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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4년02월23일 11시45분 ]
 水鏡칼럼- 한국, ‘외교숙원’ 쿠바와 65년만에 수교…한류가 문 열었다
한국·쿠바 美뉴욕서 ‘외교관계 수립’ 공식 발표…193번째 韓수교국…드라마 열풍 이어 K팝·한식·한국어로 관심 확산… 외교부 "활발한 문화 교류로 우호 증대…수교에 기여“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Historical events take place at night).’ 

2월15일 한밤중에 깜짝 전해진 한국과 쿠바의 공식 수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외교관계가 없었던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65년 만이다. 북한의 ‘형제국’으로도 불리는 쿠바와의 수교로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과 쿠바는 2월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駐)유엔대표부가 외교공한(공식서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이로써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이제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남은 한국의 미수교국은 시리아다.

쿠바는 1946년 대한민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혁명 이후 양국의 교류는 단절됐다. 이후 한국은 북한을 '형제국'으로 대하는 공산주의 국가 쿠바와 공식 수교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그간 정부 차원에서 쿠바와 공식 수교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 왔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쿠바의 '미온적' 태도로 빠른 진전을 보이긴 어려웠다.

이번 수교 과정에서도 한국과 쿠바는 북한의 반발과 방해 공작 등을 의식해 거의 모든 과정을 '물밑 협상'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제반 여건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그간 문화 및 인적 교류, 개발 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협력을 확대해 왔는데 이러한 '연성(軟性)' 요인이 수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이 쿠바와 전격적으로 수교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꼽힌다. '한류(韓流)'가 공산주의 쿠바의 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이다.

쿠바의 청년들이 한복과 결혼예복을 입고 한국문화 체험하기를 하고 있다.


쿠바에 한국 드라마가 상륙한 건  2013년이다. 당시 MBC의 '내조의 여왕'을 시작으로 KBS의 '아가씨를 부탁해', SBS의 '시크릿 가든' 등 '한드‘(한국 드라마)가 쿠바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자연스레 쿠바 국민들 사이에선 K-팝(POP)에 대한 수요가 늘고 한국 전통음식, 한국어 배우기 열풍도 불었다.

쿠바 현지에선 한드(K-드라마) 열풍으로 한때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었으며, 약 1만명 규모의 한류 커뮤니티 '아르코(ArtCor)'가 존재하는 것도 이같은 한류 열풍의 방증이다.

쿠바엔 1921년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韓人) 후손 11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그동안 문화, 인적교류, 개발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 협력을 확대해 왔다. 외교부도 이날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한 양 국민간 우호 인식 확산이 이번 양국 수교에도 기여했다"라며 '한류'의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별도로 "쿠바에서 한류 문화가 많이 확대됐다는 점도 이번에 수교하는 데 여러 고려 요인 중 하나였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수교 체결과 관련해 향후 쿠바 정부와 상호 상주공관 개설 등 수교 후속 조치를 적극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류의 '공식 진출'을 위한 한국문화원 설치, 한류 문화 확장을 위한 공식 문화교류 등의 조치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쿠바를 방문하는 한국민에 대한 더욱 체계적이고 긴밀한 영사 조력 제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쿠바와 관련한 영사 조력 사항은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이 전담해 왔다. 인적 교류 확대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의 쿠바 진출 확대 등 양국 간 경제협력의 실질적 영역도 넓고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매년 1만5000명 가까운 우리 국민이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있다"며 "이번 수교를 통해 우리 국민보호와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 韓·쿠바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합의

2월15일 정부에 따르면 외교부는 전날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중남미 카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은 한국의 중남미 외교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국과의 수교 사실을 알리는 쿠바 외교부 홈페이지 메인 첫 화면 /쿠바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쿠바 외교부(MINREX) 역시 같은날 성명을 통해 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 사실을 발표했다. 쿠바 정부는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 국제법, 그리고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서 확립된 정신과 규범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양국 수교 협의는 그간 극도의 보안 아래 극비리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쿠바 측이 한국과의 수교 협의가 공개되는 데 매우 민감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959년 이후 단절된 쿠바, 2000년대 ‘외교’ 문 두드려

한국에게 쿠바와의 관계개선 추진은 길게는 2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외교 숙원’으로 여겨진다. 쿠바는 1959년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뒤 일절 교류를 끊고 국제무대에서의 접촉도 삼갔다. 냉전 시기 지속되던 양국 간 냉기류는 1999년 한국이 유엔 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한국 정부가 쿠파에 수교 교섭을 처음으로 공식 제안했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4~2015년 교황청의 중재로 쿠바와 국교 정상화 절차를 마무리한 이후 한국도 쿠바와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쿠바와의 관계개선 드라이브를 한층 강화하면서 다시 논의에 동력이 붙었다. 특히 한국과 쿠바가 나란히 참석하는 다자회의 계기마다 꾸준히 문을 두드린 끝에 고위·실무급 접촉이 이어지며 몇 차례의 중요한 모멘텀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5월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와 각료회의에 참석하면서 호세피나 비달 쿠바 외교 차관을 만나 양국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같은 해 9월에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양국 인사가 나란히 참석했는데, 이 역시 또 한 번의 결정적 모멘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이 모두 참여하는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FEALAC) 같은 다자회의 계기로 실무급 당국자들도 비공개로 상호 방문을 이어왔다.

