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요 개발 사업, 주민 반발에 번번이 좌초돼
-연구단지 10만여 연구인력도 반대하는 고층 아파트 개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주요 개발 사업들이 주민 및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사업추진 계획이 변경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체장 치적사업의 하나로 각종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와 주민 편익을 내세워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선출직 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까지 언급되면서 오히려 단체장의 추진 의지가 한풀 꺾이는 형국이다.지자체 시책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주민과의 갈등 해소가 선결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들의 유연한 사고와 함께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단체장들의 인식 변화가 긴요하다.
대표적 사례로 부산시는 구덕운동장 일대 7만1577㎡ 부지에 7990억원을 투입해 1만5000석 규모의 축구전용 경기장을 포함한 체육·문화시설과 업무·상업시설 및 주상복합시설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8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아파트 건립 반대 주민협의회를 결성해 재개발 추진에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역정치계도 동참했다. 부산시의회는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다며 충분한 검토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고, 서구를 지역구로 둔 곽규택 국회의원까지 나서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산시가 아파트 건립 규모를 축소하고 주민 편의시설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기로 했으나, 주민 반발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주민협의회는 재개발사업에 찬성한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투표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공 구청장은 “구덕운동장 재개발 구역 내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결과에 따르겠다며 한 발짝 더 물러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말 발표한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 대상지역에서 구덕운동장을 제외했다.
부산의 경우 건립된 지 100년 가까이 된 부산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구덕운동장’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지역 축구전용 경기장과 주민체육복합시설 및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는 내용의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이 논란 끝에 무산됐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정비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충북에서는 김영환 도지사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이른바 ‘반값 아파트 사업’이 주민 반발로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처럼 여러 지자체 주요 개발 사업이 시작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에서 활발한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J 교수(생명과학)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시각과 시민들의 시각차에서 오는 괴리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현상을 놓고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행정의 시발점에서 비롯된다는 조언이다.
예컨대 10년 전에 논의가 시작된 개발 사업에 대한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단체장들은 그간 변화한 주민들의 열망이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의 사고방식대로 단체장 시책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이다. 주거환경 등 변화된 생활 여건에 대한 정밀한 고찰 없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빚어진 예견된 결과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이 갈등을 벌이는 주된 이유로 ‘주민 의견 수렴’과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 부족’을 꼽았다. 그는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과거 개발독재 정부시절 사고방식이 먹혀들 리가 없다”면서 “주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주민의 기본적인 욕구를 읽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지자체장들이 민의(民意)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과거 개발방식대로 강행하다 정말 필요한 사업들도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고 있음은 각 지자체 행정당국은 유념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10만여 연구인력도 반대하는 고층아파트 개발
필자도 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를 놓고 대전시장과 유성구청장을 향해 ‘대전시장과 유성구청장에게 묻는다’는 시리즈 제목으로 현재 세 번째의 글을 쓰고 있다.
대덕문화센터는 필자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재직 당시에 외국 및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면 이곳으로 모셨고, 갤러리와 아트홀 등이 잘 마련돼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어른들은 문화생활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볼링장 등이 있어 과학자 및 일반 시민에게는 ‘힐링의 장(場)’이기도 해서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다.
대덕문화센터는 대전을 ‘과학기술문화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청사진에 따라 1993년 10월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현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가 1993년 건립한 대덕과학문화센터는 호텔로 사용되다가 2003년 목원대 법인에 인수됐다.
건립 10년 후인 2003년 10월 목원대가 이를 예술대학 캠퍼스로 활용하고자 매입했지만, 상업지구에서 교육용 부지로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다시 10년이 흘러 2013년에 매각을 공식화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덕문화센터는 2015년 한차례의 매각과 계약 파기, 소송 등을 거쳐 8년이 지난 뒤 2023년 7월 A시행사에 재매각됐고, A시행사는 몇 차례 잔금 납부를 미루다 결국 2024년 3월에 잔금을 모두 지불한 상태이다.또한, 대덕문화센터는 대덕대로와 인접한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8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만 4700㎡의 부지에 전체 연면적 14만 3400㎡,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로 조성됐고 대덕특구에서도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으로 평가받아왔다.
2015년 일반 사기업에 매각되었을 당시 대덕특구에 위치한 17개 정부출연기관의 기관장과 도룡동 일대 600여 년간 세거지(世居地: 집성촌)로 살아온 여흥민씨종친회(驪興閔氏 宗親會) 등도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당시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 요지는 "대덕문화센터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대덕연구단지 정체성의 부정과 더욱이 정부시책으로 만들어진 이곳이 난개발로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많은 시민들이 공감을 표시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연구단지 조성 사업의 국가시책에 동의하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산을 선뜻 내놓은 여흥민씨 종친회도 최초 취지에 맞지 않는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적극 반대하며 당시 문중종원을 비롯해 연구단지의 연구원들과 시민 3,500여 명에게 서명을 받은 바 있다.
9년 전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문에서 보듯, 과학인의 공간인 공공성이 있는 건축물로 재건립의 필요성을 정부 및 대전시 등 관계기관에 이를 여러 차례 피력했으나 실제 매각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전시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대덕연구단지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나노·반도체 중심 대전 제2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기술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구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도록 2단지를 창업 특화 공간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수한 과학 인재, 탄탄한 연구소와 함께 ’과학 수도‘ 대전이 도약해 과학기술 발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많은 공공 분야 과학기술 관련 연구 시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조폐공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한전원자력연료 같은 공공기관 본사, 대표적인 과학기술원인 한국과학기술원과 국가거점 국립대인 충남대학교, 각종 민간기업연구소 등이 모여 있다. 사실상 규모와 질 모두 연구도시 및 교육도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12월 기준 이곳에 근무하는 박사급 연구원만 17,600여 명, 석사급 연구원은 12,700여 명, 학사급 연구원 9,800여명 등 총 40,170여 명의 연구개발직 인력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곳에 근무 중인 생산관리직 51,700여 명을 합치면 총 92, 000여 명이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서 근무 중이다.
그런데 이 막대한 연구인력이 모여 근무하면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 지역에 자연 및 연구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발상 자체도 문제이고 어불성설이다.
현재 이 지역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의 혜택은 길게는 500여 년 전부터 대대손손 자연환경을 잘 지키고 살아온 여흥민씨 종중 덕분이다.
지하에 잠들어 계신 선대조 묘소와 선산을 관리하는 여흥민씨(驪興閔氏) 운촌공(雲村公) 산하 각 소종중 이해 당사자, 화봉산 및 의성산 조망권 훼손 등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주변 마을 주민들 및 연구 관련 당사자들과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위에 열거한 다른 지자체의 사례 등을 거울삼아 대전시와 유성구도 현명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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