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鏡칼럼 - ‘몸풀기’ 나선 차기 잠룡 주자들
“선두그룹에 못 들면 추격 힘들다” 물밑경쟁 치열…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꽃은 붉음이 열흘을 가지 못하고, 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영원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고사이다. 그럼에도 선거철이 다가오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향해 질주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난다. 특히 차기 대선을 바라보고 뛰는 ‘잠룡(潛龍)’ 주자들의 행보가 관심을 끈다.
2024년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차기 예비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다음 대선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임에도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내놓으며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도 “차기 주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몸풀기’에 나선 가운데 이미 치열한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차기 주자들이 정중동(靜中動) 속에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은 “지금 선두 그룹에 들지 못하면 따라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그럴수록 대중으로부터 잊혀지기 쉽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론의 관심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주요 후보군에 포함된 정치인들에게 쏠리기 마련이고, 이에 언론도 이들의 행보를 더욱 비중 있게 다루게 되면서 선두 그룹과 나머지 그룹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여론조사의 대표적 속성으로 꼽히는 ‘유명하니까 더 유명해지는’ 현상이 차기 주자(走者) 경쟁구도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여권 한동훈 원희룡 오세훈 두각…야권 이재명 이낙연 리턴 매치 가능성 속 김동연 김부겸 합리적 이미지 어필
현재 여권에선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가 특히 눈에 띈다. 한 장관의 경우 야당과 각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등 기존 장관의 틀을 깨는 행보로 지지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 장관은 7월15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포럼’에 참석, 이승만·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을 두루 평가하는 등 대중성 발언의 수위도 한층 높여가는 모습이다.
원 장관도 기존의 중도적 이미지와 달리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뜨거운 논란 속에서 야권의 공세에 적극 맞서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철근 빠진 이른바 ‘무량판’ 이파트 사태와 그에 따른 LH의 전관 이권 카르텔 혁파에 나서는 등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서면서 여권 내 입지를 넓히고 있다. 오 시장은 최근 잼버리 사태 수습에 발 벗고 나선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따로 감사 인사를 건네 주목을 모았다. 서울시장이란 프리미엄도 오 시장에겐 호재다.
이들 ‘주류(主流) 주자 3인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여권 내 비(非)주류 주자들도 미디어 접촉을 부쩍 늘리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임하며 쓴소리와 훈수 정치 등을 통해 변방의 핸디캡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차기 레이스에서 가장 불리한 게 여권 비주류”라며 “여기서 더 뒤처지면 판세를 뒤집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일찌감치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잊혀지지 않기 위한’ 비주류 주자들의 행보가 여권 내부 경쟁을 더욱 뜨겁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윗줄 왼쪽부터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밑줄 왼쪽부터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가나다 순).
그런가 하면, 야권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차기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만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이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최대 변수로 꼽힌다. 이낙연 전 대표가 외유(外遊)를 마치고 귀국해 비명계 리더로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 비판에 더해 최근엔 공·사석에서 “민주당이 길을 잃고 있다”며 이 대표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전언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 이어 차기 대선에서도 ‘리턴 매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들의 물밑 신경전은 야권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윗줄 왼쪽부터 김동연 경기 지사, 김부겸 전 총리. 밑줄 왼쪽부터 이낙연 전 대표, 이재명 대표(가나다순).
