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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4년02월02일 08시30분 ]
 水鏡칼럼- ‘명량’은 이순신의 勇將, ‘한산’은 智將의 모습 드러내(下)
   김한민 감독 “대의 위해 싸운 이순신은 전쟁 완전히 끝내려고 싸운 名將”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영화 ‘명량’의 개요와 스토리 

영화 ‘명량’은 2014년 개봉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한국 영화다. 감독은 ‘최종병기 활’을 연출한 김한민. 원작은 박은우의 소설 ‘명량’이며, 개봉 전 영화를 소설로 옮겨 각본 전철홍, 김한민, 지은이 김호경의 ‘명량’이 출판되었다. 총관객 수 1761만 6141명으로, 역대 한국 영화시장 관객 수 1위 기록을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으며,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주연 배우로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에 조연들도 이정현, 진구, 김명곤 같은 연기력과 인지도를 갖춘 중견배우가 대거 캐스팅됐다. 3부작 중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용장(勇將)을, ‘한산: 용의 출현’은 지장(智將)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이다.

 ●프롤로그

음산한 음악과 함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조선 선조(宣祖) 30년(1597:정유년)에 왜군이 재차 조선에 침입해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자막이 뜨고,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고 한양으로 압송, 고문당했다는 자막이 뜨며 이순신이 고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칠천량(漆川梁)에서, 이순신을 모함하고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랐던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거제도 앞바다 칠천량에서 궤멸당하고 왜군이 임진년 이후 처음으로 전라도 땅을 휩쓸며 남원성과 전주성을 함락시켜 다시 한양으로 북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내용의 자막이 뜬다. 

이후 가까스로 고문에서 살아남아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게 경상·전라·충청의 삼도 수군을 통솔하게 하기 위해서 둔 군직. 통제사)로 재임명되어 진주-구례-순천-보성 땅을 거치면서 무기와 군사를 수습하려 애쓰다 장흥 땅 회룡포(回龍浦)에서 수군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칠천량에서 건재한 판옥선 12척을 인수하고 남해안 서쪽 끝 진도 벽파진(碧波津)에 진을 쳤다는 자막이 뜬다. 하지만 불과 50리 밖의 해남 어란진(於蘭鎭)에서는 300척이 넘는 왜군 전선(戰船)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는 자막이 뜨며 ‘명량’의 타이틀이 나온다.
                 
 ●결전의 날 이전

진도 벽파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재임명된지 12일이 지난 후, 회의실에서 이순신은 그저 눈만 감은 채 입을 닫고 있고 다른 장수들 또한 눈치만 보면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자 그래, 언제 합류하시렵니까?"라고 묻자 이순신이 눈을 뜬다.

“뭘 말하는 거냐”고 묻는 이순신에게 배설은 "이번 교지에 상감께서 육군에 합류하라고 했으니 언제 합류할지를 여쭙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이순신은 당연히 수군을 파할 생각이 없었기에 "교지에 그리 적혀있더냐"고 말하자 배설은 잠시 무안하여 웃지만 곧 “적선이 200척 넘고 탈영병들도 속출하고 있다”며 당장 오늘 밤에라도 기습할지 모르는데 대규모 적군을 불과 50리 앞에 두고 도대체 어떤 방진을 짤 계획이냐고 묻는다.


그럼에도 이순신이 대답하지 않자 옆 장수들에게 "이 싸움이 승산이 있냐"고 물으며 장수들에게 "통제공을 향해 충언을 아끼지 말라"고 다그친다. 이후 계속해서 "솔직히 통제공께서는 지금 건조되고 있는 구선(龜船: 거북선) 1척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는 상황 아니냐"고 독설을 내뱇는다.

이에 보다 못한 거제현령 안위가 “통제공께 말씀이 좀 지나치시다”고 하자 바로 발끈해서 "내가 네놈 직속상관이니까 주둥아리 닥치라“며 말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배설이 칼을 빼들려고 하자 이순신이 제지한다. 배설은 계속해서 "칠천량에서 조선수군 1만이 도륙당했다"며 "정녕 남은 수군의 종자들까지 박멸내려는 거냐"고 하지만 이순신은 ”회의는 이만 됐다“며 나가보라고 한다.

결국 배설은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이순신을 도와 종군 중인 이순신의 장남이자 호위무사격인 이회가 배설을 제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신경질을 내며 나가버리고 이순신은 결국 한숨을 내쉰다.

한편 해남 어란진 왜군진영, 왜(倭) 수군 총대장인 도도 다카도라(藤堂高虎)와 가토 요시아키 (加藤嘉明)가 전투 준비 중인 부두를 시찰하고 있다. 도도와 가토는 “조선왕을 잡는 영광을 고니시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며 대화를 나누다가 “이번에 관백(関白 칸파쿠: 정무를 총괄하는 일본의 관직. 율령에는 규정돼 있지 않은 영외관令外官으로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조정대신 중에서 사실상 최고위직이었음. 경칭은 전하(殿下 덴카)로 여기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칭) 전하께서 이순신을 무찌르기 위해 새 장수를 보내온다"며 그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진도 벽파진에 정박 중인 조선 수군 대장선에서 이순신은 임금 선조가 보낸 교지를 읽게 된다. 적은 수와 고단한 군대로는 적의 대군을 감당키 어려울 터이니 수군을 파하고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육군에 합류하여 싸우라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은 교지를 읽다가 지난날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각혈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들판, 칠천량에서 포로로 잡힌 조선 수군 병졸들과 격군(노잡이)들이 밧줄로 포박된 채 단체로 죽어있다. 아직 살아남은 격군 포로들과 포로로 잡힌 백성들은 두려움에 떠는데 포로로 잡혀있던 한 군관이 왜군 조총병들에게 둘러싸여 칼을 잡은 채 쓰러져 힘겨워하고 있다.

조총병들은 사격 대열을 만들어 그를 위협한다. 그는 임진년 때부터 왜란 6년 동안 이순신을 보좌한 대장선 차군관 배홍석이었다. 배홍석은 저항 중 입은 상처로 각혈을 하던 중에 옆을 돌아보는데 포로로 잡힌 백성들 틈에 그의 아들 배수봉이 선비 출신 포로인 김중걸과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수봉은 눈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놀라 뛰쳐나가려 하지만 중걸은 그러면 틀림없이 수봉도 함께 죽을 것임을 알았기에 수봉의 입을 막고 혼신을 다해 말린다. 곧 이 포로 처분 현장의 주인공이자 다이묘(大名)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말을 탄 채 부하 구로다와 함께 배홍석 앞에 서고 홍석은 다시금 일어나며 기필코 네놈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며 돌진한다. 와키자카는 이에 구로다에게 눈짓을 보내고 구로다도 칼을 빼들고 배홍석에게 달려간다.

둘이서 칼을 맞부딪치려고 할 때 어디선가 조총 격발 소리와 함께 총탄이 배홍석의 이마 정중앙을 관통해버린다. 배홍석은 그대로 죽었고 수봉과 중걸은 그대로 주저앉는다.

당황한 것은 와키자카와 구로다도 마찬가지. 그와 동시에 갈대밭 속에서 검객복을 입은 누군가가 방금 쏜 조총을 부관에게 주고 걸어 나온다. 그리고 이 검객의 다이묘이자 일본 에히메 현(愛媛県: 일본 시코쿠 북서부에 있는 현, 현청 소재지는 마쓰야마시) 등지에서 악명을 떨치던 해적이었다가 용병으로 고용된 구루시마 미치후사(来島通総)가 엄청난 포스를 내뿜으면서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와키자카의 군사들 쪽으로 이동해온다.

와키자카는 잔뜩 경계심을 느끼면서 그와 대면하고 구루시마는 "총을 쏜 건 이해하라. 지나가다가 안타까워 그리한 것"이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에 수봉은 슬피 울고 그런 그를 항왜(抗倭)군사인 준사는 슬프게 쳐다보다가 구루지마의 행렬을 따라간다.

