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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3년09월19일 09시02분 ]
암투병 중인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 “살아있는 동안 청춘”
안도 다다오 개인전, 원주 ‘뮤지엄 산’에서 4월1일~10월29일 열려…독학으로 공부, 세계적 건축가 올라…“빛은 희망, 희망 지탱하는 콘크리트”…건축을 詩로 변화시킨 연금술사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암 때문에 5개 장기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82)가 지난 3월31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에서 기자들과 마주하자마자 건넨 첫인사이다. 그는  “사실 저는 계속 절망적인 인생이었다”며 “장기를 절제해도, 또 저처럼 학력이 없어도 청춘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산속에 감춰진 뮤지엄 산(SAN: Space Art Nature)은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공사를 시작해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2013년 5월 개관했다. 뮤지엄 산(SAN)은 '자연(Nature)'과 '예술(Art)'이 있는 '공간(Space)'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원주 오크밸리에 있는 뮤지엄 산은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이라는 슬로건으로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을 느끼는 색다른 장소이다.

 스케치가 한 장당 600만원…82세 ‘청춘’ 안도 다다오

지난 4월1일 원주 ‘뮤지엄 산’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개인전이 개막됐다. 이미 과거부터 일본, 중국, 프랑스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지만, 그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82세다. 68세와 73세에 암 투병만 두 번, 대수술 끝에 담관과 췌장 등 5개의 장기를 떼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인생은 지금부터”라며 꺾이지 않는 의지와 열정을 간직한 그의 이번 전시에 ‘청춘’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것은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사진=뮤지엄산 유튜브 영상 캡쳐

   ● ‘안도 다다오-청춘’ 개인전, 뮤지엄 산에서 10월29일까지 연장 전시   
                           
자연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건축을 선보이는 안도 다다오의 드로잉과 스케치, 영상, 모형 등 대표작 25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안도 다다오-청춘’이 4월1일부터 10월29일까지 그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서 열리고 있다. 일곱 번째 국제 순회전으로, 이번 전시는 안도 자신이 설계한 곳에서 열리는 최초의 전시이기도 하다.

뮤자엄 산은 안도 다다오가 2005년 방문했을 때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 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이라는 인상을 받고 8년에 걸쳐 완성한 건축물이다. 가늘고 긴 산의 정상을 깎은 듯한 부지에 웰컴 센터,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 등이 자리한 뮤지엄 산은 “건물 본체뿐 아니라, 부지 전체를 뮤지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안도의 바람이 완벽하게 이뤄진 곳이다. 뮤지엄 산은 이인희 고(故) 한솔그룹 고문의 의뢰를 받아 안도가 설계해 2013년 개관했다.

현재 본관 총 세 군데의 전시실에서 안도가 건축가로서 만들어 낸 작품들의 도안, 모형, 건설 과정이 담긴 영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원래 7월30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3개월 만에 15만 명이 방문하는 등 성원에 힘입어 10월29일까지로 전시 일정을 연장했다. 평일에는 오후 1시30분, 주말에는 오후 1시30분과 3시30분에 전문해설사가 투어를 진행한다. 행여 투어에 참가하지 못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시관 곳곳에 QR코드를 찍어 배우 정경호가 녹음한 오디오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강원도 원주시에 자리한 뮤지엄 산.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 의뢰로 안도가 설계했다.

본관 앞 워터가든에 놓인 뮤지엄 산의 상징 아치웨이(Archway). 12개의 거대한 파이프로 만든 붉은색 관문을 지나 본관에 이르면 푸른 사과 조형물이 방문자들을 맞는다. 작품의 이름은 이번 전시의 부제와 동일한 ‘청춘’이다. 안도 본인이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시(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오브제다. 안도 다다오가 제작한 오브제를 영구 설치한 것은 효고(兵庫)현립 미술관, 나카노시마(中の島) 어린이 책의 숲 도서관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푸른 사과인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안도는 “당장 달콤하게 잘 익은 붉은 사과보다는, 미숙하고 신맛이 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찬 파란 사과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청춘의 정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시관 여기저기에서도 작은 크기의 푸른 사과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작품에는 일본어로 ‘영원한 청춘에게(永遠の青春へ)’라고 적혀 있다

먼저 청조갤러리1에선 ‘공간의 원형’이라는 주제로 안도가 건축가로 일하기 시작한 1969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작품들에 관한 자료들이 모여있다. 각 건물의 평면도, 입면도, 조감도 등 여러 설계도면과 함께 나무로 만든 모형을 함께 제시해 감상자의 이해를 돕는다. 작품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택들 사이 교회, 사찰 같은 종교 건축물들이 시선을 끈다.

