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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2년08월16일 09시30분 ]
   반지하 20만가구 퇴출하나…이주대책 없인 주거난민 양산
50년 반지하 둘러싼 논란…관악구 가족 참변 등 폭우 피해에 서울시 "20년 안에 반지하 없앨 것"

서울의 반지하는 남북한 대치와 고도 산업화 시대의 복합 산물이다. 전시에 ‘벙커’로 사용할 수 있게 신축 주택은 반드시 포함하도록 1970년대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등장하더니, 1980년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거주공간이 부족하자 용적률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 보너스 공간으로 반지하의 법적 위상이 달라졌다.

1980년대 후반엔 다세대·다가구 건물도 반지하를 허용하면서 더욱 많은 반지하 주택이 지어졌다.지난 50년간 반지하는 1인 가구 등 우리 사회 취약계층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 추위, 더위는 물론 수해 등 자연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어 거주민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8~9일 기록적인 폭우로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서울시가 8월10일 폭우 피해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에 아예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면서 정책 실현 가능성이 도마에 올랐다. 20년 안에 아예 서울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버리겠다는 게 이 대책의 핵심. 그러나 벌써부터 “20만 가구가 넘는 가구를 지상층으로 이주하게 할 현실적 유인(誘因)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지하 없앤다는데…거주자들 “우리가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나요?” 

“우리가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안대요?”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앞에서 8월11일 오후 젖은 가재도구를 씻던 50대 Y씨는 전날 서울시가 발표한 ‘반지하 가구 안전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대책의 골자는 ▲지하·반지하를 주거목적으로 짓지 못하게 법을 바꾸고 ▲10~20년 유예기간을 거쳐 기존 반지하 주택을 없애며 ▲상습침수 지역 지하·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바우처를 준다 등이다.

Y씨는 “공공임대주택 입주가 쉬운 것도 아니고, 그나마 살 만한 반지하를 떠나라면 어떡하냐”고 푸념했다. Y씨는 가사도우미로 월수입 200만원 안팎. 물에 잠긴 반지하 집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반지하 주택 집주인 60대 G씨는 “주인도 용적률을 더 올려주지 않는 이상 반지하에 세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세입자의 경우 일자리가 몰린 강남 등지에서 멀어지면 통근비용이 부담이다. 가까운 반지하를 떠나기 힘든 이유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다. 서울에 절반이 넘는 20만849가구(61.4%)가 있다. 국토연구원이 2021년에 낸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 지원 정책과제’에 따르면 수도권의 지하·반지하 집 임차가구 평균 소득은 182만원.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 소득(351만원)의 절반 미만이다.

자료:통계청 인구총조사(2015년부터 20% 표본조사)

서울시 대책의 핵심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이다.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 호. 2021년 서울에서 주거 상향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건 1669가구뿐이다. 그중 반지하는 247가구(14.8%)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반지하를 없앴더니 고시원 거주자가 늘어났다”며 “현실적 이주 대책을 설계하는 게 정책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상습수해 지역이던 중랑구 중화동을 2009년부터 재개발해 반지하 가구를 줄였다. 하지만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60대 K씨는 “전에 살던 지인 중에 경기도 안양시의 셋집으로 옮기거나 아예 지방에 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70대 여성 주민은 “임대주택을 얻어 갔다는 사람은 못 봤다”고 말했다.

자료:통계청 인구총조사

8월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홈페이지에 입주 공고가 난 ‘서울송파도시형생활주택’(10년 공공임대주택)은 22.87㎡(6.9평)가 보증금 5500만원에 월 35만원이다.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 해당 지역에 살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임대주택은 청년층을 겨냥해 가족이 살기에 너무 적다”며 “반지하 가족의 선택지가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LH의 큰 적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의 걸림돌이다. LH의 2020년 부채는 129조7450억원. 공공임대주택 한 채를 지을 때마다 약 1억5000만원씩 느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형(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 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국공유지에 자체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짓지 않고 LH 등에 달성 목표치만 던지니 분양장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방향성만 제시한 것일 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구체적 실행 계획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반지하 급격히 줄면 주거여건 더 악화…취약계층, 고시원·쪽방 등으로 이동  

  ●“20년 내 반지하 퇴출”은 비현실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를 통해 주거목적 용도의 지하·반지하를 전면 불허할 방침이다. 법 개정 추진에 앞서 25개 자치구에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했다. 기존 반지하 주택에는 일몰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에 허가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 나간다는 구상이다.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더 이상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으로의 용도 전환도 유도할 방침이다.현행 건축법엔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근거 규정이 존재한다. 2012년 개정된 건축법 11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로 건축을 불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건축허가 자체를 완전히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다 보니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은 전국적으로 4만 가구 이상 건설됐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서울 시내 지하·반지하 가구 수는 20만849가구로 전체 가구(398만2290가구)의 5% 수준이다.

  ●지상 이주는 ‘천국의 계단’

문제는 돈이다. 반지하 거주민에게는 당장 월 10만~20만원의 주거비 증가가 넘지 못할 현실의 벽이다.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신림동·응암동·사당동에선 같은 건물 반지하와 지상층의 월세가 최고 2.5배 차이 난다. 월세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수천만~수억원의 추가 보증금이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는 근로자나 사회초년생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신림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당장 생활비를 고민해야 하는 반지하 취약계층에 지상층은 엄두를 내기 힘든 천국의 계단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내부적으로 기존 반지하 세입자들의 주거 상향을 위해 일부 임대료를 지원하는 주거 바우처를 제공하거나, 거주민이 빠져나간 빈집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통해 사들인다는 구상이지만 예산 확보 한계 등을 감안할 때 임대료 격차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저렴한 임대주택 마련 등 보완 필요" 낙후지 재개발땐 자연스럽게 사라져

  ●“강제 아닌 시장원리 해법 필요”

시장에선 반지하 주택을 급격하게 줄일 경우 도시 빈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줄이면 저소득 주민들은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이들의 주거 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번에 반지하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 취약계층 주민들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등 보완이 필수”라고 말했다.

주거용 반지하 신축 금지 방안도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2002년부터 주차장 확보를 의무화하면서 필로티(기둥공간) 구조가 느는 대신 반지하 구조 건물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낙후지역 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주택이 공급돼 자연스럽게 반지하 주택이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주거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찬성하지만 서울에만 20만 가구에 달하는 반지하 주택을 단시간에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침수 지역의 반지하 주택은 금지하되 고지대 반지하는 일단 놔두고 차분하게 시장 원리에 따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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