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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4년02월02일 08시25분 ]
水鏡칼럼- 이순신 3부작 완결편 ‘노량’과 전쟁의 大義 (上)
김한민 감독 “대의 위해 싸운 이순신은 전쟁 완전히 끝내려고 싸운 賢將”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 김한민 감독)가 2023년 12월20일 개봉돼 11일째인 30일 누적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400만 돌파에도 성공했다. 2024년 1월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과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노량’은 이날 오전 11시경 관객수 400만명을 넘어섰다. 개봉 18만의 기록이다.

‘노량’은 앞서 개봉 나흘째에 100만 관객을, 엿새째에 200만 관객을 각각 돌파하며 본격 흥행 질주를 시작했다. 이로써 ‘노량’은 연말연시 극장가를 사로잡은 흥행 강자로서의 위력을 공고히 하고 있어 앞으로 이어갈 장기 흥행 레이스에 귀추가 주목된다.
         
‘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완결편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발발 6년 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김윤석 분) 최후의 전투를 그렸다. 이순신 3부작 1편인 ‘명량’(2014년)은 관객 1761만명을 모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2편인 ‘한산: 용의 출현’(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726만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IPTV 3사, 공동 수급 ‘노량: 죽음의 바다’ VOD 최초 공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대미를 장식하는 ‘노량:죽음의바다’(이하 ‘노량’)가 1월30일부터 IPTV를 통해 집 안에서 개봉한다. ‘노량’은 ‘명량(2014)’, ‘한산(2022)’에 이은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으로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를 담아내고 있다.

김 감독의 연출력과 김윤석(이순신 역)을 비롯한 정재영, 백윤식, 허준호, 최덕문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으로 세계 역사상 손꼽히는 해전이자 임진왜란 7년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노량해전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냈다.

극장 개봉 이후 VOD로 최초 제공하는 IPTV 3사(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공동으로 다양한 사전 예약 이벤트를 진행한다. 사전 예약을 시작하는 1월24일부터 6일간 예약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VOD 할인 쿠폰을 증정하며, 1월30일부터는 할인 쿠폰 제공 및 경품 이벤트 등이 진행된다.

      영화 '노량'의 주연 김윤석이 찾아낸 '인간 이순신'의 진실한 삶

이순신 장군 그리고 장군의 마지막 싸움 노량해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자 '영웅(英雄)'을 너머 '성웅(聖雄)‘이라 불리는 인물을 그려낸다는 것, 더욱이 그 인물의 마지막을 그려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려내야 했을까.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은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10년 대장정의 마지막인 '노량'은 국난 속에 출현한 영웅 이순신의 최후 전투를 그려낸 작품으로, '성웅 이순신' 그리고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모두 담아냈다. 김윤석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뿐만 아니었다. 김한민 감독이 '노량'에서 보여주고자 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는 '현장'(賢將·현명한 장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온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민하고 질문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김윤석이 발견한 건 영웅의 이면(裏面)이었다. 그와 비슷한 나이에 전사(戰死)한 한 영웅의 삶을 돌아보고 그려가는 과정에서 본 것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렇게 알아가고 이해하며 표현한 것이 '노량' 속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윤석이 만난 이순신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12월, 이순신은 왜군의 수장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박용우)가 갑자기 사망한 뒤 왜군들이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 생각한 이순신은 명나라와 조·명(朝明)연합함대를 꾸려 왜군의 퇴각로를 막고 적들을 섬멸하기로 결심한다.

김윤석은 '명량'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에 이어 세 번째 이순신이자 필사의 전략으로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자 노량으로 향하는 이순신을 맡았다. 이에 많은 관객의 관심은 일찌감치 김윤석이 연기할 이순신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에 쏠렸다. 김윤석은 "마지막 이순신을 연기하는 데 대한 마음의 부담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사실 그것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라는 배역 자체가 무게감이 너무 큰 배역이기 때문에 ’명량‘과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던 두 배우분과 똑같은 심정이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다"며 자신을 향한 관심과 부담에 관해 답했다.
 
'이순신 3부작'의 연출자인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서는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박해일을 이순신 역에 캐스팅해 한산해전에서 '지장'(智將·지혜로운 장수), 명량해전에서 '용장'(勇將·용맹한 장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현장(賢將)'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김윤석은 노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현명함은 그가 결심한 전쟁의 마무리, 즉 영화에서 내내 강조하는 '완전한 항복'에 있다고 봤다. 그는 "'현명'하다는 것은 사실 '노량'의 어떤 부분과 일치한다.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을 끝까지 보는 판단, 과연 이 전쟁이 이대로 끝이 나면 어떨지를 얼마나 고민했을까"라며 설명을 계속했다.