청조갤러리2로 넘어가면 하나의 건물을 넘어, 섬 전체를 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나오시마(直島) 프로젝트 관련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전시관 초입에는 1987년부터 최근까지 섬에 차근차근 들어선 8개의 건물을 모형과 함께 보여 준다.

어두운 안쪽 공간에는 한쪽 벽 전체에 나오시마의 경관을 보여주는 영상을 재생하고 그 앞으로 두 개의 거대한 조형물을 배치했다. 각각 나오시마의 디오라마, 프로젝트의 주요 건물인 베네세 하우스 모형이다. 반대편 벽에는 섬에서 찍은 사진들을 걸어둬 나오시마라는 지역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여기서 디오라마(diorama)란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 또는 그러한 배치하는 것으로, 파노라마(panorama)와 유사하지만, 파노라마가 실제 환경에 가깝도록 무대 도처에 실물이나 모형을 배치해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명백히 하는 데 비해, 주위 환경이나 배경을 그림으로 하고, 모형 역시 축소 모형으로 배치한다는 점이 다르다.

두 번째 전시관을 빠져나와 마지막 전시관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특별코너 ‘한국의 안도 다다오 건축’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 본태박물관이나 서울 LG아트센터 말고도 여주에 두 개가 있 다. 전시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들은 추후 이곳에서 소개하는 공간들로 직접 여행을 떠나봐도 좋을 것 같다.
 
뮤지엄 산의 안도 다다오 '청춘' 전시 전경. /뮤지엄 산 제공
 

그밖에 흡사 로마 판테온(Pantheon)을 떠오르게 하는 백남준관,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의자들을 모아둔 또 하나의 특별코너를 지나면 마지막 전시관 청조갤러리3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선 ‘풍경의 창조’, ‘도시에 대한 도전’, ‘역사와의 대화’라는 세 가지 주제로 안도가 나오시마 프로젝트 이후 작품과 도시, 지역공동체를 조화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에 주목한다. 스케일이나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처음 전시관에서 보았던 작품들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으니 두 곳을 오가며 비교해보면 좋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청조갤러리3을 나와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뮤지엄숍이 나온다. 엽서, 액자, 포스터 등 여느 미술관에도 있는 굿즈(goods)들 사이로 조금 특별한 상품이 눈에 띈다. 바로 안도가 그린 뮤지엄 산 본관의 스케치 원본이다. 단 2장만을 한정 판매하는데 가격은 무려 장당 600만 원이다.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아래 조금 작은 크기의 스케치 작품이 들어있는 도록이 있다. 드로잉은 총 6종류이며 100권 한정으로 친필 사인도 적혀 있다. 도록은 권당 약 4만 원 정도라 기념삼아 구매해봄직 하다.

전시는 전시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가 이뤄지는 건물 자체가 이미 그의 건축세계를 담고 있는 작품인 탓이다. 복도를 지나며, 계단과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하다못해 벤치에 앉아 쉬는 순간까지 이미 전시를 체험하는 것과 다름없다.

뮤지엄 산은 이름처럼 해발 275m 수래봉 산중에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무섭도록 비가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개거나 갑자기 안개가 끼는 등 관람하는 내내 변화무쌍한 날씨와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건물은 그 얼굴을 바꾼다. 바람과 빗방울에 물 표면이 춤추고, 회색의 콘크리트는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물든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도 건물에 머무르며 그 변화를 감상할 때 전시는 비로소 완성된다.

개관 5주년에 이어 개관 10주년인 2023년에도 뮤지엄 산에는 새로운 건축물이 생겼다. 플라워 가든 초입,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조각공원에 들어선 빛의 공간 ‘파빌리온’이다. 용도는 명상관과 마찬가지로 명상 공간이지만, 원형과 곡선이 돋보이는 명상관과는 달리 사각형과 직선을 강조한 모습이다.