같은 시각, 진도 벽파진에서는 거북선의 상판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거북선 제조현장을 감독하던 이순신과 그의 군관 송희립은 탐망꾼 임준영에게 왜군의 동향을 보고받는다. 임준영은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자는 죽여서 코를 베고 연습삼아 아이들을 조총으로 쏴죽이고 있다“며 ”내가 들은 바로는 전투 개시 전에 주둔지를 정리하는 작업인 주둔지 소개(疏開)중인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한다.

더군다나 임준영이 2만 5000에 달하는 왜의 별동대 육군이 왜의 수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주성 쪽에서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보고하자 이순신은 ”이대로 두면 우리 수군이 뚫려 한양이 쑥대밭이 되겠다“며 임준영에게 전갈을 쥐여주고 이를 준사에게 전하여 꼭 답을 받아오라고 한다.

다시 적진으로 침투하려는 임준영에게 6년 전 왜군 진영에 기생으로 위장해 들어갔다가 왜군에게 잡혀 혀를 스스로 깨물어 벙어리가 된 여인이자 아내인 정씨(정보름)가 달려와 부적을 건네준다. 임준영은 ”왔다갔다 한두 번도 아닌데“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부적을 받고 정씨에게 ”몸 간수 잘하라“고 말한다.

합천에 있는 도원수 권율의 조선 육군 진영. 나대용은 장군부 막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순간, 도원수 권율이 갑옷으로 무장한 채 부장들을 대동하고 장군부 안으로 들어온다. 권율은 나대용을 만나게 되는데 ”통제공이 또 명을 어기겠다는 것인가. 상감의 명을 다시 어긴다면 통제공의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고작 12척의 전선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빨리 육군으로 들어오라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나대용 또한 지지 않고 ”남원성과 전주성이 함락되었다. 놈들의 지상군이 북상하는데 동시에 적의 수군이 남해를 거쳐 서해를 돌아 바로 한양으로 진격하면 그땐 어찌 되겠는가. 고작 12척의 전선(戰船)이 육군에 무슨 힘이 된다고 합류하라고 하는가“라며 응수한다. 이에 권율은 ”말장난하지 마라. 통제공은 지금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만 나대용이 ”통제공의 몸을 그리 만든 것이 누구냐?“고 하자 권율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이쪽 사정도 좀 생각해라.

울산 왜성의 그 악랄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지금 코앞에 들이닥쳤다. 병졸 한 명, 군마 한 필이 절실한 형국이다“며 끝까지 입장을 고수한다. 그럼에도 결국 나대용이 뜻을 꺾지 않자 항명이라고 말하며 부장들에게 나대용을 옥에 가두라고 명한다. 나대용은 끌려가면서도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라고 ”통제공에 전하라“고 하며 외친다.
                        
해남 어란진(於蘭鎭)에서 구루시마 미치후사(来島通総)는 자신에게 칼을 빼 들면서 경계하는 왜 정규 수군 부관들을 응시하면서 위쪽 단상에 앉아있는 도도에게 ”이게 먼 길을 달려온 손님에게 하는 대접인가“라고 일갈한다. 도도 대신 가토가 ”우리가 작전 회의에 몰입하다 보니 대인을 영접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며 사과하면서도 ”해적왕이시니 어디 한번 묘책을 내보라“며 비꼰다.

구루시마는 오다가 물길을 살폈다며 진도 내해 쪽으로 들어가 아침 일찍 조류를 타고 나아가면 그날 안에 우리 육군에 보급을 마치고 합동으로 한양을 점령할 수 있다며 한양까진 하루 반나절이면 족하다고 간단히 말한다. 이에 그동안 이순신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이순신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며 ”차라리 이순신 몰래 진도 외해로 빠져나가서 한양을 먼저 기습해 점령하고 추후 육군과 함께 다시 합동으로 내려가 이순신을 궤멸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루시마는 오히려 와키자카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를 왜 보냈겠냐고 따져 묻고 관백의 칠본창(七本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곱 장수)으로서 관백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와키자카는 관백의 존함을 함부로 말한 구루시마에게 칼을 빼들지만 가토가 만류한다. 구루시마는 도도에게 다가가 ”이순신은 이 손으로 잡겠다“고 선언하고 ”고니시에게 한양을 먼저 뺐길 생각이냐“고 묻는다. 이에 도도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구루시마를 환영한다.

한편, 밤중에 막사에서 잠을 청하던 이순신은 난데없이 웬 자객의 습격을 받는다. 자객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했지만, 구선(거북선)에 불이 났다는 보고를 듣고 황급히 나가본 이순신은 구선이 전부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병사들이 물동이를 들고 불을 꺼보려고 하지만 이무런 소용이 없고, 구선은 전부 불타 용머리까지 떨어져 나가며 완전 전소됐다.

그 시각, 해안가에서는 안위가 다른 군관들과 함께 바다를 쳐다보고 있고 거기에는 작은 배를 타고 군영을 탈출한 배설이 있었다. 배설은 "모두 살고 싶지 아니하냐", "내가 살 길을 찾았노라"고 비웃으며 군영을 빠져나가지만, 그가 이 사태의 범인임을 안 안위는 활을 꺼내어 그를 향해 쏘고, 신나게 조선 수군을 비웃던 배설의 왼쪽 가슴에 정통으로 직격된다. 배설은 잠시 고통스러워하다 쓰러지고, 다시 그를 쏘려던 안위는 이를 보고 활을 거둔다.
                     
  ●결전의 날 초반

12척 대 330척. 심지어 대장선을 제외한 나머지 함선은 겁을 먹고 전부 뒤로 빠져 있는 상황이며 숫자는 물론이고 조류(潮流)마저도 불리하지만 이순신은 험난한 울돌목의 조류를 이용해 화포를 쏴 최대한 많은 왜선을 격침시킨다. 구루시마의 1군을 화포로 박살 낸 후 2군이 다가오는데, 조류가 너무 거세 화포 조준이 잘 되지 않자 이순신은 닻을 끊고 피섬(현재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해 있는 섬) 쪽으로 빠진다. 조류를 타고 빠르게 진격한 2군이 대장선을 포위하고, 이순신은 조란탄(鳥卵彈)을 사용해 근접한 선두 왜선의 왜적들을 날려버리고 백병전을 개시한다. 

세키부네(関船: 일본에서 138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국시대와 에도시대에 걸쳐 사용했던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는 중소형 군함)들이 대장선을 포위하여 창칼이 난무하는 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지고, 모랄빵(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돼 전투력이 심하게 떨어지거나 통제를 벗어나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상황을 이르는 말로 유사한 통상적, 군사적 용어로 와해가 있음. 반의어로는 사기충천)이 난 한 병사가 갑판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 폭발시킨다.

이순신은 갑판 아래쪽 문을 열고 모든 포를 한쪽에 모아 일제사격으로 왜선을 날려버린 후, 갑판의 왜적 잔당들을 몰살시키며 빠져나오고, 이를 본 조선군과 백성들은 환호한다. 그리고 초요기(招搖旗: 싸움터에서 대장이 부하 장수를 부르거나 지휘하고 호령할 때 사용하던 기)를 올리자 판옥선 두 척(거제현령 안위, 미조항첨사 중군장 김응함)이 전투를 위해 대장선으로 다가온다.
 
 ●결전의 날 중반
조류가 역류(逆流)에서 순류(順流)로 바뀌어 조선군이 유리해진다. 해류가 바뀌며 울돌목 가운데에 회오리가 형성되고, 전황이 조선군에게 유리해진다. 이를 본 구루시마는 ”이순신이 피섬 근처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면서, 저곳은 해류가 잔잔해 포 사격이 용이하다며 저곳을 차지하면 싸움은 끝난다고 한다. 이순신은 초요기를 올려 장수들을 부른다. 
 
구루시마는 회오리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함선들을 돌격시키고, 심복인 저격수를 시켜 초요기를 올리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선군이 방패로 보호해주고 이순신이 포 사격으로 저격수 시야를 방해해서 결국 초요기를 올린다. 분개한 저격수는 이순신을 저격하려고 시도하고, 적당한 저격 타이밍이 온 순간 화살 한 발이 저격수의 눈을 꿰뚫는다.