"백성 400만 명이 죽은 상황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명나라가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죠. 과연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대로 (왜군을) 보내면 장차 더 큰 원한이 쌓이게 될 것이고, 또 올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하게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고 올바른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거예요. 그것이 현장의 모습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에 관해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갔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며 김윤석이 만난 '이순신'이라는 영웅은 한 명의 '인간'이기도 했다.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나라와 백성을 구했지만, 정치적인 모함으로 인해 도성으로 압송돼 한 달여 동안 고문을 포함해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이후 풀려나 다시 백의종군하기 위해 남해안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듣기도 했다. 셋째 아들 이면(李葂)은 왜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김윤석은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사이가 이순신 장군이 가장 피폐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들 자꾸 전쟁이 끝났다고, 끝내라고 하지만 장군이 보기엔 끝이 나지 않은 거다. 그런 심리적인 고통도 있었을 것"이라며 "인간으로서는 400년 전에 이 땅에 있었던, 7년 전쟁에서 군인으로 생을 살다 전장에서 사라져 간 너무나 불행한 인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도 칭찬 한 번 못 받고 벌만 받다가 가족을 잃고 결국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영웅의 이면에는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윤석에게 이순신의 戰死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이순신 장군이 그토록 바랐던 완전한 항복으로 향하는 현장(賢將)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북 치는 장면이다. 난전(亂戰) 속에서 아군을 독려할 방법은 조선군의 진격 신호이기도 한 북소리였다.

그러하기에 김윤석은 북을 제대로 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북에 몸이 휘청휘청 끌려간다. 그래서 굉장히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북소리가 그대로 가슴을 때렸는데, 극장에서 보니 북소리가 가슴을 향해 그대로 직진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임진왜란 7년의 종결을 알리는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전투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은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왜구가 쏜 총탄에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진 뒤 "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후 전사(戰死)했다. 이 마지막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김윤석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진실함'이었다.
 
"전쟁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 아비규환이 극치에 달했을 때 나오는 장면이죠. 그러나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위대하게 묘사해선 안 된다고 봤어요. 전쟁터 안에서 이순신 장군은 자신으로 인해 장군들이 몰려와 전세(戰勢)에 구멍이 생기고, 아군이 열세로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가장 피해가 안 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고,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선 안 된다고 하는 거죠. 이를 위대한 장군의 모습보다는, 400년전 7년 전쟁을 겪고 살다 간 50대 국민이자 한 사람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한민 감독 역시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면을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했고, 김윤석은 담담하게 한 장군이자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

●10년 대장정 이끈 김한민 감독, 그 마지막 '노량'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나 조선 내에서조차 적당히 끝내자는 임진왜란을 왜 그렇게 끝내선 안 된다고 하는지, 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하는지 '노량'에 모두 담겼다고 했다. 그는 "결국 승리의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순신 3부작'을 이끌어 온 김 감독의 의도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김윤석은 "임진왜란은 '제1차 일제강점기'라고 할 수 있다. 왜구는 반드시 또 올 것이기에 다시는 이 땅에 오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했다. 그렇기에 출사표에서 '이 원수를 갚을 수 있으면 내 한 몸 죽는 건 괜찮다'고 한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전쟁 종결의 의미, 진짜 시작을 위한 올바른 끝맺음에 초점을 맞춘 감독님의 의도는 굉장히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량'에서 '노량'까지 10년이 걸렸다면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20년이 걸렸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김한민 감독만큼 이순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 집안의 가족까지 줄줄 나올 정도다. 그런 부분에서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순신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을 만나 이순신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 김윤석이 스크린에 그려낸 이순신은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도 '노량'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간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 이순신 장군을 바라봤기에 오히려 '인간 이순신'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좋은 영화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는 김윤석의 말처럼 성웅의 모습만이 아닌 한 인간의 모습까지 담아냈기에 '노량'은 '이순신 3부작'을 올바르게 끝맺음한 셈이다.
 
그는 "사람의 삶이 보여야 한다. 허황된 삶이 아니라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이 보여야 좋은 영화다. SF영화라 해도 '우리'가 보인다면 훌륭한 영화라 생각한다"며 "마찬가지로 '노량'은 4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개요 및 평가와 스토리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가 개봉 11일만인 12월30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425년 전 실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항복시킨 음력 11월19일(2023년엔 12월31일) 승전일(勝戰日)을 하루 앞두고서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6년째인 1597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 선박을 상대하며 울돌목 회오리 물살에 왜군를 수몰시킨 극적 전략을 펼쳤다면, ‘한산’은 왜란 초반인 1592년 지략가 이순신 장군(박해일)의 학익진 전술을 치밀하게 되짚었다. ‘노량’은 왜란 7년째 어머니‧아들 면(여진구)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조선‧명나라 연합수군 200여척으로 500여척 왜선에 맞선 이순신 장군(김윤석)의 최후를 그렸다.