안도 다다오는 이 건축물을 설계할 때 주변 환경과의 조화보다 건물의 내면, 공간 자체에 집중했다고 한다. ‘공간의 원형이란 무엇인가’라는 건축의 근원적인 질문에 오로지 공간에 비치는 빛의 모습만을 고민하며 도출한 답이 바로 이 파빌리온이다.


빛의 공간 파빌리온 실내 /뮤지엄 산 제공

대표작인 ‘빛의 교회’ 설계 당시 건축주인 신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유리 없는 십자가를 마침내 구현했다. 어떤 장식도 음악도 없는 정적인 공간이지만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증샷도 좋지만 아무도 없는 빈 파빌리온에 가만히 서서 건축물이 주는 울림을 온전히 느껴보면 좋겠다.

안도 다다오의 이번 전시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눈으로 좇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바라볼수 있는 기회다. 건축 전시에 사람을 불러 모으려면 상당히 과감한 일을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이번에도 그는 열과 성을 다해 전시를 준비했다.  

     안도 다다오 “자유와 용기가 있다면 인생은 정말 즐거운 것”

“자유와 용기가 있다면 인생은 정말 즐거운 것입니다.” 청년 시절 경험했던 세계 여행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스크린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인도로 가던 배에서 찍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갑판에서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장면이었다.“같은 선실을 썼던 사람들 중에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날은 좌선(坐禪)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저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물을 끼얹으면 다시 일어나 앉고요.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게, 자유롭게 인생을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했지요.”

7월1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안도 다다오는 세계로 시야를 넓히고 큰 꿈을 품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지난 3월) 뮤지엄 산에서 강연했을 때 김은미 총장님에게서 이화여대에서도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안도가 설계한 원주 뮤지엄 산에서는 3월부터 그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7월말 폐막 예정이었으나 10월29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7월15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강연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도 다다오. /뮤지엄 산 제공


청년 안도가 세계 일주를 떠났던 시기는 1965년 스물네 살 때였다. 러시아를 거쳐 유럽을 돌고 아프리카와 인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지구는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건축을 독학했던 안도에게 이 여행은 건축가로서도 중요한 계기였다.

그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천장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걸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자연의 빛’은 이후 지금까지 안도 건축의 키워드다. 최근 뮤지엄 산에 새로 개장한 명상관 역시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의 천장에 십자가 모양으로 틈을 내 자연광이 유입되도록 했다.이런 디자인은 건물 전면(前面)에 비슷한 십자 모양 틈을 만든 오사카의 대표작 ‘빛의 교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안도는 “빛의 교회는 십자가에 유리를 쳤으니 이 명상관이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늘 바로 아래에서 자연을 직접 대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유리를 거치지 않은 빛이 훨씬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빛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거기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안도 다다오가 최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 설계한 '빛의 공간'. 천장의 십자형 틈을 통해 자연의 빛이 유입되는 명상 공간이다. /뮤지엄 산 제공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는 ‘기둥밖에 안 남아 있는데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돌아와 맹렬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고졸 학력에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못한 안도에게 건축가로 자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 녀석은 대학도 못 나와서 틀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수준이 너무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안도는 목표를 높이 잡고 한 걸음씩 다가가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자신의 그런 태도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설명했다. “사무실에 개가 한 마리 오게 됐는데, 이름을 단게 겐조(丹下健三, 1913~2005·전후戰後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지으려고 하니까 다들 말리더군요. 그렇다면 세계 최고 건축가로 하자는 생각에 르 코르뷔지에(1887~1965·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거장)를 떠올렸지요.

” 안도는 반려견의 이름을 ‘코르뷔’로 지었다고 한다.강연에서 소개한 작품들도 대부분 주변의 반대와 만류에 굴하지 않고 목표했던 바를 관철한 사례들이었다. 안도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면 뚜렷한 목표와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도 다다오는 강연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당신에게 청춘이란 무엇인가.

