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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4년02월08일 16시20분 ]
水鏡칼럼- 영웅 기억 못하는 사회…고귀한 희생 ‘반짝 추모’
직무 다하다 목숨 잃어도…예우 못받는 ‘잊혀진 희생’들…한국 응급의료 발전 기여한 故윤한덕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봉사하다 희생된 분들에 대해 선진국만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이사장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5년전 설 연휴인 2월2일 응급의료 개선 관련 보고서를 검토하다 과로사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순직 전 석 달 평균 주 122시간, 숨진 주에는 주 129시간을 일했다. 과로 기준인 60시간을 2배 이상 넘긴 수치다.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윤한덕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순직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응급의료 관련 사업을 수행 중이었다. 윤 센터장은 닥터헬기 도입, 권역외상센터 출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 응급의료기관 평가제도 마련, 응급의료 재난대응체계 수립 등 한국 응급의료체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도 윤 센터장의 장례식 당시 “한반도 전체를 들어 올려 거꾸로 흔들어 털어 보아도, 선생님과 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추모했다. 윤 센터장의 사후(死後)에야 비로소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LG 의인상, 세계응급의학회 특별상, 대한의사협회 표창에 이어 36년 만에 민간인 첫 국가유공자 지정까지 각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이날 복지부나 국립중앙의료원 차원의 추도 행사나 기관장들의 발언은 없었다. 특히 윤 센터장 사후 도입된 국내 1호 닥터헬기는 윤 센터장을 상징하는 콜사인(호출부호) ‘아틀라스’로 명명됐고 기체에도 이를 새겨넣었다.

그러나 2022년 헬기 운용사 교체로 기존 헬기가 매각되면서 콜사인도 사라졌다. 우리 사회가 영웅을 대접하는 수준을 보여준 한 사례에 불과하다. 다른 수많은 사례들도 있다.  2월2일 윤 센터장의 모교인 전남대 의대에선 윤한덕기념사업회 주관으로 5주기 추도식 행사가 조촐하게 열렸다.

 직무 다하다 목숨 잃어도…예우 못 받는 ‘잊혀진 희생’…잊혀진 군인의 죽음

8년 전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심인옥(66)씨.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면 자기도 모르게 주방을 둘러보곤 한다. 언젠간 호텔 조리사가 되겠다던 아들 고(故) 배봉석 일병이 떠올라서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해병대에 입대한 배 일병은 2사단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고교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녔던 취사병 생활은 고되지만 꿈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일병이 됐을 무렵 식자재 창고에서 무거운 철자재를 옮기던 중 ‘뚝’ 하는 소리가 허리에서 들려왔다.

심씨는 “군에서 아들이 세 번이나 울면서 전화가 왔다”며 “허리가 아픈데도 약물 처방만 받고 두어 달을 버텼던 것 같다”고 했다. 증상이 악화하자 배 일병은 국군수도병원에서 157일을 보냈다.

그러나 한번 망가진 허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귀신 잡는 해병대에 입대했다는 자부심은 진작 사라지고 배 일병의 병역 기록은 ‘의병 전역’으로 끝맺었다. 전역 후에도 다친 허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오랜 꿈이었던 호텔 조리학과에 진학했지만 허리 통증으로 주방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일어서면 통증이, 앉으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우울증이 그를 덮쳤다.