그동안 한국과 쿠바가 문화·인적 교류, 개발 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맞손을 잡아온 것도 이번 수교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배우 이민호·윤상현 등 한드 스타와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이 인기를 끄는 등 쿠바 내에 퍼진 한류 영향도 한몫을 했다.

  ●“韓·中 수교급 충격될 것” ‘형제국’ 北 반응 주목

한국·쿠바의 수교 합의로 북한이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데, 핵심 우방 중 하나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1992년 ‘한·중(韓中) 수교’와 맞먹는 급의 충격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만간 북한이 한국·쿠바 수교와 관련해 공식 입장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쿠바를 포함해 193개국과 수교하고 있고, 북한은 159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관계 없이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한 국가는 36개국이다. 반면 한국과의 외교 관계없이 북한과 수교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단 두 곳뿐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8년 11월 평양 국제비행장에서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는 모습.


 ●대통령실 “北 타격 불가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쿠바가 수교에 선뜻 응하지 못한 이유는 북한과의 관계 때문인데, 이번 수교가 결국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수교로 북한으로서는 정치적, 실리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단합되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2월6일 보도에서 건군절 행사(2월5일)와 관련해 쿠바 대사관이 등장한 이후 북한 매체에선 쿠바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주북(駐北) 외교단 초청 노동당 중앙위 주최 경축연회 기사에서도 쿠바는 거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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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가 2월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駐)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公翰) 교환을 통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것은 한국 정부가 수년간 꾸준히 공 들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수교 의사를 공식화한 뒤 물밑 교류가 계속돼왔다.

2016년 6월5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 컨벤션궁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이 양국간 첫 공식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후 약 2년간 본격적으로 수교 작업을 진행했다. 쿠바와 ‘형제국’인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극도 보안 속 최종 결정

이번 수교는 막판까지 극도의 보안 과정을 거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월15일 “최종 결정이 합의된 게 (설) 연휴기간 중이었다”고 했다. 정부는 13일 국무회의 당일 현장에서 국무위원들에게만 수교안 안건이 적힌 종이를 배포하고, 의결 뒤 이를 곧바로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과거 동유럽 국가를 포함해 북한과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래 수교를 위한 물밑 작업과 노력이 계속됐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이 브루노 로드리게스 파릴라 쿠바 외교장관과 2023년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비공개 회담한 것을 비롯해 쿠바 고위급과 세 번의 비공개 접촉을 했다.

허태완 주멕시코대사도 쿠바를 방문하는 등 실무급 접촉도 수차례 진행됐다. 2022년 연료저장 시설 폭발, 2023년 폭우 피해, 2024년 초 식량난 등 쿠바에서 필요할 때마다 인도적 지원을 했다. 문화교류도 이어졌다.
       
  

쿠바는 중남미 거점국가이다. 쿠바 아바나에 100개국이 넘는 대사급 상주 공관이 있다. 카리브해 국가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도 자주 열린다. 인도태평양전략에 중남미 지역을 포함한 윤석열정부로선 이 점 때문에라도 쿠바와 수교가 필요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한국·쿠바 수교에 대해 “한국은 자국 외교 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주권이 있으며 우리는 이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사무총장 대변인 역시 브리핑에서 “더 많은 양자적 외교관계 수립을 언제나 환영한다”고 했다.

쿠바는 1959년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와 달리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일부 제재가 완화됐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 최근 러시아가 손을 뻗치면서 미국으로서도 쿠바를 관리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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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 간에는 그동안 공식 외교관계 없이도 경제·통상·문화 등 민간 교류가 이어져왔다. 2월14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쿠바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센터(International Policy Research Center)의 2021년 연구자료를 인용해 “최근 몇 년간 한국과 쿠바는 자동차, 전자제품, 휴대전화 산업에서 중요한 사업 관계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2002년 쿠바와 처음으로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05년에는 수도 아바나에 한국 무역관을 개설했다. 양국 간 교역은 2022년 기준 수출은 1400만달러에 이르고, 수입은 700만달러 규모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연간 약 1만4000명의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했으며, 이는 상당수가 관광객이었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가 현지에서 인기를 끌어 1만여명 규모의 팬클럽이 운영될 정도다. 공식 수교가 뒷받침되면 잠재적 협력 가능성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8월15일 주멕시코 한국대사관과 민주평통자문회의 중미·카리브협의회가 쿠바 아바나에 개설한 쿠바 한국문화센터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쿠바에서도 한국 수교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국영 온라인매체 쿠바디베이트에는 양국의 수교를 알리는 보도에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한 이용자는 “좋은 소식”이라며 “양국이 무역 협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아시아의 경제대국 중 하나인 한국과 수교한 것은 좋은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장 쿠바 관광이 활성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쿠바 방문이나 체류 시 미국 방문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 90일간 관광·상용 목적으로 무비자 방문할 때 적용되는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해 미국에 입국하려 할 경우 쿠바 방문을 한 전력이 있으면 거부 조처를 받을 수 있다. 실제 멕시코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쿠바를 찾는 교민이나 주재원이 상당수 있는데,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존 ESTA 취소 통보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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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밤늦게 발표된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우리 정부의 오랜 외교 숙원이었다. 중남미와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퍼즐로 꼽혔다. 이번 한국·쿠바 수교는 사회주의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과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점에서 1990년대 북방외교 이후 최대 외교 성과로 꼽힌다.