“청춘은 10대, 20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이다. 여러분 모두 청춘을 계속 유지하며 살기를 바란다.”17세에 프로 복서로 입문한 그는 고교 졸업 후 15평짜리 술집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일을 시작했다. 건축 공부는 책과 여행으로 했다. 20세에 르 코르뷔지에 작품집을 베껴 그리며 건축 도면을 외우다시피 했다. 그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력주의 사회다. 나는 전문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열네 살 때 우리 집 증축 공사가 있었다. 목수분이 여러 아이디어를 내며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이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안도 다다오는 “1965년 일본 근대 건축의 영웅 단게 겐조가 지은 건물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건축은 설계와 시공, 이후 운영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며 “나도 협업으로 저렇게 근사한 건물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로 불린다. 건물의 안팎을 노출 콘크리트로 일관하며, 그 안에 빛을 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공간의 특징을 만들어왔다.

-왜 노출 콘크리트인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건축을 하고 싶었다.”

안도 다다오는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콘크리트는) 내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라며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더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력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그의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롱샹성당을 보고 빛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빛은 희망이다. 나는 희망이 있는 건축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작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곳엔 땅에 묻힌 건축물로 유명한 지추미술관을 비롯해 현재까지도 새로운 미술관을 짓고 있다. 그는 “나오시마는 처음엔 아주 절망적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매년 70만 명이 찾아온다”며 “아이를 낳아 정성을 들여 키우는 것처럼 건축도 계속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건축을 위한 전제 조건은.

“좋은 클라이언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곳에 건물을 지을 구상을 하고 설계와 공사를 발주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고 이인희 고문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14년 전 저를 불러 세계에 둘도 없는 건물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먼 이곳에 사람이 과연 올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 1년에 20만 명 이상이 찾고 있으니 그분의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안도 다다오는 “청춘을 유지하려면 지적·신체적인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하루 1만보를 걷고 매일 1~2시간 정도 공부하고 있다”며 “청춘을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 1840~1924)의 시 ‘청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중략)…청춘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예순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고 누구나 세월만으로 이상(理想)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 사무엘 울만, ‘청춘’ 中에서 

‘100세 시대’라는 세간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도 다다오에게 남은 시간은 약 20년. 그는 그 시간을 계속해서 청춘으로 살아갈 것이다. 정반대로 70, 80년의 세월을 남겨둔 젊은이는 과연 여든의 노장보다 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도 다다오는 어떻게 글로벌 스타 건축가가 됐나 

안도 다다오는 2020년 2월 프랑스 파리 옛 증권거래소 건물의 막바지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이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문화사적(文化史蹟) '부르스 드 커머스(Bourse de Commerce)'다.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케링그룹 명예회장(1936~)이 안도에게 설계를 맡겼다.지름 40m에 달하는 뻥 뚫린 원형 공간에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 전시장 7개와 블랙박스 공연장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6월 5000점에 달하는 피노 컬렉션 중 골갱이들이 이 현대 미술관에 가득 차게 됐다. 퐁피두센터와 루브르 박물관이 지근(至近)거리에 있다.안도는 설계 과정에서 로마의 판테온(Pantheon)을 염두에 뒀다. 젊은 시절부터 시차를 두고 느꼈던 천장에서 들어 오는 빛, 43m나 되는 구(球) 형상 공간과 균형 잡힌 형태, 공간에 넘쳐흐르는 찬미가의 울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인근에 있는 퐁피두센터는 1972년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1933~)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1937~)의 공동 프로젝트가 국제 공모에 당선되어 1977년 2월 문을 열었다. 루브르는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1917~2019)가 설계했다. 안도 다다오는 퐁피두와 루브르를 자연스럽게 비교되기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안도는 고졸 출신에 일본 오사카의 거친 환경에서 자랐지만, 건축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학도, 건축 전문대도 못 가서 스스로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독학했다. 

"지옥으로 가나, 왕좌로 가나 홀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이 대사는 2020년 아카데미상  영화 '기생충'의 가장 강력한 경쟁작으로 꼽혔던 영화 '1917'에서 극중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이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는 스코필드(조지 매카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에게 한 말이다. 1963년 혼자만의 여행을 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히로시마(広島)를 돌아 북쪽 기후(岐阜)에서 도호쿠(東北)까지. 단게 겐조(1913~2005)가 1954년 준공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밤에 방문했을 때 필로티 너머로 원자탄이 폭발하는 돔 형상을 보았다. 살아있는 그 공간의 위력에 건축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스물네 살 때인 1965년 7개월에 걸친 유럽 건축 여행은 왕좌로 가는 길이었던 셈이다.