거제현령 안위가 선봉으로 나서 활로 저격수를 저격한 것이다. 이순신은 안위에게 군법으로 엄히 벌해야 하나 당장 싸움이 급하니 피섬 쪽을 지킬 것을 명령하고 안위는 이에 따라 피섬(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울돌목) 가운데 위치했고, 지금은 녹진관광지에 포함되어 육지와 이어져 있음)방어를 맡는다. 

구루시마는 피섬 쪽을 장악하려고 공격을 집중해 안위의 함선이 위기에 처하고, 이순신의 대장선 쪽으로는 자폭선(自爆船)을 보낸다. 대장선은 계속된 격전으로 포탄이 없는데, 자폭선을 저격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중군장 김응함은 이를 못 보고 있다.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자폭선에 탄 임준영은 몰래 갑판으로 올라가 멀리서 아내에게 조선 수군들이 화공선(火攻船)을 보도록 주의를 끌라고 말한다. 아내를 시작으로 조선 백성들은 다같이 소리 지르며 옷을 흔든다.

아내와 백성들의 절규로 인해 김응함의 함선이 자폭선을 발견해 파괴해버린다. 이에 구루시마는 피섬 쪽으로 향하다가 방향을 바꿔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향한다. 구루시마의 아타케부네(安宅船)가 대장선을 들이받으려는 찰나, 회오리가 격해지며 구루시마의 함대가 전부 회오리에 휘말린다.

세키부네들은 회오리에 휘말려 서로 부딪히며 파괴되기 시작하고, 구루시마의 아타케부네와 이순신의 대장선은 백병전을 벌인다. 구루시마도 월선하려고 하지만, 피섬 쪽을 돌아 들어온 다른 판옥선 두 척이 포격을 시작하여 구루시마의 함대를 수장시키기 시작한다. 구루시마는 휘하 함대에 포격을 가하는 판옥선에 돌격할 것을 지시하지만 모든 배가 회오리에 휘말려 돌격이 불가능해졌다. 

부하가 속히 지원을 요청하라고 하지만 구루시마는 "네놈은 눈치가 없구나. 도와주려면 진작 왔을 것이다"라고 하며 이순신을 직접 죽이기 위해 대장선에 월선한다. 적, 아군 가리지 않고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베거나 밀치며 나아가는 구루시마. 그 앞을 준사가 막아서며 오른손의 칼로 구루시마의 칼을 받아내고 왼손의 칼로 구루시마의 옆구리를 찌른다.

준사를 본 구루시마는 악에 받쳐 "네놈은 열도인이냐, 조선인이냐"고 소리치며 준사를 밀쳐내고 돌격하지만 이내 화살세례를 받고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최후의 발악으로 이순신에게 돌격한 구루시마는 이순신에게 참수당하고 만다.

●결전의 날 후반

구루시마가 참수당하고 목이 대장선에 걸리자 와키자카와 도도의 일본 본대가 참전하는데, 이번에는 대장선의 처절한 투혼을 본 나머지 판옥선들도 모두 전투에 참여하고 물살이 조선 측에 유리하게 바뀐 상황에서 일자진(一字陣: 전투에서 사용하는 진법의 하나로 '一(일)' 자 모양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진형. 일자장사진(一字長蛇陣)·횡렬진(橫列陣)이라고도 함)을 펼친 판옥선들이 충파로 왜선들을 박살낸다.

전쟁 참상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판옥선의 충파를 보며 구선, 즉 거북선이 부활했다며 오열한다. 와키자카는 다 같이 죽겠다는 것이냐며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고, 도도는 출정 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자신이 쓴 글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퇴각명령을 내린다. 화포사격으로 왜선들을 몰아내고 명량해전은 이렇게 조선의 승리로 끝난다.
 
●에필로그

갈대밭을 걷는 이순신 부자(父子)가 클로즈업 된다. 아들 이회는 아버지 이순신에게 묻는다. ”마지막 전투에서 회오리가 다른 왜선을 막아준 것과 백성이 나선 것 중에 어떤 것이 천행(天幸)이었냐“는 질문에 이순신은 대답한다. ”천행은 백성이었다“라고.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한산도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명량의 최종 결말 장면과 다음 작품은 1592년 7월 한산도 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을 암시하고 끝이 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개요와 스토리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2022년 7월27일 개봉한 한국의 역사 영화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의 차기작으로 명량대첩의 5년 전인 한산도대첩을 모티브로 하여, 역사적 사실인 '팩트(Fact)'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Fiction)' 등 두 가지 소재를 조합하여, 액션물 특유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전쟁팩션 영화이므로, 해외판권 독점계약을 위한 사전 심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북미와 유럽,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 전세계 90여개국에서 동시 개봉한 바 있다.

2014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명량’으로 시작된 이순신이 이끄는 전투에 관한 김한민 감독의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로, ‘명량’에 묘사된 명량해전 5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인 한산도대첩을 묘사하고 있다. 2022년 7월27일 아이맥스, 4DX, 스크린X 포맷으로 출시됐다.

전작(前作)에 출연한 배우가 다수 바뀌었다. 도도 다카도라(藤堂高虎)역의 김명곤과 와키자카 부장(구로다) 역의 정제우만 유일하게 배역이 교체되지 않았다.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캐스팅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2021년 크랭크업한 ‘한산: 용의 출현’의 후속작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가 김윤석으로 바뀐다. 이를 보면 스토리상 3부작은 서로 이어지지만, 굳이 특정 배우를 특정 역에 고정시키진 않은 것으로 보이며 세 전투 각각의 상황에 따른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프롤로그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다이묘(大名)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 安治)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보내는 붉은색 글씨로 된 편지를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1592년 음력 7월 낮 부산포 일본군 진영.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부하들을 대동한 채 등장한다. 그 주위로는 조선인 포로들이 물건을 나르고 있고 그곳에 잠입해 있던 임준영이 와키자카가 지나가는 앞에서 물건을 쏟는다. 이를 지켜본 와키자카 사헤에(脇坂左兵衛)가 그 즉시 임준영을 베려고 들지만 이를 와타나베 시치에몬(渡邊七右衛門)이 이를 저지하고 와키자카는 임준영을 지나 패잔병들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던 막사에 다다른다.

패장에게 패전 당시의 상황을 보고받는데, 장수로부터 거북선에 대한 내용을 듣는다. 패장이 거북선을 해저괴물 '복카이센(沐海船)'이라고 표현하면서 두려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두려움은 전염병“이란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뜨고 와키자카 사헤에와 마나베 사마노조(真鍋左馬允)는 칼을 뽑아 패잔병들을 살인멸구(殺人滅口: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나 어떤 사실이 입을 통해 퍼져나가지 않도록 목격자 등의 사람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무협지 등에서 주로 쓰임)한다.

이후 와키자카는 와타나베와 함께 항구에 만신창이로 끌려온 아타케부네(安宅船)로 향한다. 안택선 우현(우측 측면)은 사람보다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충파인가..“라며 중얼거리는 와키자카에게 와타나베는 사천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걸 끌고 왔던 것이라고 말해준다. 와키자카는 고개를 돌려 구멍이 뚫리면서 토막 난 나무 기둥에 박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뽑아낸다.

그것은 손바닥 만한 송곳니였고 와키자카는 이번엔 우현에 구멍 정면을 향한 좌현에 난 사람 몸통만한 또다른 2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와키자카는 다시 우현에 있는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고 점차 바다를 가르는 함선의 소리가 커지면서 그 난전 당시 거북선의 용머리가 안택선의 우현을 부숴버리며 등장한다.

