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鏡칼럼 – 윤석열의 길과 한동훈의 길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은 피할 없지만 어떻게 슬기롭게 푸느냐가 관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은 묘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걸어온 길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길과 한동훈의 길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다 알다시피 윤석열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 한마디에 그의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원칙에 충실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 윤석열은 국민에 강렬한 인상을 새긴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한동훈도 “맹종한 적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조선 제일 검사 이미지가 국민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게다가 그는 군법무관 시절 중위 계급으로 중령 계급의 고위급을 구속하는 강단을 보인 전력도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동훈은 윤석열의 길을 그대로 밟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윤석열의 길과 한동훈의 길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한동훈이 윤석열의 길을 간다면 필패(必敗)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라는 프레임 씌우기에 열중이었다. 민주당에선 이른바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을 강조했고, 한 의원은 “이거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래서 저희는 감사하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나땡’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한 위원장이 검사 시절 윤 대통령의 직계였다는 점, 윤석열 정부 첫 법무부 장관에 발탁된 이래 사실상 2인자로 인식되어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민주당이 바라는 대로 ‘한나땡’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과연 민주당의 바람이 원하는 그대로 될까 하는 것이다. 한동훈의 길이 윤석열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이라면 민주당의 기대는 무산되고 만다. 어쩌면 민주당도 그걸 우려하고 있는지 모른다. 민주당이 ‘한나땡’을 외치는 것도 사실은 그런 우려의 반증일 수 있다.
그런데 한동훈은 윤석열과 같은듯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외모에서 풍기는 것부터가 그렇다. 윤석열이 무인(武人) 이미지라면 한동훈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선비 이미지다. 윤석열이 수수한 애주가 스타일이라면 한동훈은 반듯하고 빈틈없는 스타일이다. 한동훈은 술도 마시지 않는다.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국무위원으로서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나가떨어지게 만든 그의 언변과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에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자로 잰 듯이 논리정연하게 발언한다.
20년간 동고동락하며 무한 신뢰…갈등 봉합했지만 불씨는 남아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3년. 검찰에서 영광과 시련을 함께하며 두 사람은 사선(死線)을 뛰어넘은 전우이자 동지가 됐다.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믿음은 초대 법무부 장관 인선으로 이어졌다. 21년간의 신뢰는 지난 12월26일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대응 방식을 놓고 26일 만에 두 사람은 파열음을 냈다. 윤 대통령은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느냐”는 심정까지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자신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했다는 것이다.
김 여사의 명품백 논란은 여권 전체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악성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충 뭉개고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 연거푸 승리했음에도 세 번이나 비대위를 꾸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악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세 번째 비대위 체제마저 무너진다면 그 끝은 낭떠러지일 것이다. 가뜩이나 힘을 합쳐도 어려운 형국인데, 지도부 내분이 불거졌으니 설상가상이다.
이번 논란은 한 위원장 등장 때 최대 과제로 여겨졌던 수직적 당정(黨政) 관계가 교정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계속 여당 대표와 불화를 빚었다.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했고, 나경원 전 의원을 압박해 대표 경선 출마를 포기하게 했다. 지난 연말 김기현 전 대표가 물러날 때에도 파열음이 나왔다. 이번에 당정관계를 바라보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비민주적 인식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요구 파문 이틀만에 전격적으로 만나 당정 갈등을 봉합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정면충돌 양상을 빚은 지 이틀 만인 1월23일 봉합의 장면을 연출해 냈다. 두 사람은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대면했고, 서울로 오는 전용열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며 고개 숙였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 원인인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의 해법을 두고 양측 갈등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사퇴 압박은 김 여사 리스크 해법에 대한 이견을 본질로 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기본적으로 ‘몰카 공작’이며 김 여사가 피해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에 있어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면서 대통령실에서 사퇴 압박을 가한 김경율 비대위원과 인식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국정과제를 완수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눈앞에 다가온 4월 총선을 치르기 위해 민심과 여론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에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한 위원장은 1월22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자신의 정해진 임기를 강조했다. ‘홀로서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동훈은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윤석열의 아바타가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을 존중하면서 윤석열을 뛰어넘는 것, 그게 한동훈의 길이다. 그건 국민의힘이 여당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여당의 대표인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지만, 한 위원장은 떠오르는 ‘미래 권력’이다. 중도 확장성은 검증 안 됐지만, 보수표 결집에 한 위원장은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환호를 받으며 여권 내 비중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역사가 말해 주지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은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양측이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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