1976년 건축한 첫 번째 출세작인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세 집이 연결된 한가운데를 들어내고 정면 두 칸(3.6m)과 측면 여덟 칸(14.4m)으로 콘크리트 상자를 삽입한 단순한 구성이다. 평면을 3등 분해서 그 중앙에 중정을 두었다. 창문 하나 없는 외벽을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내부를 바깥과 격리했다. 빛이나 바람 등 자연 요소를 모두 중정을 통해 들어오게 했다. 2층 방은 다른 방으로 가려면 중정을 가로질러야 한다.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 '롯코 집합주택'은 롯코(六甲)산맥 기슭의 한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고 대지는 남향으로 60도 경사져 있어 오사카만에서 고베항까지 경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안도는 이 대지에서 건물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접근을 시도했다. 경사를 올라가면서 의도적인 여백을 두었다. 여백들은 서로 호응하면서 건물 전체를 연결하고 동시에 광장 기능도 한다.

모든 가구에는 테라스가 있고 다양한 전망이 펼쳐진다. 불규칙한 지형에 따라 비대칭 구조물이 형성되고 각 가구는 다양한 형태를 지니게 된다. 이 집합주택은 외부 도로에서 곧장 각 가구로 진입할 수 있다. 1단계는 1978~1983년, 2단계는 1985~1993년, 3단계는 1992~1999년에 걸쳐 건축했다.                                                           

고베시 롯코 집합주택 /사진=flickr
  

일본에서 두 번째 큰 섬인 야와지시마(淡路島)에 있는, ‘물의 사원’이라 불리는 혼푸쿠지(本福寺, 1989~1991)는 사원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권위의 상징이기도 한 지붕을 없애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연꽃으로 상징하는 둥근 연못 아래에 법당이 있다. 해넘이 때는 실내의 붉은 칠 마감과 어우러져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안도의 건축은 진입 시퀀스가 상당히 중요하다.

들어가는 입구의 장면과 그다음 장면, 그다음 장면이 연속되어서 전체적인 공간의 심상이 완성된다. 기다란 노출 콘크리트 벽을 따라 걸으면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수련 연못이 펼쳐진다. 원주 뮤지엄 산도 벽 끝에 건축물이 나타나고 그 배경에 바람에 파장을 그리는 물과 하늘이 펼쳐진다. 수련 연못 가운데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연못 아래가 사원이다.

안도는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건축상을 수상했고, 1997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 전공에 설계를 담당하는 교수로 임용됐다. 일본 혼슈(本州)와 시코쿠 사이 바다와 주변 해안 지역을 가리키는 세토(瀬戸) 내해. 가가와(香川)현 가가와군 나오시마(直島)를 비롯한 이곳 섬들에서는 2010년부터 3년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국제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2016년 예술제에는 100만명 넘게 다녀갔다. 예술제 성공 뒤에는 일본 최대 출판·교육그룹 베네세의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회장과 안도 다다오가 있다.

안도는 베네세그룹 후쿠다케에게 나오시마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 2000~2004)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이 섬에 사람들이 올까’하고 의구심을 가졌다. 후쿠다케는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등 현대 미술가들을 불러들였다. 안도는 "건축은 밖에서 형태가 안 보이는 게 좋다. 풍경을 가리니 외형보다 내부에서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지하에 공간을 냈다. 2010년 개관한 이우환미술관은 안도가 나오시마에 설계한 일곱 번째 건축이다. 