 ●한달 전 사천해전

아타게부네 격실을 뚫고 들어 온 거북선의 용머리는 송곳니에 끼어 버린 나무 기둥을 빼려고 굉음을 일으키고 있었고 일본 병사들은 ”복카이센(沐海船)!“이라며 충격과 공포에 빠진다. 때는 한달 전 사천해전의 현장. 거북선이 적 아타케부네에 충파(沖破)를 시도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충파를 했으니 이제 후진을 해야 하는데 함선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 돌격장 이언량은 창문을 열어 용머리가 낀 참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는 "뒤로 저어라.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며 급히 격군들에게 후진을 명령하고 급히 3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그가 3층에 올라가 만난 이는 유격장 나대용. "용두와 선수 쪽 화포들을 일제히 퍼붓는다. 어서 준비하라.“

나대용은 창문을 열어 꼼짝 않는 용머리를 보고 용머리 화포와 선수(船首) 화포 2문을 사격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는 도중에 왜선들은 접근해오고 있었고, 나대용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용머리의 화포가 폭음을 일으키며 발사한다. 근거리에서 화염과 포탄에 노출된 왜병들은 기절초풍 하며 도망가려고 애를 쓴다. 나대용은 다시 명령을 내리고 용머리는 다시 한번 화염을 일으키지만 송곳니에 박힌 나무 기둥은 양쪽 송곳니에 그대로 걸쳐져 있었고 포탄은 그대로 외벽을 뚫고 지나가버린다. 좌현에 구멍 2개가 이때 생긴 것이었다.

탈출 시도는 허사로 돌아가고 왜선들은 접근해 조총을 사격한다. 다행히 거북선은 실내가 완벽하게 밀폐된 덕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왜군은 대형 조총을 가져와 사격하자 거북선 외벽에 사람 머리만한 구멍이 뚫리며 내부에 승조원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를 노린 한 왜선이 조총을 사격하려던 찰나에 왜선이 폭발하며 왜군 병사들은 쓰러진다.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수군의 판옥선 함대. 판옥선들은 위기에 처한 거북선들을 지키고자 지원사격하며 전장에 재돌입하고 공격당한 구멍을 통해 나대용의 눈에 좌선을 지휘하는 좌수사 장군이 들어온다.

나대용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혼란에 빠진 복도를 지나며 도끼를 빼들고 천장에 놓인 방패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야외로 나오기 무섭게 나대용에게 총알이 쏟아지고 나대용을 향해 사격하던 왜선이 폭발한다. 나대용이 놀라 돌아보자 좌선이 근처까지 와서 포격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나대용은 즉시 일어나 머리가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타케부네(안택선)를 향해 달려간다. 안택선 병사들의 총알을 막아내며 거북선 지붕 끝에 거의 다다르지만, 어느 왜군 장수의 총에 다리를 맞아 쓰러진다.

그 순간 이순신의 화살이 왜군 병사를 맞히고 이순신은 서둘러 화살을 재장전한다. 그러자 나대용을 맞춘 왜군 장수 또한 즉시 조총을 잡아들고 이순신을 향해 조준한다. 이윽고 두 장수의 화살과 총탄이 발사되고 이순신의 왼쪽 어깨에 총탄이 명중해 이순신이 쓰러지며 화면은 페이드 아웃(fade out: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화면이 처음에 밝았다가 차차 어두워지는 장면)된다.

 ●조선수군 진영의 상황

늦은 밤 여수의 전라좌수영 근처 이순신 자택. 이순신은 자신의 방에서 사천에서 입은 왼쪽 어깨를 뻐근해하면서 거북선 설계도를 바라보며 ”구선(龜船, 거북선)...“이란 고민 섞인 말을 흘린다. 이윽고 밖에서 이순신의 부장 송희립이 이순신을 부르며 경상우수영의 경상우수사 원균이 전라좌수영에 도착했다고 보고하자 이순신은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전라좌수영 회의장에 조선 수군의 모든 수군절도사들과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으며 경상우수사 원균은 정운의 부산포 공성 발언에 ”미쳤냐“며 화를 낸다. 정운은 연안에 있는 적들을 부숴 봤자 적들은 건재할 것이며, 승전을 이어가는 상황을 이어 본진인 부산포를 공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자 원균은 어이없어하며 ”시덥잖은 승전 몇 번으로 치기가 넘치는 거냐“며 ”왜군 수괴가 얼마 전 용인 싸움을 왜의 승리로 이끈 자“라고 말한다.

원균은 덧붙여 기습이 장기인 적들을 상대로 이광이 광교산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 기습당해 크게 패했다며 대역죄인으로 의금부로 압송될지도 모르는 판국이라며 호통친다. 이후 전라좌수영에는 조정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하는데, 평양으로 몽진(蒙塵: 머리에 먼지를 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감)했던 선조가 평양마저 버리고 의주로 이동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병사들의 사기까지 떨어지면서 이순신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치를 해전에서 승리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부산포 일본군 진영에 머물고 있는 와키자카와 바다에서 싸울 것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선포한다.

그러나 와키자카가 용인에서 20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5만명이나 되는 근왕군(勤王軍: 임진왜란 때 훈련 없이 농민 등으로 급조된 군대로, 각 지방에 걸성됐믐)을 용인 광교산에서 기습해 대승을 거둔 소식을 이미 접한 터라 장수들은 오히려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고, 이순신 또한 이기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지휘관 회의가 끝난 후 조선 수군 진영에서는 다음에 치를 해전 준비를 위해 하나 둘 재정비를 한다.

한편 전라좌수영에서 이순신은 일본군 포로들을 고문하며 사천에 집결한 의도와 전주성 공격에 대한 사항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조선 말을 꽤 잘하면서 조선을 비웃는 한 일본군이 있었다. 그는 "전주성이 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군대가 부산포에 집결했고, 이 기세로 명나라를 거쳐 인도까지 진격할 것이며, 차라리 목숨 구걸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비웃는다.

이순신은 그 말을 듣고 부채에 그려진 동아시아 지도를 슬쩍 보고는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이순신을 노려보다 이내 벌떡 일어나 들이받고, 당연히 심한 구타를 당한다. 그후 다시 감옥으로 끌려온 그 일본군은 감옥에 갇혀 있는 다른 일본군들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고 그의 목에는 '용머리 장식'이 달린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그 시점은 다시 준사가 구타당하고 있던 때였다. 이순신은 그에게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며 부하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지 말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다른 군관들과 포로들이 물러간 뒤 쓰러져있던 그는 간신히 일어나 이순신에게 다가간다.

이 일본군의 정체는 준사(俊沙). 준사는 이순신과 독대해 대화하면서 ”이 전쟁은 나라 간의 싸움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에 이순신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답하자 그는 자신이 사천해전에서 이순신의 어깨에 총상을 입혔던 것과 자신의 상관은 혼자서 살기 위해 그들을 방패막이로 쓴 반면, 이순신은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 나서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음을 밝힌 뒤, 이순신에게 투항하여 항왜(降倭)가 된다.

이순신은 간밤에 꿈을 꾸는데 바로 함경도의 녹둔도(鹿屯島: 함경북도 선봉군 조산리에서 약 4㎞ 거리에 있는 섬)에서 만호(萬戶: 수군 지휘관)로 재직하던 시절 두만강을 넘어와서 약탈을 저지른 여진족을 기마부대를 이끌고 추격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매서운 눈보라에 도주하던 여진족들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셀 수 없이 많은 화살들이 날아와 이순신을 제외한 기마부대를 전멸시킨다.

이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확인해야만 했던 이순신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느 순간 높고 거대한 성이 나타나 이순신의 앞을 가로막고 수많은 화살들이 다시 날아와 맞기 직전, 꿈에서 깬다. 간밤의 꿈 이야기를 광양현감 어영담에게 털어놓았는데, 어영담은 와키자카의 용인 전투를 언급하며 한양 도성 밖에 나와서 싸우고도 한양 도성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순신은 다수의 판옥선을 이용해 '바다 위의 성'을 만들어 왜적들을 토벌하겠다는 작전을 세우고, 다른 장수들에게도 얘기하지만 오히려 실현하기 어렵다는 얘기만 듣게 된다.
                   
