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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3년10월31일 10시50분 ]
水鏡칼럼  국민 두 쪽 낸 ‘정치인의 입’…막말·폭언부터 퇴출해야
  고성 막말·폭언에 잠식된 국회…책임과 윤리가 실종된 한국정치…막말·폭언 정치 바꾸려면?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한국 정치가 여야(與野)의 도를 넘은 막말과 비방전에 물들고 있다. 21대 국회는 아직 임기가 6개월여 남았지만 역대 국회 중 폭언, 인격 모독성 발언, 모욕, 비난 등을 이유로 제출된 징계안 건수는 가장 많았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대 진영을 향한 정치인들의 극언(極言)이 일상(日常)이 됐고, 거친 언어가 또다시 한국 사회를 둘로 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부터 이날까지 모욕·욕설·인신공격·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출된 국회의원 징계안 수는 총 128건으로 전체(288건)의 44.4%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13대 2건 ▲14대 2건 ▲15대 12건 ▲16대 10건 ▲17대 16건 ▲18대 15건 ▲19대 23건 ▲20대 21건 ▲21대 27건으로 증가 추세다.

27건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18건(장경태 3회·윤호중 2회·김용민·홍익표·주철현·김교흥·노웅래·김의겸·권칠승·윤영찬·이재명·임종성·김한규·설훈·박영순), 국민의힘은 9건(태영호 2회·조수진·배현진·권성동·정진석·윤창현·신원식·김기현)이었다. 부적절한 발언이 모두 징계안 제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사례는 더 많다. 10월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당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지× 염×”이라는 욕설을 했다.

이런 상황에도 국회 내부의 자정(自淨)작용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28건의 징계안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2011년 18대 국회의 강용석 전 의원 1건(30일 국회 출석 정지 처분)에 불과했다. 21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관련 징계안 심사에 착수한 사례는 0건이다.

 ‘막말 정치’의 사회심리학…막말·폭언을 ‘합리적 행동’으로 보는 거대한 착각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분노사회’의 병리 현상…생계형 정치인 판치는 정치권엔 이념도 정책도 존재하지 않아

소수의 일탈인가, 사회적 병리 현상인가. 남발되는 정치적 폭언이 이미 도를 넘었다. 막말·폭언을 하는 사람도 국회의원에서 판사, 검사, 인터넷 팝캐스트 진행자, 익명의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정치인의 막말이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다. 

한국 정치의 막말·폭언 파동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특히 대통령을 겨냥한다. 199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소속 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여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는 막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심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 24명은 연극 ‘환생경제’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댄 극중 인물 노가리를 향해 ‘육XX놈’, ‘개X놈’ 등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박수를 치며 연극을 관람했다.

그 당시 야당이 된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도 폭언에 가세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 땅박이, 2MB”라고 비난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은 “새해 소원은 뭔가요, 명박 급사”라는 글을 리트윗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폭언도 줄을 잇는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는 ‘귀태(鬼胎)’ 표현까지 동원했다.

정치적 폭언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대되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소수의 엘리트뿐만 아니라 누구나 막말을 전달할 수 있는 정치적 폭언의 ’대중화’가 발생했다. 한 인터넷 팝캐스트 진행자는 트위터에 “그 애비(아비)도 불법으로 집권했으니, 애비나 딸이나”라는 글을 올렸다. 반면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노무현 대통령을 ’놈현’ 이라고 폄훼했다. 스스로 ‘일베충’이라고 부르는 회원들은 진보·여성·전라도·외국인을 집중적으로 조롱했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지금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상대방을 향해 막말·폭언을 쏟아 붙는 게 거의 일상화됐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분노사회’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설화(舌禍) 개의치 않는 ‘그룹 싱크(group think)’

더 큰 문제는 병리 현상의 주인공이 정치권 스타가 된다는 점에 있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은 김용민씨는 “미국 라이스 장관은 강간해 죽이자”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사퇴하지 않았다. 윤창중씨는 ‘극우 논객’라는 평가와 함께 ‘막말 종결자’라는 낙인이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시민들의 애도를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파티”라고 비난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윤여준·김현철 씨를 “정치적 창녀”라 매도했다. 대선 후 그는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다. 정치권은 막말 인사의 출세 통로가 되었다.