이우환(李禹煥, 1936~)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진학해 6개월이 안 된 상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철학과에 편입했다. 1961년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나 철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일본화(日本畵)학원을 다니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일본의 예술운동인 모노파(物派)의 이론적 토대를 쌓았다. 대표적 설치미술가로 명승을 유지하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쓰는 詩 – 안도 다다오의 건축세계 

1941년생인 안도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서 1969년 설계 일을 시작했으며, 1995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일본 이바라키(茨木)시 교외 주택가의 ‘빛의 교회’와 1988년부터 30년 넘게 진행 중인 나오시마(直島) 프로젝트 등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제주 본태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유민미술관, 경기 여주의 마음의 교회,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등이 있다.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오사카에서 쌍둥이의 형으로 태어났다. 일본 제1의 상업도시 오사카라기보다는 오사카 외곽 출신의 '촌뜨기'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이 안도 다다오의 최종 학력이다. 실제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학교에 잘 다니지도 않았기에 학교에서 무엇을 크게 배웠다고 볼 수도 없다.

고교 말년 쌍둥이 동생의 영향으로 권투 선수가 됐다. 그러나 고교 졸업 후에는 이른바 백수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실제 공사를 하는 것은 건축 일, 이른바 '노가다'를 하게 된다. 우연히 건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인해 그는 드디어 길고 긴 오랜 방황에서 자기의 길을 발견하게 됐다. 독학과 답사로 세계 최고 건축가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988년 2월13일, 대한건축사협회 강당의 강연장은 건축가들과 학생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이내 투박하면서도 약간 쉰 목소리의 강연이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보지 못한 안도 다다오 특유의 신선하고 대담한 건축적 사고와 발상 그리고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한 열변에 대다수 청중들이 매료되었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했는데, 사변적인 내용 없이 건축에 대한 밀도 있는 설명과 본인의 사고에 대한 확신 등을 '돌직구'처럼 거침없이 쏟아 놓은 이때 강연이 최고의 명강연으로 평가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를 지배하던 모더니즘 건축이 간과하고 있던 장소성의 회복(그는 이것을 동아시아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기氣의 개념, 특히 땅의 기운의 존중으로 설명했다), 이후 유행처럼 번지던 20세기 중후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장식성과 차별되는 간결하고 추상적인 조형미, 그간의 형태의 모방에 머무르고 있었던 전통성의 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혜안, 노출 콘크리트라는 '칙칙한 재료'의 시적 승화는 참신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동안 기능적 건축이 간과하고 있던 건축의 본질로서의 자연 그리고 빛과의 조화, 단지 효율적이었던 건축을 뛰어넘는 역동적인 공간 구성 그리고 '대충대충 건축'에 대별되는 치밀하고 완벽하고 섬세한 디테일 등은 고졸 출신의 독학 건축가라는 그의 이력과 함께 모든 청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당시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건축가의 이름은 안도 다다오. 이후 한국 건축계, 나아가 세계 건축계는 '안도 표' 노출 콘크리트와 안도 다다오 건축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안도가 건축을 배운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독학'이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책을 읽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것이었다. 중고 르 코르뷔지에 전집을 사서 책이 닳도록 트레이싱을 하며 학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내게 건축학과의 학생 시대나 설계사무소에서 수습하는 시기가 없었던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울 수 있지만, 발상의 범위가 축소될 수 있습니다. 평균화된 민주 교육은 개성을 잃게 합니다. 학교에 가거나, 혹은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자신의 인생과 맞부닥뜨리는 방법이 내게는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답사'이다. 그는 설계실이 아닌 답사를 하면서 건축을 터득했다. 특히 1965년부터 사무소를 여는 1969년까지 4년간은 모색과 답사의 시기였다. 러시아·핀란드·스위스·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프랑스·오스트리아·인도·미국 등을 답사하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아돌프 루스(Adolf Loose),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알바 알토(Alvar Aalto),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루이스 칸(Louis I. Kahn) 등의 작품들과 수많은 고전 건축들을 보고 공부하며 온몸으로 느끼면서 독자적인 건축관(建築觀)을 형성했다.

"건축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매체가 아니라, 자신의 오감으로 그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내게 ‘답사’는 그 자체가 유일한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타성적인 일상을 떠나 사고를 깊게 하는 자신과의‘’대화‘인 것입니다. 여행 중에 필요없는 것은 떨쳐 버리고 맨몸인 자신과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일진일퇴를 반복합니다. 그것이 한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독학과 답사를 통해 권투 선수이자 '노가다'였던 한 젊은이는 서서히 건축가가 되어 갔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삶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핑계쟁이가 아니냐고. 어려운 환경과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을 불평불만하고, 핑계를 대기보다는 독학과 답사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라고 말이다.