 ●조선과 일본, 양국의 혼돈

조선지도를 쳐다 보면서 생각에 잠긴 와키자카 사헤에(脇坂左兵衛)의 뒤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책사인 군사 구로다 간베에(黒田官兵衛)가 나타나고 둘은 전황(戰況)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와키자카는 구로다에게 조선정벌은 완료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에 더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구로다는 그것이 가토에 관한 것임을 짐작한다.

그 시각 와키자카가 자신의 부하들과 거북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와키자카는 거북선이 왜군을 벌벌 떨게 하는 위용을 떨쳤음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밖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받게 된다. 이후 와키자카는 논의 끝에 와키자카로 하여금 적진에 잠입하여 거북선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순신에 대한 정보를 캐올 것을 지시한다. 이후 와키자카와 그 부하들은 삭발하고 승려로 변장하여 피난민들이 모이는 여수 흥국사에 잠입하는데 그곳에서 일전에 봤던 임준영을 발견하고는 흥미로워한다.

와키자카는 이순신이 학익진(鶴翼陣: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벌인 진법)을 모의로 연출해보는 모습을 절벽 위에서 지켜보며 학익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밤에 조선 수군의 진에 부하들과 잠입하여 진 한쪽과 거북선에 불을 질러 이목을 끌고는 그 틈을 타 감옥에서 준사를 비롯한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준 후 나대용의 연구실에서 거북선의 도면을 입수한 뒤 빠져나가려 한다.

그런 와키자카 앞을 녹도만호 정운이 가로막으며 ”웬 땡중이 살기가 가득한가 했더니 역시 첩자였다“면서 막아서고 둘은 난투극을 벌인다. 정운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와카자카를 몰아 붙이지만 준사가 나타나 방해하는 바람에 막지 못하고 와카자카와 준사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거북선에는 불이 붙었지만 조금 그을렸을 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시 일본군 본진으로 돌아온 와카자카와 준사는 서로 대면하고 준사는 조선 측의 세작(細作: 첩자, 간첩)으로 의심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와키자카의 질문에 현명하게 답변하여 생존한다. 와키자카는 일전에 협력을 요청했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전령을 맞이하나 전령은 고바야카와가 와키자카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달한다.

이에 와키자카는 고바야카와가 도와준다면 확실하게 이순신의 좌수영을 무력화하고 전라도를 장악할 수 있다며, 그로 하여금 히데요시를 기쁘게 해드리자고 고바야카와가 재고해줄 것을 희망하는 뜻을 전하며 거기에 더해 도움의 대가로 전라도를 모두 주겠다는 선언까지 한다. 그 후 바다 쪽에서 함대를 이끌고 가토 요시아키와 구키 요시타카가 도착한다.

새로 도착한 이들을 환영하는 연회 자리. 가운데 구키를 중심으로 우측에 가토, 좌측에 와키자카가 앉아있고 그 앞으로 각각의 부하들이 죽 늘어앉아 기생들로부터 술을 따라 받으며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회의 흥이 무르익을 무렵 고바야카와의 전령이 찾아온다. 전령은 고바야카와가 와키자카의 제안을 수락했으며 언제 출정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고 전한다.

이에 와키자카는 자정이라고 답하자 이에 가토는 격분하며 "이래서 나는 천박한 너와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와키자카에게 칼을 겨눈다. 각각의 부하들도 칼을 뽑아들고 대치하고 있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와키자카는 가토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면서 ”지금이라도 칼을 거둔다면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자신의 뜻인 것뿐만이 아니라 타이코(太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칭하지만 전용은 아님) 전하의 뜻이라며 침착하게 대응하고 구키까지 가토를 만류하자 가토는 결국 칼을 거두고 나가버린다.

한밤중 다시 연회 자리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온 정보름은 병풍 뒤에 숨은 임준영에게 ”나오라“고 말한다. 그와 접선하던 찰나에 정보름이 들어온 문에서는 와키자카와 그 부하들이 나타나서 임준영이 어디까지 다른 첩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창문 쪽에서는 와키자카가 나타나 퇴로인 창문을 닫으면서 정보름에게 그녀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 일본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첩자였다니 유감이라고 말한다.

위기 상황에서 정보름은 임준영이라도 무사히 도망치게 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으로 늘 착용하고 있던 '용머리 장식'이 달린 비녀를 빼들어 와키자카의 왼쪽 어깨를 찌르면서 임준영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니, 임준영은 그 틈을 타 창문을 통해 도주하는 데 성공한다. 

와키자카는 어깨에 꽂힌 비녀를 빼낸 뒤 정보름에게 아는 것을 다 불라고, 다 말할 때까지는 못 죽는다고 협박하지만 정보름은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고 와키자카는 이를 막으려고 했으나 결국 정보름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죽을 죄를 지었다며 사죄하는 부하들에게 와키자카는 정보름을 살려놓으라고 명령한다. 창문으로 도망친 임준영은 해변에서 미리 준비된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하지만, 그를 뒤쫓아온 마나베 사마노조(真鍋左馬允)와 그 부하들이 조총과 불화살을 쏘아대 같이 있던 조력자 2명은 모두 죽고 배마저 못 쓰게 되어 물로 뛰어들어 겨우 도망간다.

한편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으로 충파를 시도하면 움직임이 더 둔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조선 수군 진영에서는 거북선을 개조하기로 한다. 나대용은 이순신에게 거북선의 용머리를 아예 없앨 것을 제안하고, 이순신은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는 ”머리없는 구선이라....“라고 탐탁치 않아 한다. 이후 사헤에가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쳐 달아난 뒤 이순신은 비밀리에 순천에서 새로운 거북선을 건조 중인 나대용을 찾아가 설계도가 도난당한 사실을 말하며, 거북선의 정보가 새어나갔으니 이번 싸움에선 거북선을 쓰지 않을 것임을 그에게 알린다.

 ●7월8일, 결전의 날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 安治)는 자정을 기해 출정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오사카성으로 돌아간 구로다 간베에(黒田官兵衛)가 보낸 서신을 읽는다. 서신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와키자카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며 와키자카로 하여금 명나라의 톈진(天津)으로 상륙하여 명(明)을 칠 것을 명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 신뢰의 증거로서 조선과 명나라의 지도가 그려진 황금 부채를 하사받는다. 

와키자카는 기뻐하며 자신들이 1군의 고니시와 2군의 기요마사보다 먼저 명나라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고 휘하 부하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그 후 이순신의 배가 당포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고는 일본 함대를 견내량(見乃梁: 경남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거제대교의 아래쪽에 위치한 좁은 해협.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의 주요 배경이자, 현재는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걸쳐 있는 곳)에 매복시킨다.

같은 시각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순신을 만나 적들을 찾았냐고 묻고, 이순신이 곧 찾아낼 것이라 답하기가 무섭게 견내량에 왜군이 매복중이라는 정보가 도착한다. 이순신은 견내량은 폭이 좁고 물살이 강하기 때문에 적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싸워야 한다는 방책을 말한다. 이에 원균은 학익진을 거기서 쓰자는 것은 안 될 말이며, 차라리 견내량에 매복해 있는 적들을 돌격해 기습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이순신은 그것이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답하며 그를 막아 세운다. 이순신이 그에게 일본함대를 끌어내 유인해주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원균은 ”나 보고 죽으라는 거냐“면서 이를 거절한다. 이에 물길을 잘 알던 광양현감 어영담이 이 일에 자원한다. 그러자 경상우수군 진영의 이운룡과 이영남 두 장수가 경상도의 물길을 전라 좌수영에게만 맡기는 것은 경상우수영에도 큰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며 어영담과 합류하겠다고 원균에게 허락을 요청한다.

그날 밤,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의 각 장수들의 포지션을 편성하느라 고심한 끝에 학익진도를 완성하고, 나대용에게 따로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전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출정시킨다. 안개가 자욱한 견내량, 와키자카는 중앙 본진에서 이순신의 함대를 기다리고, 좌우에 와타나베 시치에몬(渡邊七右衛門)과 마나베 사마노조(真鍋左馬允)의 함대를 각각 매복시켜 둔다.