정치인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경력은 보통사람들보다 높다. 대부분의 유권자도 정치인들을 지도층으로 간주하고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한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이 보통사람도 사용하지 않는 폭언과 막말을 일삼는 것일까. 이에 대한 분석으로 첫째, 정치인 개인의 성격을 탓하는 관점이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매체의 칼럼에서 막말 정치인의 특징은 ‘튀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오버를 잘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막말 정치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영웅주의 심리가 충족된다.

이러한 시각은 자질론을 강조한다. 정치인이 평균 이하 자질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은 국정 운영을 고민하기보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일이 정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웬만한 설화(舌禍)는 개의치 않는 ‘그룹 싱크(group think)’가 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만 소통한 결과, 그 의견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고(訃告)만 빼면 언론에 나올수록 좋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많은 정치인은 사회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돌출발언을 하거나 대선후보 줄서기에 몰두한다. 그러나 자질론은 왜 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면 폭언을 일삼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관점은 정치인들의 폭언을 나름대로 ‘합리적 행동’이라고 본다.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대선 패배의 분풀이를 위해 대통령을 겨냥해 폭언을 퍼부으면 효과가 더욱 커진다. 야당은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이에 여당은 발끈한다. 광고 마케팅에서도 긍정적 이슈보다 부정적 이슈가 대중에게 강력하게 인식되기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 최근 SNS를 통해 이름을 알리려고 노이즈 마케팅에 나서는 정치인이 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막말 정치’가 반드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싸가지 없는 언행은 파렴치한 짓을 하면서도 용감하고 의로운 행동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야당에는 “논쟁을 ‘싸가지 없기 경연대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은 소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집단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전략적으로 막말을 선택한다. 막말을 한 사람들은 소속 집단에서 “할 말을 했다”, “용기 있다”는 식으로 칭찬을 받는다. 심지어 ‘스타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전략은 진보의 참담한 실패를 야기했다.

 ●책임과 윤리가 실종된 한국 정치

독일 철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나치당은 유대인과 공산주의를 적으로 규정하고, 온갖 증오의 언어를 퍼부었다. 테러·전쟁·대량학살은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선동하는 정치과정을 거치며 등장했다. 한국 정치에서도 폭력적 언어가 발생하는 중요한 토대는 적대적 정치구조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이 유지되면서 민주와 독재의 대립적 구도가 온존(溫存)했는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주의 정당이 출현하면서 지역주의의 ‘정치화(政治化)’가 발생했다. 지역주의 정당 경쟁은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적대적 정치를 강화했다.

한국의 적대(敵對) 정치는 권력구조 및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통해 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면 권력을 모두 장악하지만, 야당은 철저히 소외된다. 소선거구제에서 다수당은 51% 의석을 차지하면 국정을 좌우하지만, 야당은 무력한 세력이 되고 만다. 승자독식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은 서로 상대방을 완전히 적으로 간주한다. 선거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의 전쟁이다. 이런 정치적 조건에서 소속 정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요구된다. 정치인의 신념과 책임은 사라진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했다. 베버는 “신념 윤리형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을 좇아 행동하지만,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에 책임 윤리형 정치인은 신념에 매달리기보다 결과에 따른 책임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는 신념 윤리도 책임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당의 이익과 자신의 당선만 중요하다. 생계형 정치인이 판치는 정치권에는 이념도, 정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막말로 강성층 표심잡고 페널티 無…막말로 득보는 정치인…극단정치의 악순환
고성·막말에 잠식된 국회…타협·존중 대신 사생결단 전쟁터…‘권력이 강제하는 타협’이 필요해

