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면에 나선 건설사 2세들…제2 도약은 그들 손에
중견 건설사 2세, 테크 사업 키우기 나서…투자·협업 통해 기술 시너지 노려
국내 대표 중견 건설사 오너 2세들이 창업주의 뒤를 이어 경영 전면에 속속 나서고 있다. 건설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2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본업을 계승하면서도 사업 영역을 넓히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업종을 다각화하는 등 아버지 세대와 다른 자신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테크 사업 키우는 건설 2세들…투자·협업 통해 기술 시너지 노려
대기업 그룹에 속한 건설사들이 탄탄한 자본력과 브랜드파워로 시장을 주도했다면, 국내 1세대 중견 건설사들은 대부분 지방 주택 사업을 기반으로 가파른 외형 성장을 이뤄왔다. 이들 건설사는 아파트 분양 시장 호황에 힘입어 수도권에 상륙하고, 전국으로 사업장을 확대했다.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최근 브랜드 인지도도 대형 건설사 못지않게 높아졌다.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좌)과 이석준 우미건설 부회장(가운데),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 겸 대우건설 회장(우). /사진= 각 사 제공
중견 건설사 창업주의 뒤를 이어 등장한 2세 경영인들은 부모 세대 경영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과감한 투자, 기술 혁신 등 신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우미건설과 호반건설은 새 성장동력으로 스타트업과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등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벤처캐피털(VC)을 통한 지분 투자를 넘어 본업인 건설업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꾀하는 중이다.전국에 ‘우미린(Lynn)’ 아파트 10만여가구를 공급해온 우미건설은 프롭테크에 관심이 많다. 2020년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설립한 IT 전문 투자 회사 ‘브리즈인베스트먼트’의 벤처펀드에 100억원을 출자했다.
계열사 우미글로벌을 통해 부동산·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데이터노우즈’, 3차원(3D) 공간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와 부동산디지털수익증권 거래소를 운영하는 ‘카사코리아’, 디지털 트윈 기술을 가진 ‘큐픽스’ 등에도 투자했다. 우미건설 관계자는 “큐픽스, 어반베이스(3D 공간데이터 업체)와는 건설 사업장의 여러 분야에서 가시적인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외에도 다양한 프롭테크와 협력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호반건설은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을 주축으로 신기술을 보유한 벤처·중소기업,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스마트건설 체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일찍이 2019년 VC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하고 스무 개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투자한 테크기업 중 특히 건설과 관련해 에이올코리아와 아파트 환기 시스템 공동개발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트윈(3D 가상기술) 업체인 플럭시티와 만든 안전관리 시스템은 이미 수도권 현장에 적용 중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인공지능(AI) 드론을 활용한 외벽 품질 검사도 진행했다. AI 드론은 스타트업 ‘뷰메진’과 공동 개발했다. 뷰메진은 호반건설이 지분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곳이다.
두 회사에서 기술 기업 투자를 이끌고 있는 이석준 부회장과 김대헌 총괄사장은 모두 2세 오너 경영인이다.우미건설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석준 부회장은 이광래 우미건설 창업주 장남이다. 1993년 우미건설 기획실장으로 입사해 2006년 아버지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 석사를 딴 공학도다.
1988년생인 김대헌 총괄사장은 올해 35세로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2011년 호반건설주택에 입사하면서 그룹에 발을 들였다. 2013년에는 호반건설로 자리를 옮겨 미래전략실 상무이사, 기획부문 대표 부사장을 역임하다 2020년 기획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아버지인 김상열 이사장도 10.5%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호반건설 지분을 54.73%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김상열 이사장은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김대헌 총괄사장 외에도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경영총괄사장,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가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북한산 뷰 핫플레이스…트렌드族 홀린 박상천 파라스파라리조트·삼정기업 대표
‘배우 이시영도 다녀간 핫플레이스’ ‘인수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 뷰 그대로가 액자’ ‘북한산을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인피니티풀’ ‘유명 IT 기업들이 직원 복지용으로 갖고 있다는 리조트’….최근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서울 유일의 콘도형 리조트 ‘파라스파라’ 수식 문구다.
북한산에 등산하러 온 사람들과 다시 내려오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동네 우이동, 역 이름도 ‘북한산역(우이신설 노선)’이다. 등산을 마친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둘러메고 찾아갈 것 같은 전통의 맛집이 즐비한 길 한끝에 갑작스레 고급진 ‘성’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잘 가꿔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근사한 정원 사이사이 호텔과 리조트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산스크리트어 ‘서로’를 뜻한다는 ‘파라스파라’다.
요즘 서울 최고 ‘핫플레이스’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북한산 파라스파라 리조트의 박상천 대표 역시 대표적인 중견 건설 업체 2세다. 박 대표는 ‘삼정그린코아’ 아파트로 유명한 삼정기업 박정오 회장의 장남이다.