이순신의 함대는 첨자진(尖字陣)을 펼치며 한산 앞바다에 주둔하고, 어영담이 이끄는 판옥선 3척을 견내량 내부로 투입하여 적진을 도발한다. 어영담은 "우리의 목적은 적 함대를 한산 앞바다로 끌어내리는 것"임을 주지시키며 함포로 응전하되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고 지시한다. 안개로 인해 와키자카 측에서는 함선 숫자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조총으로 응전만 한다. 그렇게 계속된 대치 속에 적들이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다는 보고를 받고 이순신은 예비해둔 판옥선 몇 척의 추가 투입을 지시한다.

한창 교전중이던 견내량 내 어영담은 탄환과 화약이 떨어지고, 어느새 안개마저 걷혀 함선이 노출된다. 이에 매복하던 시치에몬과 사헤에 함대가 기습을 가하고 어영담은 결국 후퇴를 지시한다.

이를 추격하는 마나베 사마노조(真鍋左馬允)에게 와키자카는 추격금지 신호를 보내 어 명하지만 마나베는 ”견내량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된다“며 자의로 추격을 지속하고, 결국 크기는 작지만 빠르고 숫적으로 우세한 세키부네(安宅船)에 판옥선이 포위당하며 양측은 단병접전(短兵接戰: 창이나 칼 따위의 단병으로 적과 맞부딪쳐 싸움. 백병전)까지 불사하며 치열하게 맞붙는다. 심지어 와키자카가 탑승한 대장선의 함포 공격까지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 마침내 도착한 이운룡의 판옥선 포격에 어영담은 위기에서 벗어나고 전투를 지속하며 견내량 밖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한편, 여전히 와키자카 본대가 움직이지 않자 이순신은 함대를 한산 앞바다 중앙에서 견내량 입구까지 이동시킨다. 이제 조류마저 아군에게 불리하게 바뀐다는 휘하 장수의 말에도, 바로 그것이 자신이 노리는 바라며 명령을 유지한다. 그렇게 조선 함대와 일본 함대는 서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거리에서 대치하게 된다.

어영담함대와 그를 추격하는 마나베 함대는 견내량의 가장 좁은 해협까지 도달하고, 평저선(平底船: 배 밑에 평탄한 저판底板을 깐 평탄한 구조의 선박으로, 우리나라 전통선인 재래식 선박은 이러한 특징을 보임)에다 물길에 밝은 판옥선들은 유유히 해협을 빠져나가지만, 첨저선(尖底船: 길고 좁은 각재 하나만 바닥에 깔고 그것을 뼈대로 외판을 붙여나가는 배)이고 물길도 잘 모르는 세키부네는 암초에 걸려 줄줄이 좌초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그의 세키부네마저 암초에 걸려 휘말리고, 이를 목격한 어영담은 판옥선 특유의 선회력을 살려 노출된 암초까지 유유히 우회하며 함대를 일본 함선들의 측면에 정렬한다. 이윽고 판옥선 측면의 모든 포가 장전과 조준을 완료하고 판옥선함대가 최대 화력으로 공격하자 마나베 함대는 그대로 포탄에 맞아 초토화된다.

그런 마나베 함대를 뒤로 하고 해협을 빠져나가는 조선함대. 해를 보고 좌수영을 노리는 수륙병진(水陸竝進)작전의 육상병력 지휘관 고바야카와가 웅치를 돌파했을 것이라 생각한 와키자카는 한산 앞바다를 향해 본대의 진격을 명령하고, 이에 이순신은 거짓 후퇴와 함께 학익진을 지시하는 신호연(信號鳶: 봉화와 같은 통신수단)을 띄운다. 같은 시각, 신호연을 목격한 어영담은 서둘러 진영에 복귀하려 하지만, 마나베 복수를 노리는 시치에몬함대의 추격을 받는다.


한편 본대에서 한참 뒤처진 원균의 함선을 와키자카가 목격하는데, 비슷한 시각에 시치에몬의 안택선이 원균을 향해 돌격하면서 와키자카에게 추격 의사를 전달하고, 이에 흔쾌히 추격을 허락한다. 이에 겁먹은 원균은 발포 명령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함포를 쏴댄다.  

그 이전 전국시대 때 경험했던 학익진(鶴翼陣: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벌인 진법)을 상대로 승리한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학익진을 기병대의 측면 급습으로 궤멸시킨 것을 회상한 와키자카는 당시 신겐이 이에야스에 맞서 펼쳤던 것과 같은 어린진(魚鱗陣)을 치고, 학이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시치에몬의 돌격에 잡아먹히게 생겼다며 좋아라 한다

왜선이 포격당하고 적막속에서 천천히 고조되는 배경음악(BGM) ‘천행’과 함께 등장한 3층 거북선 두 척은 시치에몬의 세키부네(안택선)을 향해 집중적으로 충각을 가한다. 첫번째 거북선의 충각으로 선수 일부와 왼쪽 노를 모조리 파괴당해 움직일 수 없게 된 시치에몬의 안택선을 향해 2번째 거북선이 부서진 선수 쪽으로 충각(衝角: 선박의 선수와 선미에 장착하여 적 선박과 충돌할 시 상대 선박을 부수는 데 쓰인 무기, 영어로는 Ram)을 가하여 확실하게 침몰시켜버리고 그 과정에서 거북선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시치에몬도 전사한다. 

이후 2척의 거북선은 거침없이 돌격하며 포격과 충각으로 추격하는 선발대 왜선을 모조리 파괴한다. 침몰하는 아타케부네에서 최후의 발악으로 대조총으로 거북선의 측면을 공격하려는 그 순간, 함포가 적중되고 음악이 잠시 끊긴 후 나대용이 지휘하는 신형 2층 거북선이 잔해를 부수고 등장하면서 3척의 거북선이 웅장한 배경음악과 용이 울부짖는 듯한 울림소리와 함께 돌격하며 충각전법으로 닥치는 대로 부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거북선 3척은 무시무시한 포격과 충각을 걸어 일본 함선들을 줄줄이 박살내고 있었지만, 이미 왜군은 빼돌린 설계도로 거북선의 측면이 포격에 취약하다는 약점과 ‘메쿠라부네’(盲船: 장님 배)라는 이름처럼 움직임이 둔하고 충각 이후 용머리가 걸려 움직임이 봉쇄되는 결함을 알고 있었다. 왜군은 사전에 준비한 화포로 거북선의 측면에 집중 포격을 가했고 3층 거북선 두 척은 큰 피해를 입는다. 이를 본 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사헤에는 이순신이 준비한 거북선은 오히려 약점이 될 거라고 비웃는다.

그 순간, 신형 거북선이 포격을 가해오며 돌격해온다. 이 거북선은 기존의 거북선과 달리 전고가 낮아서 왜군이 준비한 화포는 제대로 명중시킬 수 없었다. 거북선은 이내 와키자카의 안택선으로 돌격하고 와카자키는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신형 거북선마저 충각하면 머리가 끼어버릴 것이라 예측하고는 월선 준비를 하지만, 거북선은 예상과 달리 용머리를 선체 내부로 숨기고 그 자리를 두꺼운 문으로 걸어 잠근다.

마치 위험에 처하면 재빠르게 머리를 등딱지 속으로 숨기는 거북과도 같은 모습에 놀라 기겁하는 와카자카. 이윽고 거북선의 매서운 충각이 와카자카의 아타케부네를 덮친다. 충각을 가하고 걸릴 부분도 없는 거북선이 아타게부네에서 벗어나자 방금전까지 거북선을 ”메구라부네(盲船)“라고 부르며 깔보던 사헤에는 초반 미치유키의 패잔병들이 그랬듯이 절로 ”복카이센(沐海船)“을 중얼거리며 두려움에 전율한다.