정치인들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해지고 있다. 상대 진영을 향한 여야의 거친 막말에 국민도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상호 존중과 관용은 낯설어졌고 협치의 공간도 좁아졌다. 사나운 말이 전쟁 같은 정치를 만들었듯 화합의 정치는 좋은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의석에서 소리 지르는 행위 제발 좀 그만하십시오.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김진표 국회의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 요구 이유를 설명하는 9월21일 국회 본회의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을 향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야유했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야당에 “조용히 하라”고 외치면서 정작 한 장관 발언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야당 의석에선 “당신이 장관이냐”, “장관하지 말고 검사 하라” 같은 모욕성 발언도 나왔다. 김 의장이 24분간의 한 장관 연설 동안 “조용히 경청해 달라”고 네 차례 요구했지만, 의원들은 고성을 멈추지 않았다.

국회 대(對)정부질문과 국정감사 등 의사일정 전반에서 상대 진영을 향한 의원들의 비난과 막말, 고성이 일상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의사를 고르게 대변하고 상호 존중과 타협을 통해 차이를 좁혀야 할 국회가 사생결단의 전쟁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 정치가 정치인의 거친 언어로 양극화되고, 양극화된 정치가 정치인의 거친 언사를 부추기는 늪에 빠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막말·비난·고성이 일상(日常)인 국회

2020년 4월 21대 국회 개원 이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 당 의원을 조롱하고 무시하며 국회 회의를 방해하는 의원들의 행위가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 박영순 의원이 9월6일 대정부질문을 하는 탈북자 출신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을 향해 “북한에서 쓰레기가 나왔어!”라고 소리 지른 게 대표적이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부역자”, “빨갱이”라고 외치면서 태 의원의 질의는 잠시 중단됐다.

주요 정당 대표가 의정 방향과 정견을 발표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땐 여야 의원들이 ‘목청 대결’을 벌인다. 지난 6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연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일본 대변인”, “땅 대표”,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며 방해했다. 같은 달 민주당 이 대표 연설 때는 여당 의석에서 “죄를 지었으니까 그렇지”, “돈봉투를 안 받았어야지” 등의 비난이 나왔다.
국회의 권위를 드러내야 하는 인사청문회장, 국정감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10월5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 발언 시간에 민주당 문정복 의원이 “야! 정경희!”라고 소리를 질렀고 뒤이어 다른 의원들이 “조용히 해”, “많이 컸다” 등 반말로 설전(舌戰)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22년 10월25일 국회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윗쪽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친 뒤 텅 빈 민주당 의원석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아랫쪽 사진).

 ●막말·폭언이 득이 되는 한국 정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치언어가 정치 양극화, 팬덤 정치화 속에서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인의 도 넘은 발언을 금기시하는 정치제도와 문화의 발전은 더딘 반면, 상대 세력에 대한 막말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요소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막말을 했을 때 페널티나 마이너스 없이 지지층에게 속 시원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어가 안 되는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국회법에 국회 회의에서의 모욕 발언과 방해 행위에 대한 징계 규정이 있지만 발동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진영 양극화가 심하다 보니 진영 내 사상 검증도 심한 편”이라며 “강성 지지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당에서 주요 직위를 확보하고 세를 결집하는 확실한 방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4년 총선을 앞둔 올해는 공천을 받기 위한 충성 경쟁 속에서 의원들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극적인 발언 한마디로 높은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미디어 환경도 요인으로 꼽힌다. 일례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 2월 대정부질문에서 한 장관에게 “아주까리기름 먹느냐. 왜 이렇게 깐족대느냐”고 말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재생산되며 100만회가 넘는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여당 대변인 출신 한 관계자는 “바른말을 하는 정치인이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며 “자극적인 말을 해야 기사 제목으로 뽑히고 소셜네트워크에서도 클릭을 유도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막말·폭언 정치, 민주주의 위협