LG아트센터 서울은 튜브(Tube),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게이트 아크(Gate Arc), 총 세 가지 컨셉으로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지상층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원형 통로인 높이 10m에 달하는 튜브는 이곳의 시그니처 공간으로, 서울식물원과 LG사이언스파크로 연결된다.

 ●도발하는 노출 콘크리트 상자

안도 다다오의 수많은 작품들을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다. 굳이 한두 마디로 정리해야 한다면 ‘도발하는 노출 콘크리트 상자’로 정의할 수 있다.안도는 거의 대부분 경우에 사각형·원·삼각형·타원과 같은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선택한다. 왜 그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를 택하게 됐을까. 자연의 유기적인 모습과 달리 인간은 이성(理性)의 존재로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어떻게 보면 그 결과물인 인공적인 건축은 자연에 맞서는 것이다. 그에게 건축이란 자연과 장소에 대립하고 투쟁함으로써 오히려 자연과 장소에 조화를 이루어 내는 역설(逆說)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순응적 조화가 아니라 대조적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추상적이고 순수한 기하학이 그의 건축이 된다.

노출콘크리트 하면,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하면 노출콘크리트라고 할 정도로 노출 콘크리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사실 안도가 사용하기 이전의 노출 콘크리트는 별로 호감 가는 재료가 아니었다. 건물 기초나 창고 같은 건물에나 쓰는 칙칙한 재료였을 뿐이다. 물론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 같은 건축가가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잊힌 재료와 다름없었다. 아마도 안도는 이 두 거장(巨匠)의 건축을 답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노출 콘크리트의 가능성을 마음속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쳐 그는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는 '안도 표' 노출 콘크리트를 만들어 냈다. 이는 콘크리트의 새로운 미감(美感)의 창조로 구조체로서의 중량감은 느낄 수 없고, 어떻게 보면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가벼운 대리석처럼 느껴지고, 빛이 반사되면 심지어 따스함마저 느껴진다. 그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행처럼 '안도 표' 노출 콘크리트를 보게 되었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의 변화는 물질의 소재감에 생명을 불어넣는 창의적인 건축가에 의한 것이다.

안도의 특이성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무미건조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상자를 도발(?)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단순한 상자와 대조적으로 상자의 내부에는 매우 역동적인 공간이 들어있다. 어쩌면 순수 기하학적 형태는 이런 공간을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안도는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단순히 형태를 조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간을 구축하는 일이자 무엇보다 공간의 기초를 제공하는 하나의 장소를 구축하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내 건축에서 공간이 하나의 구체적인 존재가 되도록, 주의 깊게 그리고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제주도에서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빛과 물,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특유의 건축적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해 안도 건축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본태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노출 콘크리트 상자는 그냥 고정된 상자가 아니다. 외부의 환경과 내부의 공간을 매개하며, 연결하고 변화시키는 도발하는 상자이다. 그곳에서 보통의 건물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던 감각과 정서를 회복하게 된다. 역동적인 공간 체험과 곳곳에서 조우(遭遇)하는 자연과 빛을 경험하며 우리의 잠자던 인식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그가 도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만들어진 자연, 만들어진 빛

안도 다다오는 인간의 가능성과 가치를 믿는다. 자연계의 어떤 존재와도 다른 인간의 특성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 인간 이성의 산물이 추상적·기하학적 건축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굳게 믿는다. 그러나 그가 믿는 인간의 가능성과 가치란 자연을 무시하고, 정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 서로는 서로에게 각각이었을 때보다 함께 공존할 때, 더 큰 의미와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 방법은 대립과 대조 속의 조화이다. 자연과 대조적인, 기하학적 속성들·단순성·규칙성·반복성·대칭 등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자연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건축은 닫혀 있고, 분절되어 있는 영역으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환경과 명백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논리를 찾아내고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것을 건축의 논리와 대비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기하학적 건축은 전체를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할 뿐 아니라, 각각의 장면을 위한 단편들도 만들어 내고, 동시에 스크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섬세하게 절개된 개구부와 프레임들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이지만 건축에 의해 절개된, 만들어진 자연이 된다. 물·하늘·빛이 추상화되는 것이다.