전역 후 허리 통증도, 우울증도 악화했지만 보훈심사에서 상이등급을 받지 못하고 수차례 탈락했다. 군의 관리 부실 등과의 연관성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무력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심씨는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큰 이유가 국가의 외면이었다고 호소했다. 배 일병은 생전 공상을 인정받게 해달라고 싸웠는데 국가의 외면 탓에 심씨가 아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해달라고 싸우게 됐다. 심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내 소원은 봉석이를 국립묘지에 보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故 배봉석 일병의 어머니 심인옥씨가 모아 둔 배 일병의 진단서와 보훈심사 자료. 배 일병은 군에서 허리를 다쳐 전역했지만 ‘상이 등급’ 판정을 받지 못해 보훈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배 일병의 사례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진정이 제기돼 조사가 이뤄졌다. 2022년 3월21일 위원회는 “망(亡) 배봉석은 군 복무 중 추간판 탈출증이 발병해 공상 전역했고 전역 후 그 질병의 후유증이 상당한 원인이 되어 발병한 정신적 질환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방부 장관에게 “군 복무 중 발병한 질병으로 공상 전역한 사람이 그 질병이 상당한 원인이 되어 발병한 정신질환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한 경우 국방부가 순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신속히 마련할 것을 요청한다”고 주문했다.
 
이같은 요구들이 이어지자 군 복무 중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이나 병을 얻은 뒤 해당 사유로 전역 후 사망해도 전사자나 순직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2023년 11월 공포됐다.

서울행정법원은 3월 배 일병이 보훈보상대상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예정이다.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군 복무 중 다친 것 이외에 사망에 이르게 한 요인이 없지 않으냐”며 “병역의 의무가 있는 국가라면 최소한 군에서 입은 부상이나 피해를 광범위하게 책임지고 보호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로부터 잊혀진 죽음

사전을 보면 순직은 ‘군인, 경찰, 공무원이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음’을 뜻하는 말이다. 정부는 전투 중 산화한 전사자뿐 아니라 순직한 이들의 죽음을 기리고 남은 이들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가가 기억해야 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매년 군에서 100여명 가까운 군인이 사망하지만 많은 이들은 순직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행여 순직으로 인정받아도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망 앞에 ‘순직’이란 단어가 붙는지에 따라 국가의 기억법은 달라진다. 2023년 군에서 순직한 장병의 부모 A씨는 “순직으로 인정되면 국립묘지에 봉안되고 국가가 이들을 함께 기억해주지만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 사망했어도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그 아픔은 오로지 유족들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

순직한 이들의 명예를 높여주고, 유족들이 느끼는 고인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한 노력과 순직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순직으로 인정받지 않는 죽음은 국가가 어떻게 기리고 기억할 것인가 논의가 필요하다.
                       
 ●순직 뒤에 숨어있던 진실

여기에 오랫동안 외면받아 온 죽음이 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에 숨진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 추서)이다. 그의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의 저자 김준철씨는 “국방부 정신전력 교재에 김오랑의 군인정신이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가 반란군에 동조하거나 피신했을 때 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김 소령만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김씨는 “군인으로서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고 군인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후배들에게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 배우 정해인이 김 소령(극중 ‘오진호 소령’) 역을 맡으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영화 개봉 전까진 김 소령의 명예로운 죽음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적과의 교전, 무장폭동, 반란에 의해 사망한 만큼 마땅히 ‘전사’에 해당하지만 매장 보고서에는 사망 경위가 ‘우발적 사고’라고만 돼 있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냥 ‘순직’으로 분류됐었다. 순직이 진실을 감추기 위한 용어였던 것이다. 2022년 11월이 돼서야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그의 사망 구분을 순직(殉職)에서 전사(戰死)로 변경했다.
   
김오랑 소령의 평전을 쓴 김준철씨가 한 행사에서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 있다. /김준철 제공