정치인의 막말·폭언의 근절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공고화되던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할지, 후퇴할지가 달린 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적 관용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인데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존중하는 정치문화가 우리나라에 아직 정착되지 않은 면이 있다”며 “정치인들이 상호 무시하고 합법적인 틀 내에서 상대를 최대한 죽이는 정치를 하는 게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라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이어 “그런 것들을 중단시키려는 과감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선진 민주주의로 가느냐, 권위주의적 잔재가 지속되는 민주주의에 머무느냐를 가리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도 “타협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정치인데 상대를 죽여야 할 적처럼 생각한다면 오히려 뒤로 가는 것”이라며 “그 결과로 유권자 상당수가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보수정당에 유리

1990년 3당 합당 이후 지역별로 ‘싹쓸이 정당’이 공고해지고, 공천권을 장악한 정당 지도부의 권력이 강해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대로, 한국 정당은 대중 정당이 아니라 계파 정당이기 때문에 ‘패거리 정치’만 강화된다. 여당에는 ‘친박’과 ‘반박’만 있고, 야당에는 ‘친노’와 ‘반노’만 남았다. 스스로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지만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말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만 존재할 뿐이다. 2012년 대선의 최대 쟁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5·16 쿠데타’와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이었다. 대안 제시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부각되고, 미래를 위한 논쟁이 아닌 과거사 논쟁이 선거를 지배한다. 이러한 적대적 정치구조는 상대 정당에 대한 정치적 폭언을 부추기고, 막말 정치인이 정치생명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정치인은 막말·폭언을 통해 패거리 정치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한다. 우리 편이 폭언을 통해 상대방을 비난하면 환호하고, “바른말을 했다”는 쾌감을 느낀다. 막말·폭언 정치는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만 우선시하는 ‘부족 정치(tribal politics)’의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폭언 난투극에서 피해를 보는 쪽은 주로 진보 세력이라는 점이다. 미국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미국 정치에서 네거티브 선거가 격화될수록 노동자의 투표 참여가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정치적 무당파(無黨派)는 주로 청년세대이며, 대체로 진보성향이 강한 편이다. 막말·폭언으로 얼룩진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커질수록 진보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보수정당에 더 유리하다.

미국 독립 직후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의 악의·상스러움·허위의식은 고쳐질 수 없는 악이지만, 우리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막말도 표현의자유 차원에서 허용돼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한국 대선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 비방에 고소·고발이 잇달았다.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성적 비하는 지나쳤다. 그렇다고 정부가 과연 정치인의 폭언·막말을 규제할 수 있을까.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국가원수모독죄’가 있었다. 1967년 장준하 ‘사상계’ 발행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우리 독립 광복군에 총부리를 겨누었다”라고 말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5공(共) 때에도 전두환 대통령을 비판한 재야인사들이 수난을 겪었다. 민주화 이후 여야 합의로 국가원수모독죄는 폐지됐다. 아무리 대통령에 대한 막말이 심해져도 국가원수모독죄를 부활하자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권력이 강제하는 타협’ 필요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폭언은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이는 적대적 정치가 사회적 차원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적대적 정치문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치개혁이 시급하다. 현재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온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적대적 정치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비례대표제, 대선결선투표제, 합의민주주의를 강화해야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분파정치 대신 복지·조세 등 전국적 의제를 중심으로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가 말한 대로 이제는 “권력이 강제하는 타협”이 필요하다. 대화와 협상을 강제하는 헌법과 법률은 사회적 폭력을 제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중요한 문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줄여야 정치적 양극화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학자 제이콥 해커와 폴 피어슨은 『승자독식정치』에서 지적한 대로 중산층이 약해지고 정치적 극단화가 심해지면 “내용을 보지도 말고 무조건 반대하라”는 적대적 정치가 강화된다. 

