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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4년02월20일 14시10분 ]
  水鏡칼럼-  영화 ‘건국전쟁’의 이례적 흥행과 역사의 교훈  
개봉 17일 만에 62만 관객 돌파…독립운동 등 이승만 생애 다뤄…기념관 건립 모금 100억 넘기도…“업적 재조명” “미화 짜깁기” 분분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전 대통령(1대, 3대)의 생애와 정치 역정 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이 이례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둔 시기와 맞물리면서 보수층이 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건국전쟁’이 2월1일 개봉 후 보름 만에 관람객 4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다큐멘터리 영화 중 흥행 6위에 해당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이 2월15일 집계한 바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14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5만2158명이 관람해서 이날까지 누적 관람객 43만4310명을 기록했다. 한국 상업영화 선두인 ‘시민덕희’가 같은 날 1만8381명을 동원한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전체 영화 흥행 순위로는 할리우드 영화 웡카에 이어 2위다.
   
          

개봉 15일만에 40만을 돌파한 지 불과 이틀만인 17일에는 62만명을 돌파했다. 60만 관객은 역대 국내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는 흥행 4위에 해당한다. 역대 국내 개봉 다큐멘터리 흥행 순위 1위는 2014년에 개봉해 480만3386명이 관람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고 2위 ‘워낭소리’(296만2897명), 3위 ‘노무현입니다’(185만5620명) 순이다.

‘건국전쟁’은 사진과 영상 자료,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재임 기간 업적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춰 김덕영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 제작사 다큐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여러 나라로 보내졌던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호평받은 바 있다.

‘건국전쟁’은 무엇보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의 지원을 받으면서 흥행이 시작됐다. 특히 여권 인사들의 영화 관람이 이어지면서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 나경원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 등이 극장을 찾아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한 위원장은 12일 ‘건국전쟁’을 관람한 후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굉장히 결정적이고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며 “한미(韓美)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영화에는 한 위원장이 2023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토대를 만든 대표적인 정부 정책으로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을 꼽는 강연 장면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2월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GV 여의도에서 영화 '건국전쟁'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이 설 연휴 중 참모들에게 ‘건국전쟁’에 대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진실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가한 것까지 알려지면서 영화 관람 열기가 더 뜨거워지며 ‘관람 인증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관람평에 관해 서면브리핑을 내고 “하다하다 독재, 부패, 부정선거의 결과 4.19 혁명으로 몰락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하냐”며 “윤 대통령에게 지향하는 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냐”고 했다. 그러면서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고 오히려 이들을 정권 유지의 기반으로 삼은 장본인을 옹호하는 것을 보니 왜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다”고 윤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어 “거짓된 역사가 진실이 될 수는 없다며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극단의 시대인 만큼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도 크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 마이너 갤러리, 클리앙, 루리웹, SLR클럽 등 친(親)민주당계 네티즌들은 ‘건국전쟁’ 관람 인증한 연예인을 비난했다. 반면 친(親)국민의힘계 네티즌이나 보수계 커뮤니티에서는 ‘건국전쟁’ 관람을 인증하거나 호평한 연예인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응원했다.

물론 상업영화 마이너 갤러리, 오리지널 티켓 마이너 갤러리, 누벨바그 마이너 갤러리 등 디시인사이드의 각 영화 마이너 갤러리 같이 보수계 커뮤니티임에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중립적인 시각으로 감상하는 곳도 있다.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미국 파트는 지루하지만 초반부와 후반부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연출이 좋았다는 것이다. 영화가 다룬 내용에 대한 평가는 물론 별개다.

김덕영 감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이들의 영화 관람과 관련한 사진 및 글을 올리며 “‘건국전쟁’ 보기 릴레이가 대한민국 국무위원들로 이어지는 것 같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 그(한동훈 비대위원장)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잘 모르겠다. ‘제가 영화에 나오던데요’라고 첫마디를 던지는 모습에서 한동훈 특유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잘되길 바란다”는 등 소감을 전했다.