2018년 파라스파라 대표를 맡아 파라스파라 건립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09년 콘도 공사를 시작했지만 북한산 그린벨트 안에 콘도를 짓는 특혜는 안 된다는 여론에 밀려 10년째 방치돼 있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인수해 수많은 실타래를 풀어낸 끝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8월 리조트 문을 열었다.
개장하자마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파라스파라는 호텔 객실 예약이 성수기에는 100%에 육박하면서 2022년 6월부터 객실 부문 흑자를 기록했다. 우이동 파라스파라를 시작으로 박 대표는 아파트 중심 건설 회사를 넘어 리조트 분야 명가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거제도를 마주 보는 창원 한쪽에 제2의 파라스파라와 골프장을 짓기 위한 284만㎡ 부지를 마련해뒀다.
기장에 들어오는 반얀트리의 2대 주주기도 하면서, 부산 최초 민간 퍼블릭 골프장인 하이스트 골프장도 개장했다.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22년에는 모기업인 삼정기업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중흥·대우 이끄는 정원주 부회장…이승찬 계룡건설산업 회장 취임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은 지난 6월1일 대우건설 신임 회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2021년 12월 중흥그룹 주요 계열사인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1년 6개월 만의 체제 변화다.중흥건설 창업주 정창선 회장 장남인 정 부회장은 일찍부터 건설 현장을 누비며 경영 능력을 키웠다. 대우건설 회장을 맡기 전에는 중흥그룹 전반의 경영을 맡았다.
정찬선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에 힘을 쏟을 때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대우건설 인수에 간접적인 지원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때 정 부회장이 보여준 안정적인 경영 능력을 보고 정창선 회장이 그룹을 물려주기로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 신임 회장이 2021년 중흥그룹 부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 승계의 시작이라 보기도 한다.
이제 정 부회장은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해외 사업 경험이 풍부한 대우건설을 활용할 뿐 아니라 직접 현장까지 찾아가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호찌민 북측에 위치한 빈즈엉성을 방문해 보 반 밍 성장, 응우옌 반 자잉 부성장 등 빈즈엉성 관계자들을 접견하고 호찌민 인근 지역 사업지를 방문했다. 아울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방한한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주석과 응우옌 찌 중 베트남 기획투자부 장관을 잇따라 접견하며 현지 사업 현안도 논의했다.
최근에는 직접 대우건설 실무진을 이끌고 미국 텍사스주, 뉴저지주를 방문해 북미(北美) 부동산 개발 시장 진출 여건을 점검했다. 불확실한 외부 경영 환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분야에서의 신규 시장 개척과 거점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대우건설은 강조했다. 정원주 부회장은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한 대우건설의 동력 확보에 매진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승찬 계룡건설산업 회장이 정식 취임했다. 2014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후 9년 만에 창업주인 고(故) 이인구 전 회장이 작고한 지 6년 만이다.
이승찬 계룡건설 대표이사 회장 /사진=계룡건설
이인구 전 회장의 막내아들인 이승찬 회장은 두산건설에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02년 27세의 나이로 계룡건설산업에 입사해 이사, 상무, 전무, 총괄부사장 등을 거친 인물이다. 이승찬 회장이 취임사에서 ‘지속 경영 가능 기업’을 언급한 만큼 계룡건설산업은 앞으로 신사업 먹거리 찾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지속 경영 가능 기업’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후 첫 행보로 계룡건설산업 체질 변화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과 동시에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경영 부문은 4개 본부 3개실로 신성장동력 발굴과 리스크 요인 관리를, 건설 부문은 4개 본부 2개실로 현장과의 소통·원가 관리·안전 경영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지난 3월 주총에서 ‘데이터센터 구축·판매·운영·임대와 기타 관련 사업’ ‘벤처 사업의 발굴·운영·투자·육성과 기타 관련 사업’ 등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특히 이승찬 회장은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 경기 악화로 수익 감소가 이어짐에 따라 별도의 먹거리를 찾고자 함이다. 계룡건설은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42.5%, 61.8%가량 감소했다.대방건설의 경우에는 구찬우 대방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2009년부터 회사를 맡아 회사 규모를 빠르게 키웠다.
창업주 구교운 대방건설그룹 회장 장남이다.주력인 주택 사업에서 신규 아파트 브랜드 ‘디에트르’를 출시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 구조 편중을 극복하기 위해 토목과 건축 사업도 키우고 있다.
건설업계에 부는 ‘2세 女風’…서희·호반·반도·아이에스동서·MDM
‘금녀(禁女)의 벽’이 높았던 건설업계에 ‘여풍(女風)’이 거세진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건설사 오너 2세 여성 임원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사업을 이끌며 맹활약 중이다.중견 건설사 중에선 서희건설 딸들이 눈길을 끈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은 딸만 셋이다.