사회 양극화가 정치적 폭언의 기반이 된 것이다. 막말을 약화시키려면 두 가지 차원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불평등을 완화하고 복지제도를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교육·의료·사회서비스의 보편적 혜택을 받는다면 공동체의식이 강화될 것이다. 실제로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전한 북유럽 국가에서 시민의 신뢰 수준이 높고 사회적 자본도 풍부하다.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민문화를 강화해야 한다. 무조건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지나친 경쟁주의 문화에서는 공동체 정신이 자라나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혼자 볼링하기』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에서 사람들이 혼자 볼링을 하고 공동체가 와해되는 시기는 정치적 양극화의 시기와 일치한다.

이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정치학자 E.E.샤츠슈나이더가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말한 대로, 정치는 갈등을 만드는 동시에 통합을 이루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당은 사회의 다양한 이익집단을 대표하면서 사회적 균열을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동시에 정당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정치인들보고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정치인들의 주요 업무는 자신의 지지자를 위해 “싸우는 일”이다. 그래서 영어로 정당은 ‘파티(party)’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인이 지지자의 이익만 우선한다면 정치권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 될 것이다. 정치인은 지지자의 이익과 함께 국가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인의 언어는 칼보다 날카로울 수 있지만, 결코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막말·폭언 정치’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영국에선 “거짓말” 외쳐도 퇴장감…‘다름’ 인정하고 정책역량 키워야 
英의회, 멍청이·겁쟁이·배신자 등 ‘非의회적 언어’로 규정 강력 제재…회의 방해하면 퇴장·직무정지 조치…美, 인신모욕발언 금지…거부땐 징계 제도·문화 조화 이루며 품격 갖춰…韓, 국회법 등에 발언 규범 있지만 의장 제도적권한 제대로 행사 못해…“규정 정비…상대 존중하는 행동 필요”

“하원의사규칙 43조에 따라 저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존경하는 의원님께서는 오늘 남은 의사일정 동안 의회에서 즉시 퇴장할 것을 명령합니다.” 

2016년 존 버커우 당시 영국 하원의장은 노동당 데니스 스키너 하원의원을 퇴장시켰다. 스키너 의원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사상 최대 탈세 의혹 폭로 문건인 ‘파나마 페이퍼스’ 연루설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 도중 그를 ‘교활한(dodgy) 데이브’라고 몰아세웠다. 버커우 의장의 발언 취소 요청에도 스키너 의원은 “누구보다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라며 “나는 그를 여전히 교활한 데이브라고 부르겠다”고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버커우 의장이 ‘의장의 지시에 계속해서 불복하는 의원에게 회의 당일 영내에서 퇴장을 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영국 하원의사규칙 제43조를 적용한 것이다.

●제도·문화 조화 이룬 英·美 의회

10월17일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보고서 「국회의원의 말; 언어의 품격」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멍청이·거짓말쟁이·겁쟁이·배신자와 같은 단어를 ‘비(非)의회적인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의원이 토론 중이거나 본회의 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의장은 원내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규범 위반 수위에 따라 본회의장 퇴장, 의회 영내 퇴장, 해당 의원에 대한 직무정지 표결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하원의장의 거듭된 발언철회 지시를 거부한 노동당 폴 플린 의원은 5일간 직무정지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특히 직무정지 표결을 할 때에는 의장은 의원 이름을 부르는데, 이 자체가 불명예로 여겨진다. 본래 의장이 의원을 부를 때는 ‘존경하는 (지역구 이름) 의원님’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 이상 직무정지를 받게 되면 별도의 의결이 있을 때까지 의원으로서의 직무가 정지되고, 직무정지 기간 세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미국은 하원 의사규칙 제17장 제1조에 토론 중인 의제와 무관한 발언, 인신 모욕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칙을 어길 경우 의장은 해당 의원에게 주의를 시킨다. 만약 주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표결을 할 수 있는데, 표결 결과가 위반 의원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의원은 발언을 중단해야 하며 견책 또는 다른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또 미 하원은 의장이 연설하거나 의제를 상정할 때 본회의장을 걸어 다니거나 나가는 것을 금지한다.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소란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미국 역시 막말을 부끄러워하는 의회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회 문화는 다시 제도를 개선하는 등 선순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2009년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은 건강보험 개혁과 관련된 연설을 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이야(You lie)”라고 외쳤다. 그러자 같은 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는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며 윌슨 의원을 비판했다. 윌슨 의원은 그날 밤 사과문을 발표했고, 하원은 윌슨 의원에게 공개비판의 징계를 결정했다. 이후 의사운영위원회는 하원 규칙 매뉴얼 370조에 의회 내 허용 가능한 발언과 불가능한 발언을 명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추가하며 규칙을 강화했다.
 