영화 ‘건국전쟁’의 한 장면

여기에다 개신교를 중심으로 종교계도 영화 관람 열풍에 가세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교회 인근의 상영관을 대관해 2월13일 교역자와 신도 등 1500여명이 관람했고 16일까지 4000여명이 봤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김덕영 감독의 무대인사와 함께 16일 관람했다. 이 자리에서 이영훈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써 내려간 분이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기독인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도 잘 알 필요가 있다고 여겨 저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이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역사 해석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졌다. 이념적인 편 나누기가 우리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도 13일 성도 등 60명과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연예계에서도 가수 나얼이 2월12일 SNS에 ‘건국전쟁’ 포스터와 성경 사진을 함께 올리며 영화 관람을 인증했다. 

이제는 입소문을 타면서 ‘건국전쟁’에 대해 정치색이 옅은 대중까지도 관심도가 넓어지고 있다. 관객들 사이에선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긍정적 측면만 짜깁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승만기념관 건립에도 탄력이 붙는 등 흥행 효과는 작지 않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에 따르면 2023년 9월 모금 운동을 시작한 후 2월14일까지 5만8700여명의 후원자가 기념관 건립을 위해 총 100억40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건국전쟁’ 흥행 현상에 대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의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관람객 연령층이 50∼60대가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영화의 확장성에는 한계가 보인다”며 “그럼에도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운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건국전쟁’은 김 감독이 2021년부터 3년에 걸쳐 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뿐만 아니라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등 국내외 정치·역사 전문가들의 인터뷰 등을 담았다. 김 감독은 영화를 위해 미국 시카고와 캐나다 토론토 등을 현지 취재했다. 

  ●김덕영 감독 "2월29일 2편 제작발표회 예정…'인간 이승만' 조명“

김덕영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속편에 관해 언급했다. 김 감독은 2월18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2월29일에 건국전쟁2 제작발표회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국전쟁2'의 부제는 '인간 이승만'이라고 설명하며 '대통령 이승만'이 아닌, '인간 이승만'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과 미국에서의 정치인 활동, 하와이에서의 말년 등을 조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진중권 “'건국전쟁' 4·19 헌법정신 위배”…김덕영 "동의 못 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돼 김 감독이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김 감독은 2월14일 SNS에 올린 글에서 '건국전쟁'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진중권 광운대 교수의 지적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진 교수는 전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건국전쟁'을 두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4·19가 명시돼 있다"며 "반헌법적인 일들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건국 대통령’의 90평생 궤적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교훈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을 재조명했다는 반응과 긍정적 측면만을 짜집기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덕영 감독이 3여년간 제작하면서 101분 필름에 다 보여주지 못한 미반영 분량이 훨씬 많을 것이다. 김일성과 스탈린의 6·25전쟁 계획은 한국을 침략하자마자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 이남을 차단해 국군을 격멸한 다음, 남한에 있던 20만명 이상의 ‘인민 봉기’로 정부를 전복하고 한 달 내 전쟁 종결을 목표로 했다.

『북한 남침 이후 3일간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을 군사학자 남정옥 박사(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가 논문으로, 소책자로 기술했다. 그중 중요 부분을 간추려 소개한다.
                  
정부 수립 2년밖에 안 된 신생 국가가 조직도 미비하고 전차와 전투기도 한 대 없는 심각한 전력(戰力)의 열세(劣勢) 속에 침략을 당했는데, 국제 정세에 혜안이 있던 75세의 노(老)대통령이 어떤 전시(戰時) 외교로 미국과 유엔의 지원과 참전을 신속하게 끌어내 대한민국을 수호했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의 대대적 남침이 시작됐다.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10시경.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미국 본토에서 군함을 구입해 하와이에 머물던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즉각 귀국을 지시하고(25일 오전 11시), 무초 미국 대사를 회동하며(오전 11시 35분), 장면 주미 대사에게 미국 원조를 빨리 받아내도록 지시하고(오후 1시) 비상 국무회의를 주재했다(오후 2시).