“최민식(‘명량’)은 카리스마 있는 용, 박해일(‘한산’)은 호랑이, 김윤석(‘노량’)은 인간 이순신”(CGV, 이하 각 예매앱 관람평), “전쟁의 참상까지 다뤄 좋았다”(롯데시네마)는 호평과 “해전 시작까지 초반 1시간이 지루하다”(메가박스) 등 평가가 엇갈린다. 각 멀티플렉스 관객 평점은 메가박스 8.9점, 롯데시네마 9.2점(이상 10점 만점), CGV 93%(100% 만점)대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포스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과 왜군의 철수

“이슬로 와서 이슬로서 떠나는 이 내 몸이여, 나니와(浪速)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런가.
조선에서... 철군하오.”

조선을 침공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마지막 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히데요시의 가쁜 숨소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히데요시는 사세구(辭世句: 죽을 때 남겨 놓는 시가 따위의 문구)를 읊으면서 자신의 원대한 야망이었던 조선과 명나라 정벌을 상징하는 병풍을 본다.

이후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어린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가 자신을 부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히데요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쿠가와가 묘한 웃음을 짓는 걸 보자, 그의 진의(眞意)를 알아챈 히데요시는 "네 이놈...!"이라 울부짖으면서 사력을 다해 도쿠가와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지만 결국 숨이 끊어진다.

명량해전으로 전쟁의 전세(戰勢)가 연전(連戰)되고 일본군은 남해안 일대로 후퇴해 농성전(籠城戰: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키는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순천 왜성(倭橋城)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조·명(朝明)연합군의 사로병진책(四路竝進策) 탓에 조선 수군과 명(明) 수군의 포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채 공격받고 있었다. 사로병진책은 정유재란 말기인 1598년 명군의 최선임자이던 병부상서 총독군무 형개(邢玠)가 입안한 공세 대전략이다. 이후 1598년의 나머지 정유재란 전투들은 모두 이 전략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사로병진책은 육군을 전라도 방면의 서로(西路), 경상우도 방면의 중로(中路), 경상좌도 방면의 동로(東路) 세 갈래로 나누고 여기에 해군이 맡은 수로(水路)를 더하여 네 갈래로 총공격을 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다. 

고니시는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과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자문한다. 이에 그는 부하인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를 명나라 수군 도독인 진린(陳璘)에게 보내 어떻게든 사는 방도를 모색하려고 한다. 아리마는 선물할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진린에게 가서 어차피 끝난 전쟁에 더 희생을 낼 필요가 없다며 자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명나라와 더 이상 싸울 뜻이 없음을 피력하지만 진린은 애시당초 전쟁의 명분이었던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언급하면서 아리마를 나무란다. 이에 항변하는 아리마에게 진린은 그것은 곧 너희들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있다는 뜻이냐고 묻고, 대답이 없는 아리마에게 도요토미는 미친 자였다고도 덧붙인다. 불쾌해진 아리마는 자신들은 항복하러 온 것이 아니라 화친(和親)을 청하려 온 것이라 말하자, 이에 진린은 격분하면서 선물로 받은 칼을 아리마에게 던져버리며 썩 물러가라고 한다.

한편 잠자던 이순신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비명소리에 집 안으로 달려가보자 마당엔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고 후원으로 가보니 아들(삼남)인 이면(李葂)이 일본군 여럿에 둘러싸여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순신은 아들에게 달려가지만 물에서 시체처럼 생긴 일본군 여럿이 튀어나와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고, 그 사이 이면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이순신이 보는 앞에서 목이 베여 죽고 만다.

이에 이순신은 자신 탓에 아들이 죽었다며 자책하고, 소리지르며 잠에서 깬다. 밖에는 준사(俊沙: 조선에 귀순한 항왜로 안골포해전 때 이순신에게 항복했음)가 와 있었고 이순신은 준사에게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고향에 돌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이에 준사는 “나중에 다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겠다”하면서 “지휘하는 분들은 모르겠으나 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전쟁이 끝나야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후 이순신의 아내 방씨 부인이 이순신을 찾아오고 탕을 달여주기도 하며 이순신이 자고 있는 옆자리를 지킨다. 부하의 부름에 나가보려는 부인에게 이순신은 “꿈에 아들 면이가 나왔다”고 말하자, 부인은 “꿈이라도 좋으니 어미의 꿈 속에도 한번 나와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씁쓸하게 말하며 방을 나간다.