이때 자연은 자연 상태 그대로일 때보다 더 잘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건축 자체도 추상적인 형태로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 기하학과 만들어진 자연, 그리고 그 장소의 기억이 하나로 통합될 때 건축은 그것이 가야할 길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안도는 믿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주장이 성공적으로 성취된다면 그의 건축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드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건축이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빛으로 가장한 자연이 이야기하게 해야 합니다."

 ●양복을 입은 아시아의 목소리

글로벌 전략, 글로벌 시각, 글로벌 기업, 글로벌 랜드마크 등 ‘글로벌’ 홍수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북아시아인(人)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세계화되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건축가는 어떻게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이슈로 다가오는 시기이다. 

지금은 전통성과 세계성을 나눌 정도로 고루하지 않지만, 이 둘을 창의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환영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 건축가들의 행보는 그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중·일(韓中日)은 서로의 차별성도 있지만 동아시아인으로서의 공통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건축가들은 별도로 일본성이니 혹은 아시아성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건축에서 자신의 색깔과 풍취가 나오니, 우리에게 좋은 탐구 사례가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로는 SANAA(일본의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妹島和世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의 유닛 건축 사무소), 쿠마 켄고(隈研吾),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 마키 후미히코(槇文彦) 그리고 안도 다다오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전통이나 지역성은 형태상의 모방이 아닌 정신과 감성을 계승한다는 안도의 주장은 새겨 볼 만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정체성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정체성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형태의 모방은 시대와 불화를 낳고 정신과 감성의 계승은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안도 다다오는 오랜 탐구를 통해 우리에게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일본의 정신과 감성은 다음과 같다.

자연과 장소에 대한 경외, 사물 사이의 공백에 의미를 두는 간(間)의 미학, 소재의 존중과 직접 대화, 극한까지 간소화하려는 간결의 미(美)의식, 질서를 존중하는 일본의 심성 등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의 건축을 설명하는 주제어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전통에서 계승해야 할 정신과 감성의 기본이 되는 일본 전통 건축으로 스키야(數寄屋)와 민가를 들고 있다. 다도(茶道)를 즐기기 위한 스키야와 생활을 위한 민가는 미감(美感)이 구별되지만 자연 속에 일체가 되려는 정신성은 유사하다. 전체는 생활의 질서를 떠받치고, 부분은 생활의 각 장면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두 차원의 조화도 이야기한다.
  


휘닉스 제주 섭지코지에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두 동이 자리하고 있다.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이다. 유민미술관은 안도가 설계한 기존 건축물 지니어스로사이에 2017년 새롭게 조성한 공간으로, 섭지코지의 원생적인 모습을 형상화해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서양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로마의 판테온과 18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피라네시(Piranesi)의 상상 속의 공간을 꼽는다.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 1778)은 이탈리아의 판화가이자 건축가이다. 고대 유적을 그린 그의 세밀한 판화들은 신고전주의 건축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태어나 큰형을 통해 라틴어와 고대 문명에 대해서 배웠다.

판테온이 단순한 기하학적 질서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 이 공간은 자연 세계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건축의 가치를 드러낸다. 피라네시의 환상의 감옥 속에 내재하는 미로적인 공간의 상상력은 그 역동적 수직성으로 일본의 전통 건축과는 다른 대조적인 아름다움으로 있다는 것이다.

이런 탐구를 바탕으로 그는 동양(일본)과 서양의 대립하고 모순되는 가치를 하나로 통합한다. "이 모순들을 통해서, 우리는 외면상 각 공간의 특성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넘어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장소가 그 잠재적인 성격들과 공명(共鳴)하며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내 작품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이와 같이 상반되는 공간적인 개념들을 하나의 단일한 건축, 그 각각의 개념들을 초월하여 하나의 건축 속으로 통합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원한 '촌뜨기'로서, 게릴라 정신을 주장하며 건축이 자본의 흐름에 대한 배경으로서 기능하는데 그치고 마는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창의적인 저항으로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양복을 입고 있지만 세계를 공명시키는 아시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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