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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3년08월24일 10시34분 ]
  중산층 가정이 왜 하루아침에 빈 털털이가 됐을까
 부동산과 지독하게 얽힌 중산층 가족의 흥망사…마민지 지음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출간

살(buy) 집은 넘쳐나지만 정작 살(live) 집은 부족한 대한민국 부동산의 현실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할 수 있게 한다.

2013년 서울 종로의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입구에는 ‘부동산 브로커 출입 금지’라는 경고 문구가 큼지막하게 나붙어 있었다. 당시 부동산 브로커라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갈 곳을 잃은 중소기업 출신 전직 ‘회장님’과 ‘사장님’이었다.

그들의 입에선 10억, 100억이 우습다는 듯 거액의 돈 얘기가 오가지만, 실현되지 못할 부동산 프로젝트들이었다. 아버지가 매일 종로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딸은 부동산 사업으로 망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그렇게 부동산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간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마민지 지음/클, 2023)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저자 마민지가 부동산과 지독하게 얽힌 가족의 흥망사를 자전적으로 풀어낸 에세이.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 같지만 대한민국 경제개발계획과 도시 팽창, 경제 위기, 부동산 버블(거품) 등 경제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다
             
 이민지 감독 가족의 부동산 흥망사…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가 책으로 나와

중화학공업의 도시 울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저자의 부모는 화학단지 조성으로 급격한 인구 유입이 이뤄진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경험한다. 100만원 짜리 아파트가 4년 만에 800만원이 되자 3교대 공장 근로자였던 아버지는 서울로 올라오는 결심을 한다.

울산의 한 대기업에서 기술직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는 1978년 회사를 그만두고 상경해서 이른바 ‘집 장사’에 뛰어든다. 토지구획정리사업 대상이 된 일대의 필지를 사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지어 파는 일이었다. 빈 땅은 널려 있고 일자리를 찾는 이들이 끊임없이 서울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집을 지으면 짓는 대로 팔렸다.

각종 규제 완화와 융자 혜택, 표준주택설계도 등이 집 장사들을 도왔다. 전두환 정권의 ‘주택 500만호 건설’ 캐치프레이즈가 뒤를 받쳐 주었다. 1억을 들여 몇 달 만에 집을 한 채 지으면 적어도 2억의 수입이 보장됐다. 뻥튀기 되어 돌아오는 돈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시기에 어머니는 과감하게 아파트 평수를 넓혀 나갔다. 아버지의 집 장사는 연립주택에서 상가, 빌딩으로 커지고, 어머니는 어린 딸을 데리고 호텔과 백화점을 드나들면 중산층 이상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강동구에 터를 잡아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로 넓혀 나가는 ‘이사(移徙) 스토리’에 송파구 개발 역사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연상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것 역시 ‘부동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1995년 종로구 부암동에 600평 규모의 땅을 구입해서 고급빌라 단지를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 토지매매가 24억의 절반인 12억은 대출로 메꿨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재건축에 반대하면서 버텼고, 시청과 구청에서는 땅의 경사도를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금리가 폭증했다. 1994년에 들어갔던 46평 아파트를 헐값에 팔고, 아버지는 손해를 만회하고자 마지막으로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날리고 말았다.      

2003년 10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단지를 항공 촬영한 모습.

부동산으로 일군 한 가족의 안식처도 거품처럼 꺼져버렸다. 해외여행과 골프 클럽을 다니면서 즐기던 아버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장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집에서 라면 살 돈도 없어진 어머니가 직접 일을 찾아 나섰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던 끝에 어머니가 정착한 일은 공교롭게도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였다.

딸은 부동산으로 망하고도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겠다며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동산 투자 성공이 결코 시대와 운을 타고난 덕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동산 실패 역시 개인의 욕망 탓으로만 돌리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크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어머니가 몰래 사둔 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욕망과 마주한다.

조남주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에는 아버지의 부동산 투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영화감독 안보미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14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버블 패밀리’(2017)의 마민지 감독은 소설 속 안보미를 떠오르게 한다. 부모의 부동산 흥망사(興亡史)를 다룬 이 다큐 영화가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이라는 책으로 재탄생했다.

책은 저자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0년, 전세로 거주하던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아파트(34평)에 요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에 앞서 같은 아파트 단지의 46평형 자가에 살며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에 가까운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가족은 전세 아파트에서도 밀려나 결국 12평짜리 상가주택으로 옮겨 가기에 이른다.

‘중산층이었던 우리 가족은 왜 하루아침에 추락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책을 이룬다.저자가 부모의 부동산 흥망사를 본격 취재하게 된 데에는 대학 재학 시절의 구술생애사 인터뷰 과제가 계기가 되었다. 부모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부터 집 장사 시절, 세기말에 폭삭 망하게 된 이야기까지를 카메라에 담은 그는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풍파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개발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투기를 부추기고 책임지지 않는 한국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했다.

책의 뒷부분에는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를 저자가 부모와 함께 관람하는 장면이 나오고, 땅과 집을 둘러싼 남은 이야기와 약간의 반전도 이어진다. 부모님의 “땅에 대한 헛된 희망”을 시종일관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저자가 “어느 순간 부모님은 물론 나의 욕망까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결론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열심히만 일하면 누구나 집 한 채는 마련할 수 있고 부동산으로 계층이동까지 가능했던 부모세대와 월급만으로는 죽을 때까지 서울에 집을 살 수 없는 청년세대에게 부동산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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