이순신은 거제도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 1597년(선조 30) 7월16일 칠천에서 벌어진 해전) 이후 표류하다가 이제서야 끌고 온,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전라 우수사 이억기의 판옥선(板屋船: 조선시대 갑판 위에 한 층을 더 올려 널빤지로 지붕을 덮은 전투용 배.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음)을 살펴본다. 그러고는 칠천량해전 때 끝까지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이억기의 용맹한 최후를 전해 들으면서 다가올 전투에 이 판옥선을 대장선으로 삼아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진린을 회유하는 데 실패한 아리마는 고니시에게 이를 보고한다. 고니시는 직접 진린에게 글을 써서 자신들은 싸울 뜻이 없으며 진린이 자신들을 막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수급을 선물할 것을 약속한다. 그 후 진린은 두 차례에 걸쳐 수급을 챙기고는 결국 이순신 몰래 아리마를 포위망 너머로 보내준다. 그 시각 등자룡(鄧子龍: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은 명나라 수군 장수)은 이순신과 함께 그로부터 선물 받은 판옥선을 둘러보며 배의 튼튼함을 칭찬하고는 이순신과 필담을 나눈다. 

그러던 중 왜선 하나가 포위망을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둘은 급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진린에게 달려온다. 저 멀리 가는 왜선을 본 등자룡은 화를 내며 자신의 배를 타고 왜선을 쫓겠다 하고, 진린이 뒤에서 그를 불러 만류하려고 하지만 등자룡은 듣지 않고 추격을 시작한다.

그는 왜선을 끝까지 쫓았으나 그것은 교란을 위한 기만술이었고, 아리마는 육로를 통해 사천에 주둔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 義弘: 노량해전에서 일본측 지휘관으로, 남원성 점령 당시 심당길 등 조선의 도공 80명을 일본에 강제 연행했음)에게 이미 가버렸다. 아리마는 시마즈에게 제발 고니시를 버리지 말고 원군을 보내달라고, 순천왜성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지만, 시마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아리마가 고니시의 쓸데없는 점(혓바닥이 긴 점)을 닮았다면서 이를 거절하고, 자신들은 순천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산포로 향해 퇴각할 것임을 밝힌다. 
                                    
다급해진 아리마는 도요토미의 유언이었던 사세구를 읊고, 이에 분노한 시마즈는 감히 타이코우(太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별칭)의 유언을 입에 담느냐며 밖으로 나와 아리마를 위협한다. 시마즈와 대면한 아리마는 이것이 고니시의 진짜 뜻이라며 원래 가져온 서찰 외에 서찰 하나를 꺼내 시마즈에게 건넨다.

그 서찰에는 고니시가 시마즈를 “시마즈 님”이라고까지 칭하면서, 자신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 (패권승계 문제 등으로) 형세가 매우 혼란할 텐데 그 와중에 이순신이 일본까지 와서 공격해오면 누가 그를 당해내겠냐면서, 어떻게든 이순신을 처리하고 가서 안정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지켜야 하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 읽고 난 시마즈는 전쟁 이후 정세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고니시를 영리하다고 평하며, 생각을 바꿔 밖으로 나와 순천왜성으로 출정할 것을 밝히고, 아리마는 거듭 머리를 조아린다.
   
명(明) 수군 부도독 등자룡 역의 허준호.

진린과 마주앉은 이순신. 진린은 이순신을 “노야”(老爺: 노옹, 늙은 남자)라고 부르면서 나름 온화하게 이순신에게 일본군을 그냥 보내주자고 설득하지만 이순신은 거절한다. 분노한 진린은 이순신에게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유가 왜인에게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 때문이냐고 따져 묻는다.

돌아가려던 이순신은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다 진린의 막사 한쪽에 쌓여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이를 열어보고, 그 안에 담긴 남녀노소 불문한 여러 사람들의 수급(首級)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이순신은 “이 수급이 일본군의 것이 아닌 조선인들의 것”이라 말하자, 진린은 이순신에게 “지금 일본군 부역자들을 옹호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이순신이 진린에게 그가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을 도와 일본군과 싸우라는 명을 받고 온 것이 아니냐고 묻자 진린은 긍정한다. 그러고는 황제가 그 말의 뒤에 덧붙여 자신에게 칼을 하사하면서 자신의 행동은 곧 황제의 뜻이니 이에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그 칼로 베어버리라고도 했다며 칼을 빼어 이순신에게 겨눈다.

하지만 이순신은 전혀 굴하지 않고 칼을 겨눈 진린에게 다가가고, 진린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이순신은 자신의 뜻을 확고하게 밝힌 뒤 만약 진린이 협조하지 않겠다면 조명연합수군은 오늘로 해체라고 말하고는 자신을 재차 부르는 진린을 뒤로 한 채 떠나버린다.
    