 ●제도 무용지물 한국 국회…“보완해야” 

한국도 국회법,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국회의원 윤리강령 등에 의원의 발언 규범을 마련해 두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의장은 규정을 어기고 회의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의원에게 경고나 제지를 할 수 있고, 따르지 않는 경우 당일 회의에서 발언금지나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국회에서 의장이 특정 의원에게 공식적으로 경고·제지하거나 발언금지·퇴장을 명령한 선례는 찾기 힘들다.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제도적 권한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역시 유명무실하다. 윤리특위 심사를 거쳐 의원에 대한 징계가 결정된 사안도 제13대 국회 이후 단 1건에 불과하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윤리특위의 윤리자문기구에 권한을 더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윤리자문기구의 자문에 구속력이 없으니 의원들은 그냥 무시해 버린다”며 “윤리 부분에서는 의원들이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자문기구가 내세우는 의견을 100% 따르겠다고 입법화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법에 따라 윤리특위는 징계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기 전에 윤리심사자문위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여권 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한국의 윤리규정 자체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통화에서 “우리 윤리규정은 두 페이지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어겼을 때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미국은 아주 촘촘하게 돼 있어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거기다 어겼을 적에는 바로 제재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제대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국회의장이 퇴장을 명령했을 때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줄 것인지 등의 규정이 세세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문화 개선·정책 능력 키워야”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국회의원과 대통령 스스로의 자정 노력으로 정치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야권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은 “극단적인 힘의 논리를 벗어나 대통령이 야당을 인정하고 만나고 대화해야 하고, 야당도 여당과 대통령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통령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용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상대를 존중하는 신중한 발언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당이 정책 역량을 키워야 ‘막말 정치’를 끝낼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당은 자신들의 핵심적인 정책을 가지고 다투면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시적인 언어를 가지고 공격함으로써 지지자들을 동원하려고 하는 그런 행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책 능력이 갖춰져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서로 이야기 나누되 차이를 견뎌내자”…갈등·위기 속에서 통합 외친 국가지도자들

시대를 넘어 회자되는 지도자의 명연설은 공통적으로 국가적 위기, 비극, 갈등 상황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의 2011년 1월 애리조나주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 연설이 대표적이다. 6명이 사망한 당시 사건에서 현역 하원의원이 총격을 당하며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격렬한 총기 규제 논쟁이 벌어지면서 사회가 양분되자 “이 비극을 서로를 등지게 하기 위한 또 다른 기회로 사용하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연설을 했다.

