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장과 유성구청장에게 묻는다 (4)
-DJ 막내아들 상속세 이유로 개인사업자에게 팔았던 사저
-재단 측 "역사적 의미 등 고려해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역사적 의미와 문화·환경적 가치가 높은 곳은 개발보다 보존해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셋째 아들 김홍걸 전 의원이 개인 사업자에게 매각했던 서울 동교동 DJ 사저를 김대중재단이 다시 사들이기로 했다. 재단 측은 지난 9월26일 서울 여의도 김대중재단 사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 사저를 사들인 사업자 P씨와 재매입 협약서를 썼다.
김대중재단 배기선 사무총장은 "그간 P씨를 수차례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거쳤다"며 "100억 매매 대금을 포함해 법적 부대비용 등 P씨가 부담한 부분에 대해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재매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사저는 역사적인 의미와 문화적 가치, 국민과 세계 여론 등을 감안해서 원형 그대로 영구히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자 P씨도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이 잡풀이 무성한 채로 장기간 방치된 모습을 보며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매입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며 "역사적 공간을 잘 보존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에도, 개인에게도 큰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 앞 모습
재단 측은 모금 등의 방식으로 재매입 대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 사무총장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정부·여당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겠다고 한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적극 앞장 서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P씨가 김홍걸 전 의원으로부터 사저를 매입한 사실이 알려진 후 재단은 사저를 다시 사들이기 위해 물밑 접촉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 9월 초반부터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문희상 재단 상임 부이사장과 배기선 재단 사무총장, 김 전 의원과 P씨가 '4자 회동'을 갖는 등 사저 재매각과 운영 등을 놓고 논의를 진행했다.앞서 김 전 의원은 이 집을 P씨에게 100억원에 매도했다. 김 전 의원은 거액의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다 매도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의미와 문화·환경적 가치가 높은 곳은 개발보다 보존해야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다행이면서 흐뭇하게 생각했다. 먼저 DJ의 동교동 사저를 매입한 개인 사업자의 입장에선 큰 양보를 하지 않고선 성립될 수 없기에 그의 용단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사저 매입으로 얻게 될 사적인 이익보다 DJ 사저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 등을 고려한 대승적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현재 민간 개발업체가 토지를 매입해서 고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대덕문화센터는 대전을 ‘과학기술문화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청사진에 따라 1993년 10월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현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가 1993년 건립됐는데, 호텔로 사용되다가 2003년 목원대 법인에 인수됐다.
건립 10년 후인 2003년 10월 목원대가 이를 예술대학 캠퍼스로 활용하고자 매입했지만, 상업지구에서 교육용 부지로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다시 10년이 흘러 2013년에 매각을 공식화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덕문화센터는 2015년 한차례의 매각과 계약 파기, 소송 등을 거쳐 8년이 지난 뒤 2023년 7월 A시행사에 재매각됐고, A시행사는 몇 차례 잔금 납부를 미루다 결국 지난 3월에 잔금을 모두 지불한 상태이다. 또한, 대덕문화센터는 대덕대로와 인접한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8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만 4700㎡의 부지에 전체 연면적 14만 3400㎡,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로 조성됐고 대덕특구에서도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으로 평가받아왔다.
2015년 일반 사기업에 매각되었을 당시 대덕특구에 위치한 17개 정부출연기관의 기관장과 도룡동 일대 600여 년간 세거지(世居地: 집성촌)로 살아온 여흥민씨종친회(驪興閔氏 宗親會) 등도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당시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는 "대덕문화센터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대덕연구단지의 정체성 부정과, 더욱이 정부시책으로 만들어진 이곳이 난개발로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을 표시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연구단지 조성 사업의 국가시책에 동의하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산을 선뜻 내놓은 여흥민씨 종친회도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 고층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적극 반대하며 당시 문중종원을 비롯해 연구단지에 종사하는 대다수 연구원들과 시민 3,500여 명에게 서명을 받은 바 있다.
9년 전 대덕과학문화센터 재창조추진위원회의 취지문에서 보듯, 과학인의 공간인 공공성이 있는 건축물로 재건립의 필요성을 정부 및 대전시 등 관계기관에 이를 여러 차례 피력했으나 실제 매각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전시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대덕연구단지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나노·반도체 중심 대전 제2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기술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구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도록 2단지를 창업 특화 공간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수한 과학 인재, 탄탄한 연구소와 함께 ’과학 수도‘ 대전이 도약해 과학기술 발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22년 12월 기준 이곳에 근무하는 박사급 연구원만 17,600여 명, 석사급 연구원은 12,700여 명, 학사급 연구원 9,800여명 등 총 40,170여 명의 연구개발직 인력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곳에 근무 중인 생산관리직 51,700여 명을 합치면 총 92, 000여 명이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서 근무 중이다.
그런데 이 막대한 연구인력이 모여 근무하면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 지역에 자연 및 연구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발상 자체도 문제이고 어불성설이다.
현재 이 지역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의 혜택은 길게는 500여 년 전부터 대대손손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면서 살아온 여흥민씨 종중 덕분이다. 잘 알다시피 여흥민씨가 세거지로 살고 있는 도룡동·삼정동 일대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므로 개발보다는 잘 지키고 영구 보존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높은 이익 보다는 공익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원형 그대로 보존돼야 한다. 지하에 잠들어 계신 선대조 묘소와 선산을 관리하는 여흥민씨 운촌공(雲村公) 산하 각 소종중 이해 당사자, 화봉산 및 의성산 조망권 훼손 등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주변 마을 주민들 및 연구 관련 당사자들과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위에 예시한 DJ 사저의 사례 등을 비춰볼 때 지금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으니 대전시와 유성구도 현명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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