 수평증축이 가능하다.
재건축 사업 기간, 비용 부담이 큰 만큼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하다는 것이 부동산업계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단지들이 적잖다. 성남시는 최근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3, 4단지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앞서 2021년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에 이어 분당신도시 세 번째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이다. 1995년 준공된 느티마을3, 4단지는 수평, 별동증축 방식으로 리모델링이 이뤄진다.
3단지는 770가구에서 873가구로, 4단지는 1006가구에서 1149단지로 탈바꿈한다. 성남시는 노후 공동주택 시설 개선을 위해 2014년부터 공모를 거쳐 리모델링 희망 단지에 조합설립, 안전성 검토 비용을 지원해왔다.고양시도 일산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을 완화해주기로 했다. 2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은 250%, 3종 일반주거지역은 300% 이하로 상향됐다. 이번 조치로 강선14단지, 문촌16단지 등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산본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8개 아파트 단지가 올 초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를 출범시켰다.
군포 금정동 율곡주공3단지가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이 단지는 전용 51~59㎡, 총 2042가구 대단지로 리모델링을 통해 2348가구로 탈바꿈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새 정부가 1기 신도시 용적률을 높여준다고 해도 당장 재건축이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 신도시 역세권 대단지 중에서 용적률이 낮은 리모델링 단지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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