김씨는 “19대 국회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았던 유승민 전 의원이 김오랑의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며 “그의 추모비 건립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지만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도, 특전사도 모두 거부했다. 이번 정부 인수위 때도 건의했으나 회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1990년 학생군사교육단(ROTC) 28기로 임관해 특전사에서 복무했다. 복무 당시에는 선배인 김 소령을 알지 못했지만 20여 년 전 무릎 부상으로 전역한 뒤 인터넷에서 ‘김오랑 추모회’라는 단체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의 생애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이후 12·12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 자료 등을 모아 평전을 쓰게 됐다. 책에는 45년 전 김 소령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1979년 12월12일 밤 김충립 당시 보안사 보안반장이 홀로 남아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던 김 소령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자 ‘보안사에서 사령관님을 잡으러 올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반란군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려고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사령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김씨는 12·12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 희생된 정선엽 병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 병장은 당시 서울 용산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근무 중 국방부를 장악하려는 반란군의 총탄에 전사했다. 김씨는 “영화에서는 정 병장이 너무 지나가듯 등장해 아쉬웠다”며 “병사라 조명을 많이 못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군인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함께 기억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영웅과 작별’, 문경 화재 순직 소방관들…한동훈 “이런분들 기억하는 정치해야”

경북 문경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두 청년 소방관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를 기리는 영결식이 2월3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경북도청장(葬)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유족, 친지, 경북도지사, 소방청장, 도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두 청년의 넋을 추모했다.

영결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묵념과 약력 보고, 1계급 특진·훈장 추서, 윤석열 대통령 조전 (弔電) 낭독, 영결사(永訣辭), 조사, 고인께 올리는 글,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 폐식사 순으로 계획됐다. 영결식 이후 두 순직 소방관의 유해는 문경 지역 화장장인 ‘예송원’으로 운구돼 화장을 거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지난 1월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품 제조공장 화재 진압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고 김수광 소방장(왼쪽)와 고 박수훈 소방교의 모습

영결식에 앞서  유해는 순직 직전까지 그들이 자랑스럽게 몸담았던 문경소방서로 이동해 동료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았다. 
두 구조대원은 1월31일 오후 7시 47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산업단지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숨을 거뒀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민간인의 말을 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 인명을 검색하던 중 급격히 번진 화마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문경 순직 두 소방관 유족에 2억원 위로금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2월3일 “문경 화재 진압 도중 숨진 문경소방서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 유족에게 각각 1억원 씩 총 2억원의 위로금을 전하고 싶다”는 뜻을 경상북도에 전해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윤 회장은 2일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국민을 위해 자기 몸을 내던진 고인들의 숭고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그들의 깊은 뜻을 기리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이 지사는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의 유가족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하는데 도와주신다고 하니 고맙다”며”순직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국민께서도 두 영웅을 기억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답했다.한국콜마는 1990년 설립된 국내 최초 화장품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기업이다.
                           
한편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센터장의 5주기를 언급하면서 “이 나라 응급의료 체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공익을 위해 본인 모든 것을 바치신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날 순직한 문경소방서 김수광 소방교와 박수훈 소방사 이름을 윤 센터장과 함께 호명하며 “이런 분들을 기억하는 정치를 우리 국민의힘이 하겠다”고 강조했다.

 美선 순직자 우대 정서 깊게 자리잡아…이름 딴 다리·도로·공공건물 등 많아

우리와 달리 미국에선 국가나 시민사회 수호 임무 중 순직한 인물에 대해 사회적 영웅으로 대접한다. 비영리단체가 설립돼 순직 시 각종 지원 안내, 치유프로그램, 추모행사 등을 진행한다. 일상에서도 이들을 우대하는 정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도시에는 순직한 이들의 이름을 딴 도로, 다리, 공공건물이 많다.

미국이 국내정치적으로는 분열되고 싸우지만,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안보와 군(軍) 등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지지와 영웅적인 예우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 교체가 된 후에도 외교안보정책에 있어서 국가안보 관련 동맹국들과의 연대 강화 외에도 바이든 현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대(對)중국 전략 등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가운데서도 국가안보에 대한 초당적 지지는 미국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이제 우리도 국가와 사회 등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영웅’을 반짝 추모에 그치지 말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 새겨 추모해 나가고 각종 정책도 장기적 안목에서 마련하고 특히 국방 및 안보나 교육, 복지와 저출생과 같은 백년대계는 정권이 바뀌어도 기조는 유지해야 선진 강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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