장녀 이은희 부사장은 통합구매본부장을 맡아 주로 자재 매입 등 업무를 맡아왔다. 차녀 이성희 전무는 재무본부에서 재무, 원가 관리 등 회사 살림을 챙긴다. 삼녀 이도희 이사는 원래 검사 출신인데 2020년 미래사업본부 기획실장으로 서희건설 경영진에 뒤늦게 합류했다.이봉관 회장의 딸 셋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면서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린다. 장녀 직함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각자 영역에서 성과를 내온 데다 서희건설과 지주사 유성티엔에스 보유 지분도 비슷하다.
이봉관 회장은 능력이 가장 뛰어난 딸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업계에서는 서희건설 딸들에 대한 능력 평가의 핵심 역시 ‘신사업’이 될 것으로 본다. 전통 산업인 건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업계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신사업 발굴에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서희건설은 지난 몇 년 동안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눈을 돌려 기숙사 운영업, 폐기물 처리업 등 다양한 업종으로 발을 뻗어왔다.동문건설 경영은 사실상 故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 딸 경주선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2022년 4월 별세한 경재용 회장은 아들 경우선 씨, 딸 경주선 동문건설 부회장을 뒀다. 건설업계에서는 주로 장자 승계 사례가 많지만 경우선 씨는 동문건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반면 경주선 부회장은 일찌감치 동문건설 경영에 참여했다.
중견 IT 기업을 다니다 2012년 동문건설 주택영업팀에 합류했다. 오랜 기간 경영 수업을 받은 후 2019년 계열사인 동문산업개발 대표이사를 맡아 동문건설 핵심 사업을 이끌고 있다.호반건설 창업주인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 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도 경영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김윤혜 부사장은 호반건설 상업 시설 브랜드인 ‘아브뉴프랑’ 마케팅실장으로 근무하다 2020년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호반프라퍼티 경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사장이 근무하는 동안 호반프라퍼티는 2019년 농산물 도매법인 대아청과 지분 51%, 삼성금거래소의 지분 43.11%를 인수하고 2020년 11월 ‘아브뉴프랑’을 흡수합병하는 등 활발하게 M&A를 진행했다.장녀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경영총괄사장과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는 호반건설 지분이 없다.
대신 김윤혜 총괄사장이 호반프라퍼티 지분 31%를 갖고 있으며, 김 전무의 경우 호반산업과 호반프라퍼티 지분을 각각 42%, 20.6% 보유 중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김상열 전 회장이 두 아들에게는 호반건설(주택 사업)과 호반산업(토목 사업)을 물려주고, 딸에게는 호반프라퍼티를 물려줄 것으로 보고 있다.건설업계 형제 경영인으로 유명한 권홍사 반도건설 창업주,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도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켜왔다.
권홍사 창업주는 2021년 9월 딸 권보라 대표에게 조경업 계열사인 아레나레저 지분을 전부 넘겼다. 그동안 보유하던 아레나레저 지분 10%와 아들 권재현 반도건설 부사장이 보유한 지분 90% 등 지분 100%가 모두 권보라 대표 몫이 됐다. 다만 반도그룹은 지주사 반도홀딩스 아래 반도건설, 반도종합건설 등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반도홀딩스 최대주주는 권홍사 회장이고, 아들인 권재현 부사장 지분이 30.06%다. 권보라 대표 지분은 0.08%에 그친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장녀 권지혜 대표도 2021년 11월 경영 일선에 복귀하며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아파트 브랜드 ‘에일린의 뜰’을 선보이고 욕실 등 건설 자재 브랜드 ‘이누스’ 사업을 이끌다 2019년 돌연 미국행에 올랐다. 아예 경영 일선을 떠나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2021년 11월 국내로 복귀해 ‘내일을사는사람들’을 설립, 신축 아파트 입주 온라인 매칭 플랫폼 ‘헬로입주’ 서비스를 선보였다. 권지혜 대표는 아이에스동서 지주사 역할을 해온 아이에스지주 지분 30%를 보유했다.
문주현 MDM 회장의 딸 문현정 MDM플러스 이사도 눈길을 끈다. 문 회장은 MDM그룹 내에서 매출 규모가 절대적인 MDM플러스 지분의 4.76%(2022년 공시 기준)만 보유 중인데, 나머지 95.24%는 장녀인 문현정 씨와 차녀 문초연 씨가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이 중 문현정 씨는 1990년생으로 현재 MDM과 MDM플러스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회사 이사회 구성원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인 만큼 향후 2세 경영 행보에도 업계 관심이 쏠린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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