이윽고 사방에서 왜군 함선들이 거북선을 포위하기 시작하지만 거북선은 용머리와 전함포를 꺼내 사방으로 함포를 일제사격하며 적선들을 격파한다. 사헤에 역시 죽음을 직감한듯 주군인 ”와키자카“를 부르다 화포의 포격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전사한다.

주위의 왜 함선들을 격파한 거북선은 침몰하는 함선들을 뒤로 한 채 유유히 빠져나오고 그 모습에 경악한 와키자카는 그제서야 신형 거북선이 이순신이 숨겨둔 비장의 패였음을 직감한다. 본래 이순신은 애초에 사천해전에서 발견된 결함이 있는 거북선을 투입할 생각이 없었지만, 새로 설계하고 만들어진 거북선은 돌격선 그 이상의 활약을 보일 것이라는 나대용의 설득에 히든카드로 기존 거북선 2척과 신형 거북선 1척을 매복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거북선의 활약으로 위협이 사라진 조선함대는 모두 제 자리를 찾아 학익진을 완성해 간다. 남은 것은 와키자카의 본대. 와키자카는 일점 돌파를 하려는지 어린진(魚鱗陣: 물고기의 비늘이 벌어진 모양으로 치는 진.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중앙부가 적에 접근하여 진출한 진형임)을 갖추고 진형 한중간으로 돌진한다.

200보, 100보가 지나며 점차 줄어드는 거리. 원균은 이순신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분통을 터뜨리기 바빴고, 나대용의 2층 거북선도 사헤에의 아타케부네(안택선)를 격파하느라 미처 와키자카 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여 조선 수군에서도 "구선이 어찌 빠져 나오지 않고...?"라며 우려한다. 나대용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 아닙니까? 그냥 쏘십시오"라고 말하며 포격 개시를 바라고 있었다.

진형마저 풀고 각개전투에 돌입하며 월선(越船)을 준비하고 사실상 맞닿은 50보 거리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이순신은 선회를 지시한다. 그리고 와키자카는 함대의 대형을 풀도록 허락한다. 선회를 시작하는 조선함대를 살펴보며 와키자카는 이순신에게 늦었다고 엄포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것은 왜군이었다. 완성된 학익진은 마치 판옥선으로 성벽을 쌓은 듯했고, 이순신은 발포를 명한다. 이순신은 와키자카의 함대가 도달한 순간을 노리고 있다가 "발포하라"고 명령한다.

포격에 특화한 판옥선 함대가 발사한 교차사격의 가공할 화력에 일본 함선들은 피할 틈도 없이 모조리 격침되고 인명살상에 특화된 조란탄(鳥卵彈)에 병사들까지 쓸려나간다. 일점돌파를 시도한들 세키부네와 판옥선의 극명한 체급 차이로 인해 일본 함대의 돌격은 이미 벽을 세워버린 학익진에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며, 조선함대를 얕본 와키자카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이때 앞서 바다 위의 성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던 원균마저 "바다 위의 성...!"이라 하며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왜선 무리에 같이 있었던 나대용의 2층 거북선에도 실제로 포탄이 몇 발 명중한다. 나대용이 거북선 선수의 창으로 내다보는 장면에서 잘 보면 거북선도 포격을 맞고 내부 이곳저곳에 작은 불이 나는 등 피해를 입어 격군(格軍: 조선 시대 국가에서 관리하고 운항하는 선박에서 사공(선장에 해당함)을 도와 다양한 일들을 처리했음. 조선 후기에는 노군櫓軍, 能櫓軍)들이 진화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게 보이지만 거북선 특유의 떡장갑으로 버텨냈다.

그나마 철갑으로 선체를 도배하여 포격에서 살아남은 와키자카의 기함 텟코센(鉄甲船)은 함수(艦首)를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돌진하여 들이받으려고 하지만, 측면에서 나대용의 신형 거북선이 기습하여 충파를 당해 거북선에 붙잡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사헤에의 아타케부네(안택선)를 급습할 때와는 달리 용머리도 못 넣고 충각을 벌여 용머리가 끼었지만, 초반부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의 용머리가 아타케부네에 껴서 움직이지 못하던 때와는 상황이 반대로 텟코센이 용머리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와키자카는 병사의 조총을 빼앗아 저격을 시도하지만, 이순신의 기함은 반대쪽 함포를 끌고와 텟코센을 조준, 이윽고 양익의 판옥선(板屋船)들도 일제히 선회해 측면 모든 함포를 텟코센에 조준한다.

함대를 전멸시킨 화력이 이제 텟코센 한 척만을 집중포격하게 된 상황. 판옥선들로 둘러쳐진 벽을 바라보며 와키자카는 성을 떠올리고, 도주를 결심하여 배 밖으로 몸을 던지나 이순신이 쏜 화살이 등에 적중한다. 이렇게 다시 한번 이어진 일제사격에 결전 병기와도 같던 텟코센은 그대로 벌집이 되어 한산 앞바다에 수장된다. 전투 직후 연기가 가득찬 거북선에서 나대용이 나와 이언량과 함께 등갑판 위에 앉아서 승전한 함대를 뿌듯하게 바라 본다.

송희립: ”장군, 실로 완벽한 승리입니다.“
이순신: ”아니다. 더 나아가자.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이순신은 완벽한 승리였다는 부하의 보고를 받지만, 위의 대사처럼 지금 전세(戰勢)에선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며, 출정을 거듭한다. 이어지는 해전에서 승리하고 최후엔 부산포해전에서 판옥선 포격이 일본군 본영을 초토화시키는 것으로 영화는 한산도대첩이 마무리된다고 설명한다.

 ●에필로그

모든 전투가 끝난 후, 임준영은 정보름과 만나 함대가 복귀 중인 한산 앞바다를 지켜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593년. 이억기와 함께 한산도의 해변을 거닐던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거제도가 바로 앞이라며 한산(閑山)이란 이름이 참 괜찮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이억기는 한산이란 '큰 뫼(산)'를 의미한다고 답하고 이순신은 작은 승리에 이어 적에게 큰 타격을 줄 결정적인 승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후 이억기와 이순신이 새로 한산도에 건조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동하고 통제영에서 거북선이 정박을 위해 도착한 것을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순신과 10년…”나도 치열한 전쟁 치렀다“
‘이순신 3부작’ 완성한 김한민 감독…역사적 인물 통해 현재 성찰 

지금까지 이런 스펙터클은 없었다. OTT 중심으로 옮겨가는 영화업계에서 역대급 제작비 346억원을 쏟아부어 극장에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스케일로 정면승부에 나선 ‘노량: 죽음의 바다’에 관한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해상전투였다는 노량대첩의 위엄에 걸맞게, 무려 100분의 전투씬이 휘몰아치는 동안 디테일한 롱테이크로 관객의 감정선까지 뒤흔드는 ‘K전쟁영화’의 탄생이다. 
 
 ●무명 병사들 통해 전쟁의 참상 묘사

영화 ‘노량’은 북으로 시작해 북으로 끝난다. 이순신 장군은 총칼이 아닌 북채를 들고 이 거대한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완전한 항복’을 키워드 삼아 전쟁의 참화 한가운데 선 장군의 고독한 숙명을 길어낸 김한민 감독은 집념의 사나이다. 2014년 176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명량’으로 시작해 2022년 ‘한산’을 거쳐 10년 만에 완성한 이순신 3부작에 그의 뚝심이 오롯하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헤쳐나가야 했던 ‘장군과의 10년 전쟁’은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도망가는 적을 끝까지 쫓으며 북을 울렸던 장군의 명분을 바로 세우는 사명과도 같았다.

“다른 걸 돌아볼 여유도 없었어요. ‘노량’은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정말 기적같이 찍었죠. 남들은 코로나를 잊었지만 저는 못 잊어요. 촬영 현장의 아슬아슬함이 아직도 눈에 밟힙니다. 그럼에도 3부작을 완성한 데에는 관객들의 사랑과 성원이 결정적이었어요. 장군의 대의가 저를 속편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줬고요.”

-10년 동안 장군이 꿈에 몇 번은 나왔겠네요.