그는 사건 현장을 방문한 뒤 애리조나대에서 한 연설에서 “여러분의 가슴에 갑작스럽게 생긴 구멍을 메워 줄 그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다”면서도 “우리가 이 문제들을 이야기할 때, 서로 겸손함으로 대하자”, “서로에 대한 공감력을 키우자”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고별연설에서도 통합을 강조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지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외치자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아니다”라며 “부시 대통령이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에게 최선을 다해 가능한 한 가장 친절한 권력 이양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역시 2021년 10월 행한 재임 중 마지막 연설에서 서독과 동독의 통합은 아직 미완성 상태라며 “우리는 만날 채비를 갖추고, 서로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되 차이를 견뎌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력과 경험,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공황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지도자가 강한 어조로 극복 의지를 밝히며 국력을 결집한 연설이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내각을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1940년 5월 “나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다”는 취임 연설로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밝혔다. 외환위기 속에서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취임 연설에서 “우리 모두는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결정치’ 키우는 고성·야유·손피켓 등 없앤다
 여야 원내대표 신사협정 합의…본회의·상임위 회의 등 적용…“제재없어 제도적 개선 필요”

임기를 6개월여 앞둔 21대 국회가 상대 당을 향한 고성·야유 등을 멈추기로 하면서 미미하지만 ‘의회정치 복원’에 한 걸음을 내딛었다. 21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모욕·욕설·인신공격·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출된 징계안이 가장 많은 국회라는 오명(汚名)을 썼고, 여야(與野) 대표 연설이나 대정부질문 등에서도 숱한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10월24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여야가) 본회의장에서 고성이나 야유를 하지 않는 것도 합의했다”면서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 피켓을 소지하고 부착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또 윤 원내대표는 “국민들께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여야가 지나치게 정쟁(政爭)에 매몰돼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노력들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함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이날 회의에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막말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면서 “대통령의 시정연설, 여야 교섭단체 대표 연설 시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이 별도의 발언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여야가 이에 대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여야가 입장이 바뀔 때마다 손피켓을 들고 들어가고, 그로 인한 회의 파행이 반복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회의장 안에는 손피켓을 들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합의가 실제로도 잘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는 여야 원내 지도부 간의 합의 수준에 그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당장 10월31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거나 별도의 발언을 하지 않을지도 주목된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도 (합의는) 계속 유효하다”며 “제도화라는 건 법으로 규정으로 만들 수도 없고, 서로 협의된 것이니 앞으로 상임위원회 활동이나 본회의가 열릴 때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도 향후 의원총회 등을 거쳐 이 같은 취지를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현행 국회의원 윤리규정은) 어겼을 때 어떻게 할지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문화 차원의 접근 등) 그런 식으로 따지면 끝이 없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제대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처럼 보다 촘촘하게 규정을 만들고, 유명무실한 현행 국회윤리특별위원회를 국회의원이 개입할 수 없는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신사협정 통해 ‘정치 회복’ 첫발…‘보여주기식 협치’ 회의적 시각도
극단적 정쟁에 정치 혐오만 부채질 “한국정치 악순환 끊을 자구책 의미”…2024년 총선 겨냥 ‘반짝 쇄신’ 우려에 “여야 구두 합의 그쳐 한계” 지적도

국회 회의장에서의 고성과 막말, 피켓 게시를 근절하기로 한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정치 회복의 첫발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도한 정쟁이 지지층을 양 극단으로 나누고, 양극화된 지지층이 다시 극한 정쟁을 부추기는 한국 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자구책이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2024년 총선을 겨냥한 ‘매표용(買票用) 쇄신’에 머물지 않기 위해선 제도 개선과 함께 정치인의 언행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정치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고성·막말 근절 합의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10월24일 각 당의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국회 회의장 내 막말과 고성, 손 피켓을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한목소리로 밝혔다. 여야가 강대강으로 대치하며 ‘정치 혐오’를 양산하고, 반복해서 터지는 상임위원회 파행 사태로 비판이 커진 가운데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자정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21대 국회는 상대 당 의원을 향해 고성을 지르거나 막말을 하는 의원들의 행태가 반복되면서 정쟁에만 몰두한다는 오명을 받았다. 지난 6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대변인”, “땅 대표”, “거짓말쟁이”라고 야유한 게 대표적이다. 같은 달 민주당 이재명 대표 연설 때도 여당 의석에서 “죄를 지었으니까 그렇지”, “돈봉투를 안 받았어야지” 등의 비난이 나왔다.