이순신은 장남인 이회(李薈: 노량해전에서 전사)가 가져온 서애 류성룡의 서찰을 읽는다. 류성룡은 조정의 상황을 언급하며 윤두수가 벌써부터 광해군에 위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순신의 조선수군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전하였고, 서찰을 읽은 이순신은 이를 즉시 태워버린다. 그러고는 이회에게 다들 전쟁이 끝난 이후만을 보고 있다며 한탄하고는 간만에 부자지간에 술이나 마시자며 이회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한다. 바로 그때에 진린의 소환를 받는다.

밤이 되어 진린은 미리 붙잡아둔 일본군 포로 셋을 이순신 앞에 대령하고는 이들이 충청도 아산에서 이순신의 셋째이자 막내 아들인 이면을 죽인 자들이라며 이순신이 그들의 목을 베고 복수에 대한 마음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이순신은 그 셋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얼마 전 꿈에서 봤던, 아들을 죽인 일본군의 얼굴과 같았다. 부모의 직감으로 이들이 범인임을 깨닫지만 애써 이들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며 돌아선다. 떠나려고 하는 이순신에게 진린은 이미 다 끝난 전쟁이라고 화를 내지만 이순신은 결국 가버리고, 진린은 화풀이로 그 일본군 셋을 모두 베어버린다.     
       
그 후 진린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발견하고, 저 별이 아니었더라면 조선은 진작에 명운이 다했을 것이라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하는 그것이 이순신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챈다. 통제공(삼도수군 통제공으로 이순신을 지칭)이 왜 전쟁을 계속하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병사의 질문에 진린은 "죽음을 작정했거나, 아니면..."이라고 대답한다. 

저 멀리에서 출정 준비를 하는 조선수군 병사들을 바라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해서 뭘 하려고 그러냐고 자문한 진린은 조선수군에 가봐야겠다며 그곳으로 향했다. 진린이 향한 곳에는 이순신과 휘하 장수들이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고, 진린은 조·명연합수군은 아직 해체된 게 아니라며 자신도 조선수군의 전략을 들어보겠다며 합석한다.

이순신은 외해(外海)에서 순천왜성 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노량에서 시마즈군(軍)을 맞이할 것이라 하고, 진린은 동쪽에서는 시마즈군, 서쪽에서는 고니시군 이렇게 양쪽에서 적들을 맞아 싸우게 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한다. 이에 이순신은 그렇기 때문에 단시간에 끝내야 하고 고니시가 출정하지 못하도록 포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해둘 것이라 말한다.

 ●노량해전 전반부

늦은 밤, 이순신은 순천왜성 포위망 위장 유지를 맡은 준사에게 만일 고니시가 출정한다고 해도 응전하지 말고 퇴각하여 자신에게 고니시가 출정했음을 알리기만 하라고 일러둔다. 그 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시마즈군을 맞으러 노량으로 떠나고 이순신이 출정하고 나서 이제 군량(軍糧)도, 군마(軍馬)도 고갈되어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고니시는 우려를 표하는 부하들의 말을 일축하며 시마즈는 반드시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조선수군의 포위망을 살펴보던 부하가 오늘 유독 조선수군의 횃불이 많아보인다며 낙심하고, 이에 불현듯 힌트를 얻은 고니시는 그것이 위장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즉시 출정할 것을 명한다. 고니시가 출정하려는 것을 눈치챈 준사는 이순신의 말대로 조심스레 철수한다. 순천왜성 밖으로 나와 출정한 고니시군은 역시 횃불이 위장이었음을 확인하고는 시마즈군이 자신들을 구하러 왔음을 확신하고, 그들을 도우러 노량으로 향한다.

출정한 배 위에서 이순신은 미리 준비해둔 전쟁 중 조선수군 희생자 명부를 받아들고 거기에 쓰인 이들을 한 명씩 회상하기 시작한다.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한 전라우수사 이억기, 한산도 해전 등 숱한 전투에서 함께 싸운 향도 어영담, 한산도 해전을 함께했으나 그 후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녹도만호로 부임하여 여수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장군 휘하로 들어와 옥포해전과 당포해전에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1592년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전사),

그리고 원균(元均: 경상우수사를 지내던 중 임진왜란을 맞았고 옥포해전, 사천해전, 부산포해전 등 여러 해전을 이순신과 함께 치렀으나 이순신과의 불화로 잠시 전라병사로 제수됐다가 이후 파직된 이순신의 뒤를 이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랐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전임자가 공들여 육성해 온 조선 수군이 와해되고 본인도 전사했음)을 차례로 회상한 이순신은 명부를 태우며 전의(戰意)를 다진다.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과 맞짱 뜬 사츠마번(가고시마)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 역의 백윤식.