“한번도 안 나오셨는데, 당신에게 거슬리지 않았기에 안 나타나신 거라 생각해요. 제게도 ‘노량’을 만들고 100분의 해전을 묘사한 대의가 있는데, 그 지점이 장군의 대의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걸 관객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려 한 대의를 현대인들이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김 감독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했다.


-김 감독에게 이순신이란 뭘까요.

“결국 우리나라와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화현(化現)의 현신(現身)’이랄까요. 전쟁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역사적인 비극과 원한이 되풀이된다는 걸 장군의 죽음을 통해서 화두로 삼고 싶었어요. 갈등과 분열이 극심해진 시대에 장군처럼 대의를 가진 존재가 중심적 역할을 해줘야 우리가 뭉칠 수 있다는 생각도 갈수록 커지고요.”

-이순신 뿐 아니라 세 나라 장수의 비중이 비슷해서 ‘국뽕 영화’가 아닌 새로운 감각의 ‘K전쟁영화’로 보이는데.

“세 나라가 팽팽해야 장군의 엣지있는 결기가 드러날 거라 봤어요. 왜 싸우냐며 뒷다리를 잡는 명나라 도독 진린과 정치적 야욕에 불타는 왜군 장수 시마즈가 장군과 팽팽하게 맞서니 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요. 세 장수 김윤석·백윤식·정재영과 허준호씨까지 주연배우 4인방은 신의 캐스팅이었어요. 비중을 딱 그렇게 가질 수 있는 네 분이 오셨는데, 이 환상적인 캐스팅을 장군이 도와주셨다 생각해요.”

-영화가 북으로 시작해 북으로 끝나는데.

“북소리를 좋아해요. 남자들이라면 북소리가 가져오는 북돋움을 알거예요. 장군의 의지를 소리로 상징화해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죠. 죽음을 무릅쓰고 북을 쳐나갔던 건 전쟁의 완전한 종결,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장군의 외침이었다 생각해요.”

김 감독은 예민한 예술가적 감각도 번뜩였다. 개봉 직전까지 손 떼지 못했던 사운드 작업을 스스로 오케스트라 지휘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과연 베일 듯 날선 카리스마를 가진 지휘자였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백병전 롱테이크 해석에 대해서도 감독의 의도대로 봐 달라고 까칠하게 주문했다.

“그 촬영이 가장 어려웠어요. 돈과 에너지를 투자해 어렵게 찍는 데에는 이유가 있죠. 명의 병사부터 시작해서 조선, 왜군 병사로 이어지는 이름없는 인간들을 통해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끝에 고독하게 서 계시는 장군이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사명감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 의미를 단순한 반전(反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장군의 대의를 너무 작게 보는 거예요. 죽은 동료 장수들과 아들의 환영(幻影)을 보면서도 완전한 종결을 위해 다시 북채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중요하죠. 절대적 고독과 사명 가운데 놓인 장군을 보며 중년 남자들이 눈물을 많이 흘리더군요. 장군은 상남자였고, 저도 치열하게 찍었습니다.”

‘장군의 대의’와 ‘완전한 종결’. 그가 줄기차게 반복한 말이다. 그의 고향인 전남 순천의 왜성이 임진왜란 때 세워졌으며 그게 일제 침략전쟁으로 되풀이됐다는 어린 날의 두려움이 줄곧 그의 화두였던 것 같다. 요컨대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이 되풀이됐다는 주장이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영토 할양 같은 전쟁배상을 포함해 종결의 의식이 있잖아요.

우린 그걸 못했어요. 종결까지 가기 위해 적들을 크게 응징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우리가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도쿠가와 막부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항복 받았다면 일본의 침략이 없었을까요.

“없었겠죠. 에필로그에 ‘왜란이 아니라 전쟁이었다’는 광해(이제훈)의 대사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장군의 대의를 따르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전쟁으로 규정해야 일본에 책임을 지울 수 있는데, 실제론 그걸 못했기에 정한론(征韓論)으로 이어졌죠. 이런 주제의식을 사람들이 잘 수용을 못하고 장군이 단순히 도망가는 적들을 응징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흔들어놓고 싶어요.

10년을 매달려 깨달은 장군의 그 뜻을 광해를 빌려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분조(分朝)를 이뤄서까지 열심히 싸웠던 광해의 입을 빌린다면 장군의 대의가 작아지지 않고 계승될 수 있을 테니까.”

-전세계 25개 업체 800여 명이 참여한 CG작업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하나의 컨소시엄을 이뤄서 사전 시각화로 설계한 해전 장면들을 각 업체가 작업하고 총괄 수퍼바이저가 톤을 맞춘 것이죠. 이런 퀄리티가 나오기까지 치밀한 설계와 리얼리티를 살릴 디테일한 작업을 하느라 검증에 검증의 반복이었어요. ‘300: 제국의 부활’의 살라미스 해전을 동네 물장난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평들이 나오던데, 굉장히 자부심을 느낍니다.”

 ●환상적 캐스팅, 장군이 도와준 듯

‘노량’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스케일과 스펙터클은 김한민의 근원을 궁금하게 한다. 1999년 단편영화로 시작한 그는 첫 상업영화 ‘극락도살인사건’(2007)부터 흥행에 성공해 ‘최종병기 활’(2011)로 입지를 굳혔는데, 다른 감독의 연출부를 한 적도 없고 특별히 영향받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남성적인 에너지와 디테일한 밀도감을 가진 역사물을 좋아하고, 결이 까칠하면서도 날이 살아있는 연출 방식을 추구할 뿐이라고 한다.

-남다른 스케일은 기질 탓인가요.

“영화를 거듭할수록 메시지를 생각하게 돼요. 크게 찍어야 한다는 기계적 강박이 아니라 주제적 맥락에서 ‘이 영화는 클 수밖에 없다’ ‘전쟁 묘사를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죠.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보다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맥락의 메시지를 선호하는 편이긴 해요.”

-역사물에 대한 천착은 계속되는지.

“원래 역사를 좋아해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거든요. 역사적 인물들도 우리와 똑같은 뇌구조와 판단력, 상황적 관계성을 갖고 움직였다고 보면 역사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지고 재미있죠. 그 사람이 이런 판단을 하기까지 어떤 고뇌가 있었고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들여다보면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게 되고, 그래서 역사물을 자꾸 하게 되요. 다른 축의 영화도 하겠지만, 역사물은 제 영화세계의 한 축이 분명히 될 겁니다. 역사 속에 우리가 복기해야 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차기작인 8부작 드라마 ‘7년 전쟁’의 주인공은 이덕형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을 정치외교사적 입장으로 파악하기에 드라마 형식이 적절하고, 실제로 발로 뛴 분이 이덕형(李德馨:1561~1613, 호는 漢陰)이었어요. 30대 젊은 나이에 대제학을 지내고 나중에 병조판서까지 되는데,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다녀왔고, 심유경(沈惟敬: 1527~1597, 明의 무장)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 ~1600,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봉장)의 강화협상에 조선의 의지를 반영하려 애쓰면서 이순신과도 계속 소통했거든요.

여러 전략적 판단을 하고 발품을 많이 팔았던 분이니 주인공으로 적절하다고 봤어요. 지금 대본이 나오고 있고 플랫폼이 결정되면 2024년에 촬영을 하겠죠.”

‘노량’이 1760만이라는 ‘명량’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 OTT 콘텐트도 1.5배속으로 돌려보며 장편영화의 종말까지 상상하는 시대에 ‘명량’의 기록은 어쩌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영화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영상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은 욕구도 강하게 존재합니다. 지금은 과도기일 뿐, 곧 두 이벤트를 맞이하는 태도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정착될 거라고 봐요. 그런 지점에서 ‘노량’은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으로 기능하겠죠. 작은 핸드폰으로 대충 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들게 만들었으니까요.”

12월31일은 음력 11월19일, 노량해전이 펼쳐진 역사적인 날이다. 김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돌며 이날을 기념한다고 했다, 연말연시 극장가 훈풍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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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대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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