야권 일각에선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름도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도적 성향의 정책 전문가로서 여권 예비후보들과 견줘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도 곁들여진다. 김 지사가 최근 원 장관과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게 대항마(對抗馬) 이미지 구축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부겸 전 총리 복귀설도 관심사다. 당 안팎에선 총선이 임박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될 경우 합리적 이미지를 가진 김 전 총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치권에 “다음 대선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지율에 신경 쓰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지도는 수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수능 점수는 열심히 공부하면 높일 수 있지만 지지도는 ‘제로섬 게임’이라 경쟁 후보 지지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만회할 길이 없다. 대개 무응답층을 20%로 볼 때 여야 후보들이 40%씩 나눠 갖게 되는데, 각 진영에서 한두 명이 15~20%를 유지할 경우 추격 후보가 두 자릿수 지지를 획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대선에서 이른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온 사람) 후보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단지 지지도가 높다고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이에 더해 각자의 ‘스토리’와 ‘서사(敍事)’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여론의 최종 선택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실제로 구질서 등에 맞서 싸우며 대중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일 때 대중은 열광해 왔다. 역대 대선에서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청산 노력,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소신 발언 등이 유권자의 신뢰를 얻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
2024년 4월10일 실시되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與野) 공히 인물난에 봉착해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현재대로라면, 가장 비중이 높은 서울·수도권에서 대패(大敗)할 가능성이 높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대표 리스크’ 등으로 인해 리더십 부재에 빠져 있다. 여야 모두 21세기 대한민국 국가 리더십에 걸맞은 지도자가 없다는 게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많은 난제들의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정치지도자와 행정지도자들이 경세학(經世學) 내지 지도자학(指導者學)에 관한 기초적 이해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라 운영의 큰 책무를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자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되어서도 안 된다.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적어도 네 가지 능력과 덕목을 갖춰야 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추기 위해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첫째, 애민(愛民)과 수기(修己)다.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수양에 앞장서야 한다. 자기수양의 핵심은 사욕(私慾)과 소아심(小我心)을 줄이는 것이고 공심(公心)과 천하심(天下心·천하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마음)을 확충하는 것이다. 공심(公心)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자질이다.둘째, 비전과 방략(方略)이다. 지도자는 최소한 세계정세 흐름과 국정 운영의 대강(大綱)을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공동체가 나갈 ‘큰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시킬 ‘큰 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안민(安民)과 경세(經世)의 꿈과 방략을 가지지 않고, 치열한 준비와 고민도 없이 안민하고 경세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해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아니 죄악이라 할 수 있다.셋째, 구현(求賢)과 선청(善聽)이다. 안민하는 경세를 하려면 무엇보다 천하의 현명하고 경륜 있는 인재들을 많이 구하여야 한다. 구현(求賢)이다. 세상을 경영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 최고 인재의 머리로 안민하고 경세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최고 인재를 구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인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선청(善聽)이다.넷째,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시대가 끝나고 오게 될 다음 시대를 배려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후사이고 역사의식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성공하기 위해 지금 준비하고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은 회향이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국민들과 역사에 회향해야 한다.
이 시대 자신이 이룬 공을 함께 노력한 공직자 국민 그리고 오늘이 있게끔 만든 과거의 역사 주역들에게 돌려야 한다. 그리고 본인은 빈손으로, 빈 마음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야 한다. 표표히 떠나야 한다. 이게 큰 지도자의 풍모이다.왜 지도자에게는 자기수양이 특히 중요하고 필요한가. 지도자가 국가비전과 방략을 바로 세우려면 지도자의 마음 자체가 공명정대한 공심(公心)과 대아심(大我心)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사심이 많으면 올바른 국가비전과 방략의 선택이 어렵다.
세상의 흐름을 올바로 읽고 국가가 나갈 대략(大略)을 잡으려면 지도자의 마음 자체가 청천백일(靑天白日)처럼 공명정대하고 국민을 자기처럼 아끼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한다. 또한 올바른 인재를 찾으려면 사심이 적어야 한다. 사심이 많으면 우선 사람을 올바로 볼 수 없다. 정견(正見)은 무사(無私)에서 나온다. 사심이 많으면 올바른 인재 선택을 할 수 없다. 설혹 천하의 인재를 우연히 구했다고 해도 사심이 많으면 이야기를 진지하게 선청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학(大學)』에서 지도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 즉 공심과 대아심을 확충하는 것이 지도자학의 제1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님, 정치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백성이 먹을 식량을 풍족히 하고, 백성을 지키는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로다”라고 했다. 자공이 다시 “그중 무엇이 가장 중한지요?”하고 질문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 가장 중하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식량도, 군대도, 나라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에 관한 이야기다.공자의 ‘무신불립’은 비단 공직자, 정치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단체·기업체 등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게 해당된다. 정치인과 공직자는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는 정직이다. 두 번째는 성실이고 셋째는 겸손이며 네 번째 정치인의 덕목은 사랑이다.중국을 태평성대로 이끈 대표적인 명군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남긴 유훈에 고거사추(高居思墜) 즉, 높은 곳에선 추락을 생각하고, 지만계일(持滿戒溢) 가득 차면 넘칠 것을 경계하라. 이세민이 아들들에게 남긴 유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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