노량으로 접근해오는 시마즈군. 시마즈군은 선봉 데라자와 히로타카(寺沢広高), 중군 시마즈 토요히사(島津 豊久), 후군 타치바나 무네시게(立花 宗茂), 그리고 본대 시마즈 요시히로, 이렇게 진을 짜서 순천왜성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에 탄 쵸주인 모리아츠(長寿院 盛淳: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임진왜란에 참전)는 옆의 아리마 하루노부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이순신이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떵떵대고, 이에 아리마는 이순신은 오사카(大阪)나 교토(京都)에마저 정보원을 둔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며 그가 이미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일축한다.

기분이 상한 쵸주인은 아리마에게 ‘살마군’이라고도 불리는 시마즈군의 강함과 끈질김에 대해 언급하며 오니(鬼: 일본의 요괴)처럼 이순신에게 끝까지 달라붙을 것이라며 아리마를 위협한다.

하지만 아리마의 말대로 이윽고 시마즈군은 이순신의 조선수군 함대와 조우하게 되고, 그 옆에는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북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선봉군인 데라자와의 함대를 향해 포를 발사하고, 뒤이어 돌격장 이운룡이 이끄는 판옥선들을 내보내 적선에 충돌시키고는 기름을 붓고 물러나서 불화살을 날리는 식의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조선 수군은 거북선(龜船), 신기전(火車), 대장군전(大將軍箭: 조선 전기에 개발된 천자총통용 화전) 등의 무기로 적선을 계속해서 공격한다. 이를 본 시마즈 요시히로는 분명 자신이 직접 칠천량 해전에서 거북선들을 죄다 불태웠을 텐데 그 사이에 복구해서 온 것이냐며 의아해하고는 그럼에도 대응법은 똑같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반응한다. 

궁지에 몰린 데라자와군은 깃발로 뒤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에 호응한 시마즈는 더욱더 속도를 높여 전진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데라자와군의 배가 불타고, 맞바람이 불어 불탄 배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자 시마즈는 이순신을 두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곤 변화무쌍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저렇게 대담한 일을 벌였으니 자신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면서, 이전에 칠천량에서 노획한 조선군 화포를 끌고 와 데라자와군이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전방에 포를 쏴대기 시작한다. 데라자와군 한가운데를 휘젓고 있던 거북선은 화포를 맞아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열심히 응전해보지만 결국 화포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침몰하는 거북선을 본 시마즈군의 사기는 크게 오르고, 더욱 속도를 높여 조선 수군에 접근한다. 선봉인 데라자와군은 결국 괴멸하고 뒤이어 중군인 시마즈 토요히사(島津豊久)의 함대가 이순신을 맞아 싸운다.
     
한편 시마즈군과 조선 수군의 싸움을 지켜보던 진린은 분명 무력시위라고만 했는데 그것 치곤 싸움이 너무 치열하다며 의아해한다. 싸움을 보다못한 등자룡은 이순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판옥선을 타고 단독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멀리서 이를 지켜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고니시가 분명 명나라 수군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옆의 아리마를 문책한다.

이어서 진린까지 북과 피리로 요동하며 진격해오자 시마즈는 크게 분노하여 부하들에게 아리마의 혀를 자르고 세키부네에 묶어 보내 총알받이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아리마는 마지막까지 고니시가 분명 올 것이라며 끈질기게 매달리지만 결국 시마즈의 부하들에게 끌려가버린다.

●노량해전 후반부

앞에서는 중군인 시마즈 토요히사의 함대마저 이순신에게 고전하고 있었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11시 방향의 남해 바다 방향 바닷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저기로 이순신을 꾀어내야겠다며 전속력으로 그쪽으로 향한다. 뒤이어 시마즈 토요히사도 요시히로의 뒤를 따라 빈 물길로 향한다. 이를 지켜본 이순신은 어찌 된 일인지 바로 따라가지 않는다. 시마즈군은 전속력으로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갔으나 그 앞에는 관음포라는 막다른 포구가 있었고, 움푹 패인 모양의 지형에 시마즈의 전군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뒤이어 조선 수군이 일자(一字) 모양으로 포구를 에워싸고, 패닉에 빠진 시마즈군 일부 병사들은 육지에 상륙해 도주하려고 하다가, 도망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며 도망치는 자는 모두 처단할 것이라는 쵸주인 모리야츠의 지시에 따라 조총을 맞고 쓰러진다. 붙잡힌 나머지 병사들은 이내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에 끌려온다. 병사들은 겁에 잔뜩 질려 살려달라며 울먹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쵸주인은 울지 말라며 위협한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그들에게 "살고 싶냐?"고 묻고,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말하기를 주저한다. 
                                   