최근에는 여야 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피케팅을 벌여 회의가 파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야당 의원들이 “부적격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임명 철회하라”는 피켓을 좌석에 부착해 여당 의원들이 퇴장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때는 여야 모두 피켓을 내걸면서 파행됐다.
 
 ●대치 정국 속에서 지켜질까

이같은 상황에서 여야가 내놓은 자구책을 두고 대결 정치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실종된 여야 협치의 공간을 되살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여야가 2024년 총선을 겨냥해 ‘보여주기식 쇄신’을 하는 것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원내대표들의 구두(口頭) 합의에 그칠 뿐이라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상대 당 공세에 집중하는 여야의 행태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11월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치 국면은 심화할 전망이다. 야 3당의 주도 하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특검) 표결이 12월에 예정돼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안이 대통령 시정연설과 여야 교섭단체 연설에서의 방해 행위만 금지해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원들의 막말과 고성은 대정부질문이나 상임위원회 등 의사일정 전반에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英·美처럼 제재 가해야

여야가 정치개혁에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선 제도 개선과 성숙한 정치 문화 정착 같은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의회처럼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국회 전체가 나서 제재를 가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멍청이·거짓말쟁이·겁쟁이·배신자와 같은 단어를 ‘비의회적인 언어’로 규정하며 언급을 금지하고 있다. 회의 진행 중에는 소음을 내거나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기는 의원에게 의장은 발언철회 지시, 의회 영내 퇴장, 직무정지 표결 등을 명할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영국 노동당 폴 플린 전 의원은 본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이 의회에 거짓말하고 있다”고 발언했는데, 하원의장의 거듭된 발언철회 지시를 거부하면서 5일간의 직무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미국 의회에도 지나친 발언은 삼가야 한다는 초당적인 합의가 있다. 2009년 공화당 지도부는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이야”라고 외친 자당 조 윌슨 의원에게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즉각 사과하게 했다. 이후 하원은 “의회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동료 의원들에게 불명예를 안긴 윌슨 의원의 행동을 비난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문가 제언 “자체징계안 등 개혁진정성 보여야…정치인 언행도 엄격한 잣대 필요” 

전문가들은 ‘고성·손피켓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이번 여야 신사협정을 늦었지만 의미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여야가 이번 합의의 싹을 잘 키워가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다만 2024년 총선을 의식한 깜짝 쇼에 그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진작 했어야 할 일”이라며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 물리적 충돌은 줄었지만 진영 간의 대립이 심해지다 보니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앞장서서 그걸 부추기는 폭언 등의 행태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현 정치평론가도 “여야가 토론해야 하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고성이나 피켓 때문에 감정싸움이 일어나고 회의가 파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걸 없애는 건 의미가 있는 좋은 시도”라고 평가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시작한 정쟁 현수막 철거 등에 진정성이 있다기보단 여야가 2024년 총선을 겨냥한 ‘보여주기식 쇄신’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예년보다 한두 달 빠를 뿐 총선에서 중도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국감장에서 고성을 안 지른다고 갈등이 사라진다고 할 순 없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일시적인 쇄신책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 교수는 “국회 내에서의 언어적인 폭력과 국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부분에 대해 강력하게 징계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또 (의원들의 징계안을 심의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외부 전문가 의견에 상당한 구속력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막말이나 자극적인 표현을 통한 정쟁을 정치인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문화를 정착하는 일이 제도 개선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미 국회법에는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이 회의장의 질서를 어지럽힌 의원을 퇴장시키고, 윤리특위를 거쳐 모욕성 발언을 한 의원을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조항이 작동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의원들의 언행에 엄격한 잣대를 대는 정치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정치인들 스스로 본인들의 행태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고 거기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자신들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야권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은 “당장 법과 제도만 고쳐서 되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민주적인 소양과 자질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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