이번 수교 협상은 외교부 본부나 서명이 이뤄진 뉴욕 유엔본부 직원들도 소수만 알고 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그동안 ‘형제국가’인 북한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던 쿠바와의 외교관계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정부는 이번엔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매우 극비리에 진행했다.

15일 정부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설 연휴 직전 쿠바 측이 적극적인 수교 협의 의사를 밝히면서 연휴 내내 미국 뉴욕의 주(駐)유엔대표부와 쿠바를 관할해 온 주멕시코대사관 채널을 통해 막판 소통이 이뤄졌다. 외교 공한을 주고받은 황준국 주유엔대사, 헤라르도 페날베르 포르탈 주유엔쿠바대사를 포함해 극소수를 제외하고 양국 유엔대표부에서도 협상 진행을 알지 못했다.

양국 수교는 유엔대표부가 현지시간 14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10시)에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4시간 시차를 두고 양국이 동일한 수교 일자를 맞추기 위해 합의한 시간이다.

양측은 공한을 주고받고 정확히 5분 뒤 이를 공표하기로 ‘분(分)’까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내 언론에 배포할 보도자료에 수교의 의미를 좀더 자세히 담겠다는 것도 쿠바 측과 협의했다.

국내에서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한국·쿠바 수교안이 의결됐다. 국무위원들조차 회의장에서 안건이 적힌 종이를 보고서야 양국 수교 방침을 인지했고, 회의 종료 뒤엔 이 종이를 바로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시점이 14일 늦은 밤인 만큼 국내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걸고 미리 알리는 방안도 언급됐지만 무산됐고, 당국자들은 약속된 시점 직전까지 철저히 함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 공한을 교환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의 견제나 방해로 무산되지 않도록 철저한 비밀을 유지한 것이다. 양국은 외교 공한 교환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동맹인 미국에도 수교 12시간 전에 공식적으로 수교 사실을 알렸다. 막판 절차는 긴박하게 이뤄졌지만 한국 정부는 쿠바의 문을 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물컵에 계속 물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에 확 차고 넘친 것”이라고 표현했다. 특정한 계기보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경제·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로 개선된 상호 인식 등 종합적인 요인이 결실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1959년 쿠바 사회주의혁명 이후 양국은 교류하지 않았다. 반면 쿠바와 북한은 1960년부터 수교를 맺고 반미(反美), 사회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형제국’으로 불리며 깊은 우호관계를 이어 왔다. 그러다 1999년 한국이 유엔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 찬성표를 던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0년부터 쿠바에 직접 수교를 제안했고 2005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코트라(KOTRA) 사무소를 여는 등 교류를 늘렸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후 역대 정부마다 수교와 영사관계 수립을 꾸준히 제안했고, 2016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외교수장으로는 처음 쿠바를 공식 방문하며 수교 추진에 속도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쿠바는 극도로 신중했다. 현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당시 외교부 2차관으로 쿠바를 찾았다.

이번 한국·쿠바 수교를 계기로 ‘외교 운동장’을 한 뼘 더 넓히는 계기로도 기대를 모은다. 윤석열정부는 집권 초기 인도·태평양 지역 내 외교 집중에서 벗어나 중반부터는 중남미·서반구로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평가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데도 190여개국과 수교했고 100여개국이 아바나에 대사관을 운영하는 중남미 거점국 중 하나”라며 제3세계 외교 등에서 쿠바가 갖는 영향력을 강조했다.

관련 상황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수교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쿠바와의 수교는 수십 년 간 외교적 숙원이었는데, 마지막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임계 질량)를 채웠다는 비유도 나온다. 양국 간 "이해 관계가 일치한 그야말로 윈-윈 수교"라는 평가도 있다.

수교 협상의 특성상 기밀 유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쿠바 측이 특히나 보안에 민감한 입장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수교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될 경우 북한의 방해 공작이 우려되는 만큼 속전속결, 로키(low key)로 진행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2022년 5월 한국과 니우에(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에 있는 나라)가 수교를 체결할 때는 장관 간 문서 서명 뒤 악수를 하는 기념사진 등이 배포됐지만, 이번 쿠바와의 수교 때는 관련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만큼 막판까지 보안에 유의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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