명의 수군 도독 진린 역의 정재영

그러다가 한 병사가 "살고 싶다"고 말하자 시마즈는 그에게 어디 마을에서 왔는지, 그리고 가족은 있는지 묻는다. 병사는 소속 마을을 밝히고, 가족들로는 "갓 결혼한 아내와 그 사이에서 난 아이가 있는데, 전쟁이 시작될 당시 갓난아기였으니 지금쯤..."이라면서 말을 잇지 못하며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러자 나머지 병사들도 일제히 “살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에 시마즈는 저쪽 조선 수군 쪽을 가리키면서 "정말로 살고 싶다면, '저 마귀들'을 뚫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순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으므로 정말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이순신을 쓰러뜨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시마즈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방금까지만 해도 도망치려던 병사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전의를 불태운다.

시마즈군을 에워싼 이순신에게 찾아온 진린은 이쯤 하면 적들도 꽤 많이 피해를 입었으니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이에 이순신은 지금까지 함께 싸워줘서 고맙다면서 이제부터는 조선 수군만으로 적들을 섬멸할 테니 조심히 돌아가라고 말하며 여전히 전의를 불태운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겠다고 말한다.

그후 시마즈군은 조선 수군을 향해 사기충천해 돌진해오고,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물린다. 진린도 명나라 수군을 물리고 시마즈는 물러가는 명 수군을 쫓기 시작한다. 시마즈군은 아테케부네(安宅船: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서 에도시대江戸時代 초에 걸쳐 쓰인 최강, 최대의 군함)가 앞서서 탱킹(tanking: 전투에서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적의 공격을 맞아주는 행위)하다가 세키부네(関船: 전국시대와 에도시대에 걸쳐서 사용했던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는 중소형 군함)를 앞으로 보내 계속 교대하는 식으로 명 수군에게 조총을 쏴대고, 진린의 휘하 장수는 이를 보며 굉장히 잘 짜인 진법이라고 감탄한다.

그렇게 명 수군이 계속 공격받던 그때, 명 수군을 향해 돌진하던 시마즈군의 왼쪽에서 조선 수군이 나타나 단숨에 시마즈군의 허리를 끊어낸다. 뒤쪽 함대를 섬멸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지휘에 따라 조선 수군은 시마즈 군의 가운데를 관통해 지나간다. 동시에 물러나던 명나라 수군도 시마즈 군을 향해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다가오는 명 수군을 본 시마즈 요시히로는 그들이 멍청하다면서 계속하여 명 수군을 향해 나아간다. 쵸주인과 시마즈 요시히로는 저 멀리에서 등자룡을 발견하고, 쵸주인은 이번에야말로 저 늙은이의 목을 베어다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이내 명 수군과 시마즈군은 접촉하여 시마즈군이 명나라 배마다 여럿 달라붙어 월선(越船)해오기 시작한다.

등자룡 역시 시마즈가 탄 대장선으로 월선해와 강력한 월도(月刀)로 일본군 둘을 한 번에 밀어 처리하는 등 용맹 무쌍을 선보이고 쵸주인과 맞붙어 압도하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철갑옷으로 월도를 받아내며 쵸주인이 버티고 있는 사이 기습적으로 들어온 시마즈의 일섬(一閃에 당하고 만다. 진린의 배 역시 월선해오는 시마즈군에 맞서서 백병전을 치르게 되고, 진린은 매우 고전한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진린을 생포하여 인질로 잡음으로써 이 위기에서 탈출하겠다는 계획 하에 결국 진린의 배까지 넘어와 진린과 마주하게 되고, 진린은 큰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이순신으로부터 진린 구출을 명 받은 준사가 등장하여 소란이 일어나고 이를 틈타 진린은 물러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시마즈군과 준사, 그리고 명나라 수군의 백병전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진린의 휘하 장수인 진잠(陣蠶)이 전사하고 만다. 뒤이어 또 다른 휘하 장수인 심리가 진린에게 그를 잘 보필하지 못한 죄로 자신은 남아 싸우겠다면서, 시마즈 요시히로의 지시에 따라 진린을 잡으러 온 일본군과 일대 다수의 싸움을 벌이다가 역시 전사한다.

그 사이 진린은 성공적으로 구출되어 이순신이 있는 대장선에 타고, 이순신에게 자신이 어리석었다면서 사과한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진린을 잘 보호할 것을 지시하면서 준사가 있는 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싸우던 준사는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달려들지만 쵸주인에 의해 저지당하고, 준사는 7년간 이어온 의를 위한 싸움을 하면서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시마즈는 준사의 목을 베고, 준사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배 밖으로 투신하여 최후를 맞는다.

