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하려 집 샀는데 돌연 전세 연장…“새 집주인 잔금납부 의무없다”
아파트 계약후 세입자가 돌연 갱신청구권 행사…잔금미지급 두고 소송…대법원, 매수인 손들어
임대차 3법 국회 통과(2020년 7월30일) 후 아파트 가격이 치솟던 2021년 1월에 A씨는 인천의 한 아파트를 11억 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A씨(매수인)가 원래 집주인(매도인) B씨와 맺은 계약 내용은 이러하다.
이 아파트에는 세입자 C씨가 살고 있었는데 ▲2021년 4월22일 매수인 A씨가 잔금 1억9000만 원을 치르면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주고 ▲일단은 A씨가 보증금(5억 원)을 매매대금으로 승계하며 ▲세입자 C씨의 전세계약 기간이 10월 끝나는 점을 감안해 12월6일에는 A씨가 입주할 수 있도록 집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잔금을 치른 지 8개월 후에 A씨가 입주하기로 한 것은, C씨가 개정 임대차 3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A씨와 B씨는 공인중개사를 끼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12월6일 아파트를 명도(비워줌)한다는 내용을 C씨로부터 확인받았다"는 중개 대상물 확인 설명서까지 작성했다.
문제는 세입자 C씨가 잔금지급일 이틀 전인 4월20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터졌다. 매수인 A씨는 매도인 B씨가 '전세계약 기간 연장으로 인한 입주 불능' 상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잔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B씨는 잔금을 주지 않으면 아파트 소유권도 넘겨줄 수 없다고 맞섰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소송을 제기했고, B씨는 매매계약을 해제했다.
이 소송에 관해 법원은 어떤 결론을 냈을까. 1심은 매수인에 유리하게 판단했다. A씨가 잔금을 지급하면 B씨가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주라고 한 것이다. C씨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더라도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아파트를 양도할 의무는 B씨에게 있으므로, B씨의 매매계약 파기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2심은 이를 뒤집었다. A씨가 보증금을 포함시킨 상태(임대차 계약 승계)로 아파트를 넘겨받은 것이므로 잔금 미지급도 부당하다고 봤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C씨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인한 입주 문제는 A씨가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준 원심판결은 잘못이라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가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B씨가 기존 임차인(C씨)과의 계약을 마무리하고 A씨에게 아파트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매매계약에 따르면 B씨의 소유권 이전 등기절차에 협력 의무뿐 아니라 부동산 인도일과 명도일까지 정해져 있다"며 "B씨가 잔금 지급 등과 함께 아파트를 이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게 계약 내용과 상식 등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잔금을 안 준 것에 정당성도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C씨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때문에 B씨가 아파트를 인도할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겼다"며 "A씨에게 잔금을 지급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수인이 아파트를 거주 가능한 상태로 인도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도인이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이라며 "다만 A씨가 실제 소유권을 이전 받기 위해선 잔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입자에게 7000만 원 돌려줘야 갱신"…빌라 전세 초토화 직전
1월1일부터 전세보증 강화…갱신 뒤 보증 전세가율 90% "수천만 원씩 돌려줘야 가능"
2024년부터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도 강화된 전세보증 기준이 적용된다. 빌라 집주인들은 초비상에 걸렸다. 많게는 수천만 원씩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7000만 원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1월1일 이후 전세계약을 갱신한 전세금반환보증 신청 건에 대해서도 전세가율 90%를 적용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2023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예방 대책에 따른 후속조치다.
당시 정부는 무갭투자를 막겠다며 전세보증 기준을 대폭 높였다. 빌라 시세를 계산할 때 일부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공시가 140%'를 사용하도록 하고, 전세금반환보증 대상을 기존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낮춘 게 골자다. 2023년까진 신규 전세 계약 때만 새 기준을 적용했지만, 올해 2024년부턴 갱신 뒤에도 전세보증을 유지하려면 전세가율 90%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전세사기 고리로 활용된 빌라는 정부의 전세보증이 절대적이다. 보증 가입이 안 되면 세입자를 들이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빌라 시세를 매길 때 공시가를 1순위로 활용하도록 제도를 바꾼 탓에 현재 빌라 전세시장에선 전세보증 기준이 시장 가격으로 굳어졌다.
신규 빌라전세금은 거의 '공시가X126%(공시가 140%X전세가율 90%)' 값에 수렴한다. 2023년까진 전세 갱신 땐 전세보증 기준이 공시가 140%여서 다소 느슨했지만, 2024년부턴 '공시가X126%'로 낮춰야 보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2022년 2월 공시가(2억7200만 원)X140%에 맞춰 3억8000만 원에 전세계약한 집주인은 당장 1월 세입자 요구로 계약을 갱신할 경우 세입자에게 7000만 원 가까이 돌려줘야 전세보증을 유지할 수 있다. 2023년 이 빌라의 공시가격은 9.9% 내린 2억4500만 원. 여기에 전세가율 90%를 곱하면 전세보증 가능선이 3억800만 원으로 내려간 데 따른 것이다.
●"빌라 전세시장 초토화 직전"
4월 빌라 공시가격이 확정되면 파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빌라 매매가격(서울)이 2.8% 하락(전국 -2.2%)한 만큼 공시가 추가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는 4월 이후 갱신하는 집주인으로선 역전세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빌라 전세시장은 거의 초토화 직전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1월1일 기준 네이버 부동산 매물을 보면 화곡동에 빌라 매물이 2596건으로 가장 많고 월세(1,175건), 전세(933건) 순으로 전세 물건이 가장 적다. 1, 2년 전만 해도 전세가 넘쳐났지만 최근엔 전세 기피 등으로 수요가 줄자 오히려 빌라를 처분하려는 집주인이 급증하고 있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공시가 기반의 전세보증 기준 강화로 정부가 전세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며 "올해 공시가 하락과 맞물려 갱신을 맞는 빌라 집주인은 자금 마련에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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