미국의 지원이 공식화되지 않자 밤늦게 무초 대사를 다시 경무대로 불렀다(밤 10시). 밤을 꼬박 새우면서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했지만 전속부관이 깨울 수 없다고 하자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도 죽어가는데 장군 잘 재우라”고 호통치고는(26일 새벽 3시), 무초 대사에게 전화해 대포와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다(새벽 4시 30분).

이튿날 오전 치안국을 방문해 전황을 확인하고 경무대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 상공에는 북한의 야크 전투기가 맴돌았다(26일 오전). 전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의정부가 함락되고 북한군의 서울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대통령은 서울에 남겠다고 했지만 “국가 원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더 큰 혼란”이라는 설득에 피란을 결정한다. 서울역을 출발(27일 새벽 3시 30분)하기 직전까지 주미 대사에게 전화해 트루먼 대통령 면담을 지시하고 맥아더 장군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속의 이승만 전 대통령
  
6월27일 낮 대구에 도착했는데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내 평생 처음 판단을 잘못 했다”며 열차를 돌려 다시 올라갔다. 대전역에 도착한 시각이 27일 오후 4시 30분. 수원까지 가서 자동차로 서울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미 대사관 참사관이 유엔 결의 소식과 트루먼의 긴급 무기 원조 명령을 알려오면서 대전에 머물게 된다.

29일 맥아더 장군의 방한 소식에 미군 조종사가 모는 경비행기를 타고 수원으로 가 소령 때부터 알았던 맥아더와 극적인 상봉을 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데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두 번이나 야크기의 추적을 받았다. 맥아더의 한강 방어선 시찰 이후 미국은 지상군 참전을 전격 결정했다. 6·25전쟁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대전으로 내려간 뒤부터 전쟁 내내 이승만 대통령은 권총 한 자루를 침실 머리맡에 놓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는 “최후의 순간 공산당 서너 놈을 쏜 뒤 우리 둘을 하나님 곁으로 데려다 줄 티켓”이라고 말했다(프란체스카 회고록).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7월29일 밤 프란체스카 여사를 불러 “적이 대구 방어선을 뚫고 가까이 오면 제일 먼저 당신을 쏘고 내가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면서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로 떠나라고 했다.

여사는 “절대로 대통령의 짐이 되지 않겠다”며 함께 있겠다고 했고, 대통령은 “우리 아이(병사)들과 여기서 최후를 마치자”고 했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때 미국은 해외나 제주도 망명 정부를 계획했지만 거부했다. 더우나 추우나, 적의 박격포가 떨어지는 상황에도 매주 전선을 방문하는 고령의 이승만을 보면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정치가·애국자’라고 평가했다.

6·25전쟁 내내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北進) 통일의 의지를 피력했다. 맥아더 후임의 매튜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은 확전론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이승만 때문에) 내 머리털이 많이 빠지게 됐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북이 먼저 무력으로 38선을 파괴했으니 존속시킬 이유도 없다면서 국익과 통일에 단호했다.

영화 ‘건국전쟁’은 엄밀하게 보면 취사선택한 사실의 나열일 수 있다. 상당 부분 맥락이 소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의 공(功)은 증폭됐고 과(過)는 축소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승만 정권은 놀라운 성취 못지않게 재난적 말로를 보였다. 결국 다큐는 진실의 일부분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은 그동안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알기 위함일 것이다. “(영화판에) 좌파가 99.9%”란 김덕영 감독의 말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대해 자학(自虐)하는 내용의 콘텐트가 양산됐다. 역사는 선 또는 악 사이 택일이 아니다. 그 사이의 어디쯤이다.

미화할 필요도 없다. 1875년에 태어나 한국 근현대사의 엄혹한 시기를 살아온 ‘건국 대통령’의 90평생 궤적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교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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