이후 조선수군, 시마즈군, 명나라수군 함대가 완전히 뒤엉킨 가운데 3군 사이의 백병전이 계속된다. 그 사이에 밤을 새고 아침이 밝아오는데 자신에게 달려오는 일본군 병사를 베어버린 이순신은 일출과 함께 대장선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을 바라보며 정운, 어영담, 이억기, 그리고 죽은 아들인 이면이 함께 싸우고 있는 허상을 보게 된다. 그러고는 북채를 잡아 들고 직접 북을 크게 치면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시작한다. 이순신의 북소리와 함께 힘을 얻은 조·명연합수군은 시마즈군에 대해 점점 우세를 점한다.

그 와중에 폐허가 된 채 표류하던 일본군의 배에 살아남아 있던 일본군 병사 한 명이 북을 치는 이순신을 향해 조총을 쏘지만, 그 병사는 쏘기 직전에 이를 발견한 이회(李薈: 이순신 장군의 장남)가 쏜 화살을 맞고 사망하고, 이순신은 아군의 방패 뒤로 쓰러진다.

다행히 이순신은 무사했고, 그는 송희립(宋希立: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서 종군하고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에서 왜군에게 포위된 명나라 도독 진린을 구했음)에게 더욱더 나아갈 것을 명한다. 이에 희립은 거부하지만 이순신의 결연한 의지에 결국 그의 명령을 따른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새로운 북채를 가져올 것을 명하여 계속해 북을 치고 시마즈군의 패색은 더욱 짙어진다.

백병전이 한창인 전장에서 이순신을 호위하던 방패들이 사라진 사이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면서 이순신의 북소리가 끊긴다. 그러자 싸우고 있던 진린 등이 왜 북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면서 의아해하고, 다들 대장선 쪽을 바라보며 혼란에 빠진 찰나에 다시 그쪽에서 이순신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일어서며 북을 치기 시작한다. 이에 다들 더욱 힘을 얻고는 싸움을 계속해서 할 수 있었고 조명연합수군은 승리에 더욱 다가간다.

북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시마즈 요시히로는 끝이 없다면서 패닉에 빠지고,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식의 말만 계속 반복하면서 대장선 안의 방으로 쓰러지듯 들어가 귀를 막으며 쓰러진다. 심지어 토하기까지 하고는 누가 저 북소리 좀 멈춰보라고 하면서 패배의 충격으로 괴로워한다. 외해에서 북소리와 함께 전투를 계속 주시하던 고니시는 혀가 잘린 채 세키부네(関船)에 묶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리마가 있는 세키부네의 떠밀려온 잔해를 본 고니시는 묘하게 분노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시마즈를 돕지 않고 그대로 철수한다.

 ●노량에 떨어진 별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기쁨을 나누러 이순신의 대장선에 온 진린은 북을 치고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북을 계속 치던 그는 이순신이 아니라 함께 싸우던 그의 장남 이회였다. 게다가 대장선은 군사들이 모두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는 침울한 분위기였다. 진린은 방패로 둘러싸인 지휘대 안에서 침울하게 나오는 송희립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고, 전사한 이순신을 보며 절규한다. 이후 판옥선들이 대장선 주위로 몰려드는 모습이 나오며 화면은 암전(暗轉: 연극·영화 등에서 장면을 바꿀 때, 막을 내리지 않고 어둡게 해 놓고 다음 장면으로 옮기는 일)된다.

그렇게 7년 간의 처절한 전쟁이 끝나고 이순신의 장례식이 열린다. 수많은 백성들이 장례 행렬 주위에 늘어서서 통곡하고, 아이들은 길가에서 즐겁게 뛰어놀다가 장례 행렬을 지켜본다. 이후 비화가 밝혀지는데, 이순신은 이전에 북소리가 갑자기 끊겼을 때 조총에 왼쪽 겨드랑이 부분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고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순신은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는 말을 남기고 전사한다.

 ●대장별이 된 충무공

노량해전이 끝나고, 세자 광해군은 수도 한양에서 순천으로 내려와 고니시가 농성(籠城)했던 순천성에 입성한다. 광해군은 송희립으로부터 이대로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이순신의 유언을 전해 듣고 이에 동의한다.

이후 조선 육군의 명장 권율로부터 순천성을 완전히 접수했다는 보고를 받고, 드디어 왜란이 끝났다는 권율에게 "이것은 왜인들의 난이 아닌 참혹한 전쟁"이라고 답한다. 그때 하늘 위에서 대장별이 빛나고, 광해는 “별을 아는 자들은 저 별이 없었다면 조선의 명운은 끝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낮에도 어찌 저리 밝게 빛나느냐는 권율의 물음에, 광해는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남았거나, 행하지 못한 일이 남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이후 빛나는 대장별을 비추며, 충무공 이순신의 장대한 이야기는 완전한 막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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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대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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